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이 축하받을 일인지 의문이기는 합니다만, 바쁘신 중에 또 먼 길을 마다 않고 임직예배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임직식이 다가오면서 마음이 매우 부담스러웠습니다. 임직이라는 것이 자기 소견과 자기주장을 버리겠다는 약속인데, 그 약속을 과연 지킬 수 있겠나 싶은 걱정이 들었습니다. 저희 임직자들은 이미 짧지 않은 세월을 산 사람들입니다. 나름대로 소견과 주장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장한 각오 없이는 자기 소견과 주장을 버리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어렵고, 그것을 지키기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임직식은 축하보다는 위로와 격려의 자리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을 수 있고, 그래서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 자리를 피하지 않도록 여러분께서 기도로 격려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유승민 후보가 TV토론에서 선전했음에도 지지율은 도무지 꼼짝을 하지 않아 몹시 아쉽다. 아직 선거가 며칠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당선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 집권당으로서 그동안 일으킨 폐해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였으면 했고, 그가 그를 감당했고, 그래서 그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리고 민주사회에서 선거는 당선자 확정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심상정 후보의 말에 격려를 받아 생전 처음으로 당선과 무관한 후보를 선택했다.
힘든 싸움인 줄 알았을 것이고 양지에서 살던 사람들이 꾸린 정당이니 싸움이 힘들어지면 이탈자가 나오리라는 것도 짐작했을 것이다. 무모한 도전으로 여길만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올바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난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그 가치를 구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출마한 것이라면 그 도전은 비록 무모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감당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가 그런 이유로 출마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가 완주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동안 사업자 선정을 위한 기술평가에 프레젠테이션이 포함된 일이 있었다. 우리 제안이 대체로 경쟁사보다 앞섰기 때문에 프레젠테이션에서는 평균만 해도 무난하게 수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제안에서 다 얻어놓은 점수를 프레젠테이션에서 까먹어 수주하지 못한 경우가 몇 번 있는데, 놓칠 수 없는 사업이어서 내가 직접 자료를 만들고 발표한 것이었다. 후배들에게 맡겨 놓은 건 무난하게 수주하는데 선배가 되어서 말아먹고 있으니 후배 보기가 여간 민망하지 않았다. 발표에서 밀렸다는 것에 자존심도 몹시 상했다. 발표에 대한 평가는 평가자가 내리는 것이고, 평가 결과는 얼마나 발표를 잘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평가자의 마음에 드느냐에 달린 건데, 이걸 뒤늦게 깨달았다. 발표는 잘했을지 모르지만 평가자가 걸고 넘어갈 게 없도록 만든 게 패착이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유승민 후보의 토론을 보면서 문득 이 일이 생각났다. 후보들의 TV토론이 유권자가 선택하는데 생각한 것만큼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최근의 분석도 그렇고, 매사를 깔끔하게 설명하려는 그의 태도도 유권자의 마음을 사기에는 거리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표를 얻는 일로 보자면 토론이 얼마나 논리적이냐가 아니라 유권자의 마음을 누가 더 사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그렇다고 아는 걸 모른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니 토론전략을 짜면서도 답답했겠다.
돌아가는 걸 선택지에 넣으니 문제가 한결 쉽게 정리된다. 이걸 보고 마음을 비웠다고 하는 모양이다. 그동안 굳이 선택지에 넣지 않으려 했으니 마음이 그렇게 요동칠 수밖에 더 있었겠나.
지질학을 공부하고 지질학을 생업 삼은 지 사십 년이 훌쩍 넘었다. 전문가의 경지까지 이르지는 못했어도 나름 식견을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지질학을 생업 삼아 살아오는 동안 지질학에 대한 지식이 내 신앙과 충돌한 일은 없었다. 오히려 깊이 알아갈수록 절대자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다. 예컨대 암석을 편광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아름다움이 일정한 질서를 갖추고 있으며 그 질서를 바탕으로 암석의 기원과 특성을 짐작할 수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면 그 질서를 만들어낸 절대자의 존재가 더욱 두렵게 다가오곤 했다.
