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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29. 2023

클로드와 포피

로리 프랭클

김희정 옮김

알마

2023년 5월 23일


1.


귀국할 때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평등길 걷기’가 시작되었다. 차별금지법 청원 처리시한에 맞춰 국회에 도착할 계획으로 한 달 전에 부산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차별 철폐를 외치고 나서야 할 교회가 오히려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모습이 부끄럽고 기가 막혀 나 하나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야 할 것 같아서 귀국하자마자 그 일정부터 챙겼다. 불과 이틀이었지만 속죄하는 마음으로 대전에서 청주까지 함께 걸었다.


차별금지법은 23가지 사유로 인해 차별이 일어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현대를 문명사회라고 말하면서 이런 법을 만들어서까지 차별을 금지해야 하다니. 그렇게 해야 할 만큼 사회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보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야 할 교회가 이를 반대하고 나섰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있나. 비극이다.


교회가 이를 반대하는 것은 금지해야 할 차별로 규정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동성애’라는 한 마디로 뭉뚱그려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도 구별하지 못할 만큼 무지하면서 그것이 성경에서 규정한 죄라고 게거품을 무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나 역시 그게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지 못했다. 교회의 차별금지법 반대 광풍이 리야드교회까지 밀려오게 되고 나서야 그것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것을 깨닫고 두어 달 사실관계를 확인하는데 매달렸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신앙을 제한하지 않으며,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타고 나는 것으로 전환치료가 불가능하며, 성경에서 동성애를 죄로 규정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솔직히 지금도 나와 다른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 모습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곧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 일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소설 리뷰 치고는 엉뚱한 사설이 되었다.


2.


이 소설은 다섯 아들을 가진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다섯 아들 중 막내인 ‘클로드’가 소녀인 ‘포피’가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맞다, 트랜스젠더 이야기이다. 아들로 태어난 아이가 소녀의 정체성을 가진 것을 깨닫게 되면서 당황해 하고, 고통을 겪고, 그 고통에 직면하는 모습을 부모와 형제와 본인의 시선에서 그려낸 소설이다.


소설 첫 머리에서 작가는 자기에게 소년이었다가 소녀가 된 2학년 아이가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직면하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했고 그래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다. 이것은 짐작으로, 취재를 통해 쓸 수 있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의 마음으로, 한동안 차별금지법 반대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좌절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따라갔다.


이것은 소설이지만 나는 이 책을 소설로 읽지 않았다. 이야기에 녹아있는 작가의 고통을 함께 느끼려고 애썼고, 아울러 성 정체성의 혼란에 따른 구체적인 사례를 알아가려고 그 부분에 집중했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내가 그것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이 당사자 뿐 아니라 부모와 형제에게 얼마나 큰 고통과 혼란을 겪게 만드는지도 알게 되었다.


3.


작가인 펜과 의사인 로지는 첫째 루, 둘째 벤에 이어 리겔과 오리온 쌍둥이를 낳는다. 아들만 넷을 얻고 나서 딸을 하나 얻을 생각으로 생전 눈길도 주지 않던 ‘딸 낳는 비방’을 충실히 따른다. 남북으로 놓았던 침대를 동서로 바꾸고, 연어와 초코 칩 쿠키와 붉은 살코기와 짭짤한 간식을 입에 달고 산다. 딸을 낳으면 로지가 열두 살 때 병으로 죽은 두 살 아래 동생의 이름을 따라 ‘포피’라고 이름을 짓기로 마음먹는다.


클로드는 세 살에 접어들면서 성 정체성으로 인한 불쾌감을 경험한다.


“성별 불쾌감은 환자의 지정 성별, 다시 말해 타고난 성기와 신체적 조건이 본인이 느끼는 성별 정체성과 불일치하는 상태를 말하죠. 어떤 사람은 그 성별 정체성을 선호 정체성, 확정 정체성 혹은 진정한 정체성이라고 하기도 해요.”


