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by 박인식

공감 (2017.06.03)


쓰나미로 동남아에서 수 만 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이를 ‘수 만 명이 목숨을 잃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 목숨을 잃은 수 만 개의 사건’이라고 피를 토하듯 설교한 이가 있었다.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아픔을 공감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안전 불감증에 대해 분노했고 사고를 당한 이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이 몹시 불편했다. 가족을 잃은 이에게는 아픔이 현재진행형이었는데 나는 벗어나고 싶었고 잊고 싶었다. 오늘 문득 사람을 목적이 아니라 도구로 여겨왔다는데 생각이 미쳤고, 그래서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줄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다고 여겼으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삶으로 드리는 예배 (2017.06.05)


나오미는 남편과 자식을 잃고 삶의 소망마저 끊어진 이방 땅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고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나선다. 함께 견뎌줄 남편도 일가붙이도 없는 그곳을 향해서. 게다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저주받은 모압 출신 여인 룻에게 그 땅은 단지 타향이 아니라 모멸과 핍박을 감수해야 할 땅이었다.


그런 땅을 룻이 기꺼이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오미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시어머니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의지할 이도 없고 모멸과 핍박을 감수하고서라도 이스라엘로 돌아가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룻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 수 있었던 건 나오미의 삶 자체가 예배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식은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으로 가르치는 것이라 했다. 믿음을 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는 그래서 삶은 아랑곳없이 말만 무성한 선교를 신뢰하지 않는다.



결초보은 (2017.06.07)


진나라 위무자라는 사람이 큰 병이 들었는데 아들에게 자기가 죽으면 젊은 첩을 개가시키라고 유언했다.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자 첩이 자기를 따라 같이 죽게 하라고 했다. 위무자가 죽자 아들은 아버지가 나중에 한 유언은 정신이 혼미할 때 한 것이니 처음 유언한 것을 아버지 본심으로 여기고 서모를 개가시켰다. 위무자의 아들이 전쟁에 나가 싸우다 열세에 몰리게 되었을 때 한 늙은이가 적의 발 앞에 풀을 묶어 적을 사로잡게 했다. 그날 밤 꿈에 그 늙은이가 나타나 자기는 개가한 서모의 아버지인데 자기 딸이 목숨도 건지고 개가해서 잘 살고 있어 그 은혜를 갚았노라 했다. 풀을 묶어 은혜를 갚았다고 해서 이 고사를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 한다.


환갑을 넘어서면서 죽음 앞에서 추해지지 않기를 구하고 있다.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것이며 일흔을 넘기면 수술도 받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기는 해도 사는 동안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고 싶지는 않아 건강을 잘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도 이 마음이 변하지 않으리라고 장담은 못하겠다. 위의 고사를 보니 나이가 들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건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이런 뜻을 사전의료의향서에 밝혀놓았다. 앞으로는 이것이 법적인 효력도 갖게 된다니 자식이 내 본심을 잘 기억해 추하게 삶을 마감하지 않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부르실 때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 나서고 싶을 뿐이다.



기대 (2017.06.10)


현 정부가 선택한 것이나 결정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지난 정부보다 낫다고 반박하는 이들이 많다. 그 반박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을 비난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다. 비록 내가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현 정부를 지지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지지하는 건 현 정부가 잘해낼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잘해낼 것으로 믿고 또 그렇게 기대하는 정부에게 지난 정부보다 더 나은 것을,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게 잘못인가?



원망 (2017.06.12)


올 들어 은퇴를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기도하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니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일이 많다. 지난 시간 한 짓을 생각하면 지금 내게 대한 평판은 후하기 짝이 없다. 지금 이웃들이야 그것을 알 리 없으니 지금 모습이 난 줄 알지 않겠나. 그러다보니 어쩌다 악평을 하는 이웃을 만나도 도무지 이의를 달지 못하겠다. 억울할 일도 없고, 억울할 일이 없으니 누군가를 원망할 일도 없다.