요즘 창조과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그동안 이루어진 학술적 성취를 모두 부정하고 ‘젊은 지구론’을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에 대한 믿음이 이성의 바탕 위에 이루어지도록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을 허락하셨다. 물론 유한한 지식으로 무한하신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치밀한 논증과 근거를 통해 확립된 자연에 대한 이해를 충분한 근거도 없이 성경을 문자로 해석해 난도질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라고 믿는다. 건강하고 바른 믿음이라면 오히려 질서 너머에서 질서를 만들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신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그동안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선거에 임했다. 내 편이건 네 편이건 정책은 들여다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들여다 볼 필요가 없었다는 게 더 맞겠다. 나라가 이렇게까지 되고 나서야 그게 잘못인 줄 알았다. 나는 맏자식 대개가 그렇듯 보수 성향을 띄고 자랐고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기는 하다. 세월이 흐르니 어느 것이 내게 유익한지가 아니라 어느 것이 옳은지에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보수 성향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바른 보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추구해야할 가치를 선택했다. 내가 추구한 가치가 선출로 이어지면 좋기는 하겠다. 그렇지 않다 해도 가치를 기준으로 선택했다는 건 충분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 믿는다. 내가 선택한 그 가치가 소멸되지 않도록 다른 사람에게도 최소한의 선택을 받았으면 좋겠다.
글재주를 타고 날 수도 있을까? 글은 생각한 만큼 쓰는 것이니 글재주를 타고 났다는 말은 생각을 타고 났다는 말일 텐데, 그게 가능하겠나. 그러니 좋은 글을 쓰려면 그만큼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건 또 다른 일이다. 전달하기 쉽게 잘 정리하고 적절한 용어를 선택해야 하니 이 또한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글재주는 갈고닦은 노력의 결과라 하겠다. 글재주가 갈고닦은 노력의 결과라면 나름 요령이 없을 수 없다.
먼저 내용이 있어야 한다. 뛰어난 재주가 있다면 모를까 범인으로선 충분히 생각을 가다듬어야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 주제를 잡고, 생각을 정리하고, 머릿속으로 만들고 다듬기를 반복한다. 나는 한두 문장 정도 되는 글이라고 해도 하루 이상, 길게는 며칠씩 생각을 가다듬고 나서 비로소 글로 옮긴다.
글은 남이 읽으라고 쓰는 것이니 읽는 사람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문장이 단순해야 한다. 나는 가능한 한 문장에 한 가지 내용만 담는 단문을 고수하며, 길이도 한 줄을 넘기지 않으려 애쓴다. 접속사는 쓰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형용사와 부사는 가능한 쓰지 않는다. 주어와 동사만으로도 얼마든 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글은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기가 어렵다. 그 어려운 고비를 넘어야 글이 비로소 글다워진다. 예전엔 글말(文語)과 입말(口語)이 달랐지만 상대에게 내 뜻을 전하는 데는 글말이 입말을 따라오지 못한다. 이를 위해서 써놓고 나서 소리 내어 읽어서 자연스럽게 읽힐 때까지 덜어내고 다듬는다. 나는 덜어내고 다듬는 데 글을 처음 쓸 때만큼 공을 들인다. 다듬고 나면 글이 훨씬 짧아진다.
요즘 사람들은 소셜미디어 때문에 예전보다 쉽게 글을 쓴다. 생각나는 걸 온라인에 직접 올리다보니 생각이 정리되지도 않고 앞뒤 문맥이 맞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글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글이 생각을 따라가자면 써놓은 글을 다시 살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온라인에 직접 글을 올리지 않는다. 먼저 글을 쓰고, 소리 내어 읽고, 가다듬은 후 글을 올린다. 글을 올리고 나서도 틈날 때마다 읽어보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훈련이 되면 글을 쓰고 다듬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의도적으로 위의 요령을 깨뜨려 자기 생각을 강조할 수 있는 방법도 익히게 된다. 이래서 글쓰기가 재주라기보다는 갈고 닦은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빠른 시간 안에 글쓰기가 늘 수 있는데,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은 많아도 이렇게 애써가면서까지 잘 써보겠다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혜인 아범이 생각만큼 글쓰기가 되지 않는다는 글을 올려놓은 걸 보았다. 조언삼아 쓰기는 했는데 이렇게 고단한 걸 따라 하려나 모르겠다. 끝까지 읽기는 할까?