다행히 로지가 일하는 병원에 이런 문제에 아주 정통한 동료 치료전문가 통고를 만나 고비 마다 꼭 필요한, 결정적인 조언을 얻는다. 나는 그것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클로드가 다니는 유치원 원장도 어렴풋하게 클로드의 그런 변화를 느낀다. 다섯 살 배기 아이 치고는 너무 조용하다면서.


어린 클로드가 방황하는 모습을 본 형들은 동생을 도와주겠다는 마음으로 클로드의 변화를 바로잡으려 한다. 그래서 엄마 아빠에게 강하게 클로드를 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데 아이들마저 이러고 나서니 부모가 난감할 수밖에. 그렇다고 아이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저 사람을 있는 대로 사랑하고 도와줄 수밖에 없지. 하지만 이렇게 와서 엄마랑 아빠에게 마음 써주는 것도 고맙고. 정말 착하고 동생을 사랑하는 형들이구나.”


놀라운 것은 유치원에 트랜스젠더 아이를 대하는 매뉴얼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치원 책임자나 교사들이 매뉴얼과 상반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여자 아이로 유치원에 오는 남자 아이는 트랜스젠더로 분류됩니다. 그리고 양호실에 있는 화장실을 써야 할 거예요. 여학생 화장실은 안전 문제 때문에 쓸 수가 없고, 남학생 화장실을 사용하는 걸 아이가 불편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오랜 고뇌의 시간을 보낸 부모는 클로드가 여자 아이 옷을 입고 학교 가는 것을 허락한다. 이전에 침울했던 아이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매일 아침 기쁨에 넘쳐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부엌에 들어서기 전부터 함박웃음을 웃었다. 그런 부모를 보고 이웃들이 그 용기를 칭찬하자 로지는 용기를 낸 것이 아니라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곳이 아이를 기를 수 있는 곳이 못된다고 생각한 로지는 가족을 설득해 시애틀로 이주를 결심한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고통을 의미하는지 굳이 이곳에 열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론 펜과 로지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시애틀에서도 아이를 보호하는데 실패한다. 감추려 했던 것이 끝내 드러나자 포피는 다시 클로드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다. 밤새 문을 잠그고 머리를 자르고 여자 아이 옷을 다 정리한다. 본인의 고통과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모습을 작가는 “그 모든 광경이 조지와 펜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라고 그리고 있다. 결국 로지는 아이들 때문에 따를 수 없었던 병원의 요청을 핑계 삼아 클로드만 데리고 태국 의료봉사를 떠난다.


로지는 그곳에서 만난 병원의 여성 책임자 케이가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알고 대화를 나누면서 하나씩 문제를 정리해 나간다. 열악한 태국의 환경에 좌절한 클로드는 트랜스젠더에게 비교적 관대한 태국의 문화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태국에는 카토이이(cat toy, 트랜스젠더)가 많아요. 별로 큰 일이 아니지요. 우리 모두는 불교를 믿기 때문에 업이라고 생각해요. 삶이 그런 것이고, 그냥 존재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하죠. 전생은 정생, 이생은 이생, 내생은 내생. 뭐가 됐든 전생에 있었던 일 때문에 내가 이렇게 태어난 거니 내 잘못이 아닌 거죠. 모두가 그걸 알아요.”


“그곳에는 세 종류의 화장실이 있었다. 하나는 바지를 입은 파랑색 사람, 또 한 곳은 귀여운 헤어스타일에 치마를 입은 빨간색 사람, 세 번째는 그 둘을 반반씩 섞은 사람이었다. 왼쪽의 파랑 다리는 바지를 입고 있었고 오른쪽 빨강 다리는 치마 밑으로 나와 있었다. 클로드/포피는 오랫동안 서서 그 문을 바라보며 그게 속임수가 아니라는 걸,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걸 자기가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했다. 불가능해 보였지만 바로 거기에 있었다. 클로드/포피는 평생 처음으로 맞는 문을 찾은 것이다. 안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세면대, 변기, 심지어 화장지도 있었다. 평범했다. 아무 것도 특별한 것이 없었다. 기적이었다.”