부모야 자식 잘되라고 나무라기도 하고 때로는 매도 들지만 자식이 어떻게 부모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니 철없을 때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고 그러지 않겠나.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니 자식으로서 원망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평생 하나님을 원망해보지 못했다. 말씀을 따라 살지도 못했는데 늘 분에 넘치는 복을 받았으니 염치가 있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원망하겠나 싶어서였다. 깊은 고통을 겪을 때에도 하나님 원망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왜 누군가를 원망하지 못하고 늘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내게 있다고 자책할까? 남들은 하나님께 원망도 잘 쏟아놓는데 나는 왜 그게 근본적으로 안 되는 걸까? 혹시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내일 아침에 한 번 여쭤보리라.



결기 (2017.06.13)


김상조 교수가 공정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정쟁의 희생물이 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끝내 임명되었으니 역할을 잘 감당해주기 기대한다. 결과는 다행이라 여겨지는데 과정은 몹시 아쉽다. 야당과 틀어진 관계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니 조금 시끄럽다 말 일이기는 하다. 헌법재판소장은 표결을 거쳐야 하는 일이 아닌가. 외무장관도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럴 경우 헌법재판소장 표결 인준은 어렵지 않을까? 혹시 포기할 수도 있는 카드라고 생각한 건 아닌가? 소수의견을 많이 남긴 분이라 국민들의 사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정치를 승부로 여긴다면 새 정부의 추진방식이 옳을 수 있다. 정치를 국리민복을 위한 방편으로 여긴다면 방법이 좀 달라야하지 않겠나. 나는 현 정부가 국리민복을 위해 일하는 정부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고, 그럴만한 자질과 자세를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요즘 그들에게서 야당의 공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결기가 느껴지는데, 그래서 뉴스 들을 때마다 아슬아슬하다.



정책과 철학 (2017.06.17)


오래 전부터 저출산 문제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처음에는 산업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서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그 결과가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을 만한 재앙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관심이 더 깊어졌다. 자식을 하나만 낳은 사람으로 일말의 책임을 느끼기도 했고.


자연계에서 특정한 종의 개체수가 많아지면 종 보호를 위해 스스로 출산을 억제한다고 한다. 어류도 알을 덜 낳고 짐승도 새끼를 덜 낳는다는 것이다. 먹이는 한정되어 있는데 개체수가 많아지면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궁극에는 종 모두가 멸절되기 때문이다. 짐승 스스로 이런 판단을 하는 건 아니고 자연이라는 게 워낙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 세계인구는 35억에서 70억으로 늘었다. 그렇게 보면 저출산은 재앙이 아니라 종의 멸절을 막기 위해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인 셈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게 옳을까? 국가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저출산에서 탈피해야 하는데, 그런 결정은 결과적으로 인간이라는 종을 보존하기 위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게 될 것이니 말이다. 저출산이라는 문제를 한 국가를 지속가능한 사회로 만들기 위한 정책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아니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기 위한 철학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요 며칠 시사프로그램에서 현 정부의 장관인사를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한 ‘정책’의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인가 현 정부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철학’의 관점에서 봐야할 것인가 설왕설래하는 것을 보고 문득 든 생각이다.



상배(喪配) (2017.06.18)


아침 일찍, 평생 상사로 모신 분께서 병환으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삼십 년 가까이 상사로 모셨으니 가족인들 남 같았겠나. 가깝게 지내던 분이 떠나시는 걸 보니 이제 죽음이 바로 눈앞의 일로 다가 왔구나 싶다. 두 분 모두 성품이 밝고 긍정적이시기는 했어도 아내가 떠난 빈자리를 어떻게 감당하실까 싶어 걱정이 앞섰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고 한다. 그렇기야 하겠지만 아내가 떠나고 난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게 가능할까? 살다보면 이렇게 의미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경우도 더러는 생길 텐데, 그런 상황은 정말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



최저임금 (2017.06.18)


최저임금은 실질적으로 생활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리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최저임금을 지불하는 사업장 중 상당수가 이를 올리면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영세한 모양이다. 혹시 사업장 형편에 따라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렇게 되면 영세 사업장에선 낮은 임금으로 사람을 구할 수 없을 테니 그것도 해결책은 되지 못하겠다. 전후사정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봐도 이렇게 복잡한데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국민을 모두 아우르고 가야할 장관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더 복잡할까. 나 같으면 장관 하라고 자리를 내줘도 머리 아파서 싫다고 하겠구먼, 이렇게 머리 아픈 자리를 왜 서로 가지 못해서 안달일까?