은퇴를 목전에 둔 나이에 해외근무를 선택해야 했으니 나름 얼마나 기도를 했겠나. 기도하는 가운데 내게 주신 소명이 있으리라 믿고 부임해 지난 8년 무던히 애를 썼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지금껏 소명이라고 믿었던 것 중에 어느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수많은 날을 번민으로 보냈다. 그러다 문득 소명이라고 믿었던 것이 내 계획이고 내 욕심이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내 욕심이라고 깨닫게 되니 버릴 수 있었고, 버리고 나니 비로소 번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전 투표율이 26%라는데 투표한 유권자가 1,100만이 넘었다. 생각보다 유권자 수가 많아서 확인해보니 이번 대선 유권자가 4,248만이란다. 전체 인구가 5,172만이니 19세 미만 인구가 900만을 겨우 넘는 거 아닌가. 평균 수명이 아직 80세에 미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면 선거권이 없는 인구가 1,200만을 넘어야 하는데, 결국 인구가 줄어드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말이겠다. 인구 문제가 심각한 것은 알았지만 이미 맞닥뜨린 일인 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이에 대한 대책이 새 정부 의제 중 어느 순서쯤에 들어있을까?
미국인 동료가 대선에서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었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니 괜찮겠냐고 묻는다. 한국은 한 사람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니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책이 바뀔 수는 있겠지만 그래 봐야 우선순위가 바뀌는 정도일 거라고 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잘 해나갔으면 좋겠고, 또 그러리라 믿는다. 비록 지향하는 바가 달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행적으로 보아 대통령이 되어도 잘 감당할 것으로 생각했다. 어제 오늘 보여준 모습이나 발표한 인사는 나름 무난해 보인다. 굳이 옥에 티를 꼽자면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신임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지휘를 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것은 국정농단이 과거 민정수석의 불법적인 수사 개입 때문에 증폭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시의적절했다. 그는 바로 이어진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국정농단에 대한 재수사 의지를 피력했다. 대통령 의견에 대해 답변한 것이기는 하지만,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지휘를 하면 안 된다는 소신을 피력한지 불과 수 시간 만에 검찰 수사지휘로 해석할 수 있는 의견을 보인 것은 부적절했다.
작은 청와대는 대선 공약이기도 하지만 신임 대통령의 일관된 기조이기도 하다. 오늘 발표된 청와대 조직을 보니 오히려 확대 개편된 감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첫 조직 개편부터 국민들이 의아해하는 결정을 굳이 내려야 했을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기대하면서 지켜보자. 그리고 좋은 대통령으로 국정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성원하자.
주일 아침 묵상. 소명이라고 믿고 이루려 애쓴 것이 내 의지요 욕심인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과 무관한 것을 이루려 애쓰느라 몹시 고단했고, 그것을 버리고 나니 더 할 수 없이 홀가분했다. 그렇게 한동안 평안을 누렸다. 문득 욕심을 버렸으니, 나를 부인하게 하셨으니 이제 다시 이루게 하시려는가 싶은 생각이 꾸물꾸물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주일 예배 설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셨다. 그의 존재를 받치고 있었던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하셨다. 왜 오늘 내게 이 말씀을 듣게 하시는가? 왜 신을 벗으라고 하시는가? 나는 벗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는 벗은 시늉만 한 것으로 보이셨던 모양이다. 다시 욕심이 살아나는 게 보이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걱정되셨던 모양이다. 욕심이 살아나는 걸 깨닫고 불과 두어 시간이 지나기 전에 이렇게 오금 박으시는 걸 보면.
