제시카 노델
김병화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2년 11월 25일
공부를 재미로 한다는 사람들 보면 제 정신인가 했다. 그런데 내가 요즘 공부하는 재미에 빠졌다. 비결은 별게 아니다. 시험만 안 보면 된다. 요즘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경제경영 분야이다. 얼마 전에는 편향(bias)에 대한 글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그래서 <편향의 종말>이라는 이름에 끌려 이 책을 골랐다. 읽어보니 차별에 관한 책이다. 차별도 편향의 일종이기는 하겠지만, 책 내용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의 차세대 저널리스트로 평가받는 저자는 초년병 시절 언론계에 진출하기 위해 전국 유명 언론사에 다양한 기획기사를 제출했지만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생각을 바꿔 가상의 남자 이름으로 같은 내용을 보냈더니 몇 시간 만에 회신을 받았다. 그 기사로 저자는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 있었고, 성공했고, 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다. 더 솔직해지고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중적인 모습을 관리하느라 갈수록 지쳤다. 두어 해 지난 후 사실을 밝히고 편향(차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엊그제 공교롭게도 미국 연방대법원이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유지해오던 ‘적극적 차별 개선조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위헌 평결을 내렸다. 학생을 피부색이 아니라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차별을 적극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차별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각 주장을 들어보면 뭐가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사실 이 조치는 등장한 이후부터 계속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숨은 인재를 발굴할 수 있고 불공평을 시정하는데 필요하다며 이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미 차별을 경험한 이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며 이를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예컨대 정당하게 대학에 입학한 흑인 학생이 자격을 의심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쥐 생각해주는 것도 아니고.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심 그렇게 입학해봐야 따라가지도 못하니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시간 대학교 로스쿨에서 이 조치를 시행한 25년간 기록을 연구한 결과 졸업한 비율은 이 조치를 통해 입학한 학생(96%)들과 다른 학생(98.5%)들이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졸업해서도 비슷한 소득을 얻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저자는 독특한 사례를 들어 여성차별을 설명한다. 여성이 어떤 차별을 받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환수술로 남성이 된 사람이 수술 후 여성이었던 때에 비해 얼마나 나은 대접을 받고 사는지 설명한 것이다.
“신경생물학자 바레스는 수술 후에도 수술 전과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기술을 지녔고 같은 성취를 이루었고 같은 능력을 가졌지만, 수술 전과는 달리 대중은 그의 권위에 의문을 품지 않았으며 심지어 쇼핑할 때 더 나은 대우를 받았다. 다른 성전환 남성은 이전에 비해 더 많은 질문을 받고 자신이 회의에서 내는 의견을 모두가 받아 적었다. 성전환 전에는 공격적으로 비치던 성격이 이후에는 책임감 있는 태도로 대접 받았다.”
여성차별에 대한 것이야 듣기도 많이 들었고 가까운 이들이 차별받는 것을 지켜본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저자는 여성차별이 치료 과정에서도 일어나 여성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말한다. 차별의 폐해가 큰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 줄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의료진의 적절한 처치를 더 적게 받고 진통제를 더 적게 받으며 전문의에게 보고가 더 적게 올라간다. 심근경색을 겪는 여성의 치료가 위험할 정도로 지연되며, 병원에 입원한 뒤에도 사망하는 경우가 흔하다. 심근경색이 일어난 뒤 여성은 심장 재활과정을 밟거나 올바른 약품을 처방받을 확률이 낮다. (연구 결과 응급실의 남성 의사들이 여성 의사들과 일하는 기회가 더 많아질 때 심근경색이 발생한 여성 환자가 생존할 비율이 더 커진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남성 환자 가운데 치료 받지 못한 경우는 31%인데 반해 여성은 45%까지 치료를 받지 못했다.) 50세 이상의 여성이 위독해질 경우 의사에게 적절한 치료를 받아 생명을 구할 확률이 같은 연령대의 남성에 비해 낮다. 무릎 통증이 있는 여성은 남성보다 무릎 연골 교체를 처방받을 확률이 25배 낮다. 여성이 중환자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짧으며 적절한 생명연장조치를 받을 확률도 낮다. 유색인 여성은 특히 치료를 덜 받을 위험이 크다. 출산할 때는 의료진에게서 조롱과 멸시를 받고,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제왕절개수술을 강요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테니스 스타인 세레나 윌리엄스는 출산 때 혈전증 병력을 설명하고 즉각 이에 따른 치료를 요구했지만 의사와 간호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과 흑인이라는 이중 차별을 받은 것이다. 저자는 미국 원주민 여성의 산모 사망률이 낮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으며, 흑인 여성이 출산합병증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백인 여성의 3~4배에 달한다고 말한다.