로지의 의료봉사가 끝나고 아직도 자신이 클로드인지 포피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아이와 다시 시애틀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뭐 딱히 달라진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다.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소설은 끝을 맺는다.


4.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펜과 로지는 힘을 다해 클로드를 보호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클로드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로지의 동료 통고의 지적은 가슴 아프다.


“바로 그게 문제에요. 부모가 이 아이를 처음부터 너무나 완벽하게 받아들였어요. 클로드인 클로드도 받아들이고 포피인 클로드도 받아들였어요. 부모가 이 아이를 완전히 완벽하게 아무 이의 없이 편안하게 여성으로 살 수 있도록 해줬죠. 퀴어답게 살 기회를 허락하지 않은 거죠. 포피는 퀴어에요. 페니스를 가진 여자 아이. 멋진 일이지만 평범하지는 않지요. 이상하고 독특하고, 그래서 퀴어죠. 이제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때가 됐어요.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것과 똑 같은 방법으로, 고통을 통해서요. 아이는 충분히 고통 받을 기회가 없었어요. 부모가 너무 완벽하게 보호해준 거죠. 평범하지 않은 것을 평범한 것처럼 대했기 때문에 포피는 실제로 자기가 살아야 하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사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거죠. 부모는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그건 포피가 집을 제외한 세상에서 사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더 이상 부모가 할 일은 없어요. 이제는 포피가 해야 해요. 1단계가 커밍아웃이에요. 2단계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거부당하고 엄청나게 상심하는 것. 3단계는 마음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건 평생 걸리는 일이에요. 그러니 포피가 어린 나이에 그 여정을 시작한 건 좋은 일이에요.”


자식을 편안하게 키우는 것이 자식을 망치는 것이라는 정도는 여느 부모나 다 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별개 문제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보다 훨씬 큰 체격으로 팔을 벌리면 양쪽 벽이 닿는 좁은 방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자식을 보고는 아내보다 내가 먼저 좀 더 넓은 곳으로 옮기라고 했다. 내게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더라.


트랜스젠더들은 본래 가졌던 성의 징후를 없애기 위해 호르몬 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작가는 그것이 세상의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경우에 해당하는 해법이라고 지적한다. 세상의 시각을 조금만 넓히면 굳이 필요 없는 해법이라는 말이다. 스스로를 이 문제에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미처 여기까지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결국 문제는 사회의 시선이라는 말이다.


“호르몬 억제제는 자기가 태어난 몸 안에서 사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아이들에게는 기적과 같은 약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트랜스젠더 및 기존의 젠더 구분에 따르지 않는 아동과 성인들의 자살 기도율이 무려 40퍼센트 이상이다. 그런 비극을 방지할 수 있는 약이라면 기적의 약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고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약만은 아니다. ‘정상’ 혹은 ‘평범’이라고 규정하는 범위를 더 넓게 확장하면 모든 사람이 더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다.”


5.


이 책은 어느 페친이 올려놓은 글 때문에 읽게 되었다. 그는 아들 둘을 두었다. 둘째인 Reed는 지금 여대생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연히 페친의 가족사를 알게 되었지만 가끔 안부를 물을 뿐 구체적으로 둘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그 페친이 이 소설의 말미에 자기 고백을 올려놨다.


그 페친은 내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둘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올렸다. 직접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있고, 사연을 아는 사람이나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있었다.


육백 쪽이 넘는 분량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소설을 다큐멘터리로 접근하려 했기 때문에, 클로드 자신 뿐 아니라 부모와 형제가 겪는 고통의 무게 때문에 읽는 게 영 더뎠다. 이 소설이 크게 달라진 것 없이 끝난 것처럼 나 역시 이 책을 다 읽고 특별히 떠오르는 소감이 없다. 한 번 더 생각을 정리했다는 것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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