유시민은 정치를 그만 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추구한 것은 옳았다. 내가 추구한 것이 옳다고 인정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나는 그것을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힘을 다했지만 잘해내지 못했다.” 그는 그것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래서 그의 퇴장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이 잣대로 지나온 삶을 돌아보았다. 국내 시장에서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할 수 없었다.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은 합리적인 결정이었고, 그 결정이 합리적이었다는 건 객관적으로도 증명되었다고 믿는다. 스스로 그 일을 감당하고 싶었다. 다행히 기회가 주어졌다. 힘을 다했지만 그 일을 잘해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힘에 부치기까지 한다. 이 잣대에 비추어 보면 이미 물러났어야 하는데,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다. 더 애를 쓰는 게 의미 있는 일일까? 그리고 그렇게 애쓰는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
어버이날 선물이라고 자식이 보낸 사진으로 처음 며늘아기를 만났다. 며늘아기의 얼굴에서 성품을 읽을 수 있었고, 가족이 되었으면 했다. 그리고 8년, 짐작했던 성품 그대로 가족이 되었다.
모든 생명체 중 영장류만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발달했기 때문이라는데,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표정과 만들어낸 표정을 구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들에 비해 얼굴에서 표정이나 성품을 잘 읽는 편이다. 며늘아기도 그랬고, 매제나 제수들도 처음 만났을 때 읽었던 표정과 성품 그대로이다.
남들은 내 얼굴에서 어떤 표정과 성품을 읽었을까? 내게서 따듯함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욕심일 것이고, 그저 사나워 보이지만 않아도 좋겠다.
아직 현역에 있다 보니 경제관료 인사에 눈길이 많이 갑니다. 특히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경제부총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경제부총리가 내정되고 나면 그가 쓴 글이나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평소 지론이 무엇인지 알아야 그가 펼칠 경제정책을 예상할 수 있고, 경제정책의 결과물로 나타날 산업계 동향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야구에서 타구 방향을 보고 수비하는 것과 타구방향을 예측해 미리 공이 갈 자리에서 수비하는 것이 같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산업계 동향을 예상해서 한 발이라도 먼저 준비해야 그나마 경쟁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제 청와대에서 김동연 전 국무조정실장을 경제부총리로 내정하였다고 발표했습니다. 입지전적인 인물인 데다가 정치색 없고 능력이 검증된 인사라는 평이 우세합니다. 무난하게 청문회를 통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쓴 글을 찾아보았습니다. ‘계층 상승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이동(social mobility)’에 방점이 찍혀있더군요. 가난하게 자라서인지 가난의 고착화와 대물림을 없애는 쪽으로 정책을 추구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입니다. 보수정권에서 경제관료로 성장했는데도 생각이 보수 일변도로 치우쳐 있는 것 같지 않아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가 쓴 글을 읽다가 한 곳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참척의 아픔을 겪었더군요. 참척의 아픔을 겪었으니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폭이 그만큼 넓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가 쓴 글대로 남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그 공감을 정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유능하고 따듯한 공복으로 남아주기를 기대합니다. ‘혜화역 3번 출구’ 한 번 읽어보시지요.
새 정부 들어서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안이 상식을 회복해 가고 있다. 비록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도 잘 감당하리라 믿었고, 그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아 마음이 놓인다.
각료 지명자들이 위장전입 때문에 청문 과정에서 고전을 겪고 있다. 급기야는 비서실장이 공개적으로 사과했음에도 야당에서는 대통령 직접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문제로 온종일 시끄럽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라느니, 이만한 작은 일에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해야 한다면 임기 내내 사과만 하다 말겠다느니, 하다못해 적폐세력으로부터 대통령을 보호하자는 말까지 나온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정책과 능력을 검증해야 할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은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위장전입이 실정법 위반인 것이 분명하고 그 실정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니 외면할 수도 없다. 더구나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한 인사배제원칙에 어긋난 일이 아닌가. 일각의 주장처럼 대통령이 모든 잘못에 대해 매번 사과할 수는 없다. 그렇기는 해도 새 정부에서 역점을 두는 정의와 원칙에 관한 사안이니 대통령이 직접 나섰으면 좋겠다. 원칙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기 어려웠다는 진솔한 고백과 사과, 앞으로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을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밝힌다면 대다수 국민이 양해하지 않을까. 그렇게 한다면 대통령이, 그리고 그런 대통령을 있게 한 우리 스스로가 정말 자랑스럽겠다. 부끄러운 과거를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겠고. 이제는 자랑할 만한 퇴임 대통령을 갖게 될 때도 되지 않았나?
보수와 진보는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 정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정의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