그것 말고도 여성차별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2019년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최대 규모의 영화에서 주인공 가운데 37% 여성이었다. 할리우드에 돌아다니는 영화 각본 2천 권을 분석한 결과 여성이 주인공인 디즈니 영화에서도 남성의 대사량이 여성보다 많았다. 여성은 주인공보다는 조력자로 그려진다. 비디오 게임에서도 여성 캐릭터는 다른 배역을 돕는 존재로, 흔히 남성 지도자의 조수로 나온다.”
“테크산업 전문직 수백 명의 실제 업무수행평가를 조사한 결과 성격에 대한 비판은 남성이 2.4%인데 반해 여성은 76%에 달했다. 간단히 말해 더 상냥하게 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일자리는 거기에 달려 있었다. 여성이 위험을 꺼리는 것처럼 보인다면 이는 여성이 위험을 더 정확하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놈코프 실험에서 다섯 가지 젠더 편향이 확인되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기여는 보통 평가 절하된다. 여성과 남성이 잘못을 저지를 때 여성들이 더 심하게 처벌받는다. 남성과 여성이 한 프로젝트에서 일할지라도 성공에 대한 여성의 기여도는 더 낮게 평가된다. 여성은 상냥하고 공손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당한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기회가 적다. 시뮬레이션 결과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게 출발했지만 수많은 상호작용을 거치는 동안 차이가 누적되어 거대한 불균형으로 발전했으며, 여성이 사실상 최정상부에서 사라졌다.”
“동성 커플은 이성 커플에 비해 주택 대출을 거부당할 확률이 높다. 비만 학생은 날씬한 학생보다 교사에게 능력을 의심 받을 확률이 더 높다. 취미와 활동으로 보아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짐작될 경우 빈곤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보다 로펌에서 일자리를 얻을 확률이 더 높다. 아나운서는 피부색이 밝은 농구 선수에 대해서는 그들의 심리 상태에 대한 발언을 더 많이 하고 피부색이 짙은 선수에 대해서는 신체와 관련된 발언을 더 많이 한다. 의사들은 비만환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짧고 그들과 감정적 유대감을 덜 형성한다. 성전환자는 공공연한 편견과 차별을 받는다.”
“분석에 따르면 무슬림이 자행한 테러가 다른 사건들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보도되었다. 2006년에서 2015년 사이 테러로 죽은 사람들의 수를 조사해보니 비무슬림에 의한 공격을 보도한 것에 비해 357% 더 많았다.”
저자는 사람이 차별을 타고 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연구결과 생후 6개월 때 다양한 인종을 자주 접하고 그래서 인종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던 아기는 나중에 그런 구분을 하지 못했던 아기에 비해 인종차별이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서 1998년 스웨덴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성별에 따라 인종차별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를 위해 아이들의 행동을 모두 촬영했다. 연구자들이 영상을 보면서 아이들의 어떤 행동을 시정해야 할지 찾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문제의 원인이 아이들이 아닌 교사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성 평등에 있어서 세계 4위에 오른 국가의 선의를 가진 교사들이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를 다르게 대우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울면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를 더 많이 위로했다. 아이들을 데려갈 때 교사들은 여자아이를 더 가까이에 두었고 얼굴을 마주보는 경우가 더 많았으며 남자아이와 거리를 더 두고 바깥쪽을 바라보았다. 또한 남자아기가 시끄럽게 굴고 거칠게 행동하는 것을 더 많이 참아주었다. 여자아이가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우에는 인내심이 적었고, 더 많이 자제하기를 기대했지만 남자아이에게는 기대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둥글게 둘러앉을 때 교사들은 남자아이가 참여하면 더 반가워했다.”
이런 연구사례도 있다.
“어느 마을에 TV가 들어오기 전에 시행된 조사에 따르면 그 마을 아이들은 젠더 스테레오타이핑 정도가 낮았다. 그들은 어떤 역할이나 행동이 남자와 여자아이에게만 독점적으로 적합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TV가 들어오고 2년이 지난 후 그들의 젠더 의식은 오랫동안 TV를 시청해온 아이들과 비슷한 정도가 되었다. TV가 성별에 대해 묘사하는 내용을 시청한 결과였다. 아이들은 수상이 되는 것은 남자의 일이고 설거지는 여자의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마을에서 벌어진 변화라고는 TV를 들여온 것 말고는 없었다.”
결국 차별적인 행동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되는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