원전 폐쇄 (2017.06.19)


1980년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 월성 원자력발전소 후속기 지질조사에 참여한 이래 사우디에서 SMART 원전 부지평가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원전사업을 해오고 있다. 국내에는 얼마 전 영구 폐쇄를 결정한 고리 1호기부터 설계 중인 한울원전 3/4호기까지 모두 32기가 운전 중이거나 건설 중에 있는데, 이 중 27기 부지평가에 참여했다. 부지평가에 참여하지 못한 5기는 대학 졸업하기 전에 이루어진 것이니 결국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발주된 모든 원전 부지평가에 참여한 셈이다. 그러니 오늘 있었던 문 대통령의 탈핵선언에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더구나 사우디 원전수출의 교두보가 될 SMART 원전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으로서 조만간 사우디 정부쪽에서 “자기 나라 원전은 폐쇄하면서 어떻게 남의 나라에 원전을 수출할 생각을 하느냐”고 힐난이 쏟아져 나올 때 뭐라 대꾸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다.


오늘 있었던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 대통령은 이렇게 원전 정책방향을 밝혔다.


“그동안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은 낮은 가격과 효율성을 추구했다. 값싼 발전단가를 최고로 여겼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후순위였고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한 고려도 경시됐다. 이제 바꿀 때가 됐다. 국가의 경제 수준이 달라졌고 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에 확고한 사회적 합의로 자리 잡았다. 친환경 에너지 세제를 합리적으로 정비하고 에너지 고소비 산업구조도 효율적으로 바꾸겠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재편해 산업 부분에서의 전력 과소비를 방지하겠다.”


옳은 말이다. 평생 원전 사업에 참여하기는 했어도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예상했고, 따라서 더 늦기 전에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에 이의가 없다. 대선 과정에서 탈핵이 주요 의제로 다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과연 탈핵으로 인한 문제를 제대로 예측하고 있는지, 문제에 대한 해법을 감내할 의지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오늘 발표를 보니 정책의 골격에는 이의를 달 일이 없겠다. 다만 재정 부담을 감내하는 일,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일, 새로운 전원을 개발하는 일 어느 하나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니 주도면밀하게 추진해 나가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시장이 어려운데 원전시장까지 줄어든 상황을 감내해야 할 후배들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다행히 문 대통령이 발표 말미에 원전해체 시장을 지원하겠다고 언급했는데, 이 정책이 어려워진 시장을 극복할 수 있는 방편이 되었으면 좋겠다.


“원전 해체는 많은 시간과 비용, 첨단 과학기술을 필요로 하는 고난도 작업으로, 이 기술 확보를 위해 관련 연구소를 설비하고 적극 지원하겠다.”



성령의 위로 (2017.06.20)


올 초에 처음으로 성령의 위로를 경험했다.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마음이 한 순간에 놀랍도록 평안해졌고, 곧 이어 그것이 성령의 위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경험은 한 번으로 족했다. 다시 경험하지 못한다 해도 그 한 번으로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아침 기도시간이 훌쩍 늘었다. 기도할 때마다 헝클어졌던 마음이 정돈되고 안개에 가린 것 같은 일상이 명료하게 드러나곤 한다.


처음처럼 극적이지는 않지만 그 후로 매일 매일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위로를 경험하고 있다. 성령께서 비로소 올해 들어서 나를 위로하신 것이겠나. 그동안 수없이 내 삶에 개입하시고 위로하셨지만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현대어 성경 (2017.06.20)


요즘은 ‘현대어 성경’을 읽고 있다. 현대인이 알기 쉽게 풀어 쓴 것이라 그동안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을 살필 수 있어 도움이 된다. 자세하게 풀어쓰다 보니 개역성경에 비해 양이 훨씬 많아 다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때로 개역성경에서는 도무지 알아차릴 수 없던 것을 깨닫기도 해서 그런 기대로 지루함을 이겨내고 있다.


엊저녁에 이사야서 22장을 읽다가 전혀 새로운 구절을 대하게 되었다. 8-11절의 말씀인데 도무지 그런 내용을 읽은 기억이 없었다. 다시 개역성경을 살펴봐도 그 말씀만으로는 이런 뜻이 들어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너희가 병기고에서 무기를 끄집어내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의 수리할 곳을 찾으며, 예루살렘의 모든 가옥을 조사하여 그 일부는 헐어서 그 돌을 성벽 수리하는 데 사용하고, 또 충분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옛 연못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가둘 저수지를 성 안에 만들었다. 그러나 너희는 오래 전에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신 하나님에게는 아무 관심도 쏟지 않았다.”


