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맺은 인연 (31)

by 박인식

출장으로 몇 번 유럽을 다녀온 일은 있어도 일 때문이었으니 여행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면서 언젠가 여행객으로 둘러보는 게 아니라 그곳 사람으로 일상을 누려보리라 꿈꿨다. 런던은 출장길에 이틀 머문 것이 전부여서 버킹엄궁과 워털루다리와 빅토리아역을 돌아보았을 뿐이다. 그 모두 내게는 흑백영화의 한 장면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곳이다. 사실 런던을 즐겼다고 하려면 하이드파크에서 자리 깔고 누워 책 좀 읽다가 출출하면 도시락 바구니 열어서 와인 곁들여가며 식사를 하는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사흘에 그것까지 누리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내도 음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처음 나온 유럽여행에서 음악과 관련한 곳을 돌아보는데 모든 시간을 쓸 만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후환을 생각해서 하루는 온전히 아내가 보고 싶어 하는 곳을 찾았다. 둘째 날이 되어 코번트가든에서 시작해 로열앨버트홀을 돌아보고 웨스트엔드에 있는 뮤지컬 극장을 찾았다.


당시로서야 꿈같은 이야기였지만 음악을 하는 자식을 둔 사람으로서 좋은 공연장에서 자식이 연주하는 모습을 그리는 것을 꿈으로만 돌릴 수야 없는 일 아닌가. 자식이 음악을 시작한 이후 좋은 연주자나 무대를 보면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자식이 서있는 모습을 그리곤 했다. 유럽의 여러 무대를 돌아보고 싶었던 것은 음악 애호가로서 뿐 아니라 이처럼 음악 하는 자식을 둔 아비의 마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자식이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콩쿠르 예선을 치렀다. 예선을 마치고 나서 본인이 기대하지 말라고도 했고, 나도 내심 작은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자식에게 좋은 약이 되리라 생각하고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뜻밖에 2등으로 예선을 통과하고 여행을 떠나온 이후에 본선을 치러 1등을 차지했다. 첫 출전에 대상을 거머쥔 것도 대단하지만 테너나 바리톤이 상위 입상을 하는 관례에 비추어 베이스로 대상을 차지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도 매우 드문 경우이었기 때문에 그 기쁨은 더 컸다.


기쁜 마음으로 코번트가든에 있는 로열오페라극장을 돌아보고 이어서 로열앨버트홀을 찾았다. 로열오페라극장은 세종문화회관이나 국립극장, 예술의 전당에서 주는 느낌과 아주 달랐다. 여러 건물 사이에 묻혀있어서 설명을 듣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을 정도였다. 더구나 코번트가든은 로열오페라극장이 들어서기 전부터 청과물시장이었던 곳이다. (청과물시장은 수십 년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지금은 쇼핑과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채워져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에 비해 로열앨버트홀은 고색창연한 왕립대학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로열앨버트홀을 돌아보고 나오다가 인근에 있는 왕립음악원에서 악기를 들고 나오는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언젠가 자식이 저 무리에 들어있게 되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당시까지는 그저 출장으로나 외국을 다녀본 게 전부여서 유명한 곳이라도 해도 무얼 어떻게 돌아봐야 하는지 몰랐다. 오페라극장이나 유명 연주장에는 모두 극장 투어가 있었던 것을 알았더라면 연주를 보지는 못해도 극장이라도 돌아보고 오는 것인데. 은혼식 여행이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녁에는 피커딜리 광장 근처에 있는 유명한 Prince of Wales 극장에 들렀다. 여행오기 전 서울에서도 공연되었던 ‘맘마미아’를 공연하고 있었다. 자리에 따라 다르지만 가격이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남아있는 좌석이 없었다는 것. 결국 주변에 널려있는 뮤지컬 공연장 간판만 구경하다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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