환란이 닥쳤을 때 예루살렘 사람들이 모든 지혜를 동원해서 이에 대응하지만 정작 그 환란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살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침에 이 말씀을 깊이 묵상했다. 근래에 여러 일로 번민하고, 뭔가 결정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떤 것이 지혜로운 결정일까 궁리했지만 정작 그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살피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결정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나니 강박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지기는 했는데, 그 후로 하나님의 뜻에 너무 등한했던 모양이다. 자유가 방종이 되었던 셈이다. 적절한 때에 적절히 깨우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개꿈 (2017.06.22)


꿈에서 내가 죽었다. 세상은 흐트러짐 없이 평온했고 떠나는 나도 홀가분했다. 꿈속에서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깨어나 생각해보니 내가 죽는 꿈은 처음인 것 같다. 나이가 들기는 하는 모양이다. 잠이 쉬 들지 않아 이렇게 꼭두새벽에 페북에 글 쓰고 앉았다.



준비 (2017.06.27)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채로 인생을 맞았다. 나이가 어지간히 들었으니 이제부터라도 잘 준비해서 인생을 제대로 마무리하면 좋겠다. 남자 평균 기대수명이 일흔여덟이라니 앞으로 십오 년. 잘 준비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하리라.



학력 (2017.06.29)


정부에서 공공부문 채용 때 학력을 배제하겠다고 한다. 능력 중심으로 평가하겠다는 것이니 시비 걸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명문대 출신들이 열심히 노력해 명문대 나온 것도 능력인데 왜 학력이 평가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냐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명문대 나온 걸 높이 평가하는 건 그 사람의 능력이 높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명문대를 나오기는 했는데 능력이 그를 따르지 못하면 명문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건 불합리하다. 명문대를 나오고 능력이 높으면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학력과 능력 모두 높은 평가를 받는 건 동일조건을 두 번 평가하는 것이니 이 또한 불합리하다. 학력평가는 능력평가의 전제조건이니 말이다.


문제는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총론은 옳은 데 이를 이행할 수 있는 각론이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치르는 시험이나 면접으로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수십 년 직장생활 하면서 수없이 후배들을 뽑아봤지만 학력 말고 마땅한 다른 평가기준을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그 사람이 공부한 환경을 살펴본 것인데. 새 정부 들어서 제시하는 모든 정책이 다 그렇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고, 몰랐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고치지 못하고 지금까지 왔다. 지금이라도 고치지 못한 이유를 살피고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라마단 (2017.06.30)


사우디 두 지역의 생활쓰레기 처리대책을 검토한 일이 있다. 월별 발생량을 보니 짐작했던 대로 금식월인 라마단에 음식물쓰레기가 다른 때에 비해 훨씬 많았다. 라마단에는 한 달 내내 해가 떠있을 동안 음식은 물론이고 물도 마실 수 없다. 이웃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함께 느끼고 그들에게 자선을 베풀라는 것인데, 오히려 음식물쓰레기가 평소보다도 훨씬 많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라마단이 되면 낮에는 금식을 해야 하니 밤에 음식을 더 먹게 된다. 더 먹는 정도가 아니라 이웃까지 불러 밤새도록 먹고 마시고 흥청거린다. 새벽까지 먹고 마시고 놀다 보니 해가 뜰 때쯤 잠자리에 들고, 당연히 업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라마단 때 공식 근무시간이 6시간인데 그 반만큼도 일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넷째 주에는 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고, 라마단이 끝나고 나면 고생했다고 한 주 휴일을 갖는다. 이웃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함께 느끼라는 라마단이 쾌락과 방종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어디 이슬람만 그렇겠나. 카니발도 그렇고 성탄절이나 부활절을 성대하게 보내기는 하지만 그 의미를 잊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신앙이 본질을 잃으면 그 해악으로 사회가 파멸에 이르는 건 역사로 증명된 일이 아닌가. 나 자신부터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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