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맺은 인연 (32)

by 박인식

교회 청년들에게 유럽 저가항공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어서 런던에서 빈을 갈 때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일반항공이 30만 원 가까이 했는데 저가항공은 8만 원인가 그랬다. 공항이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조금 불편할 거라고는 들었지만 그 가격이면 충분히 감수하겠다 싶었다. 문제는 새벽 네 시에 출발해 호텔에 하루 더 묵기도 애매하고, 게다가 버스터미널만한 공항에는 마땅히 앉을 곳도 없고, 젊은 여직원은 억양이 강하고 빠른데다가 수하물 붙이는데 어찌나 까다롭던지. 탑승해서도 익숙지 않은 게 하나둘이 아니어서 그것으로 저가항공과의 인연이 시작이자 끝이 되었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고전음악의 대표로 일컫는데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작곡가인 세 사람은 놀랍게도 모두 빈에서 거의 동 시대에 활동했다. 그 중 어느 한 사람만 활동한 도시라고해도 여행할 충분한 이유가 될 텐데 세 사람이 모두 한 도시에서 활동하고 또 한 곳에 묻혔으니 음악 애호가로서 빈을 언젠가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짐을 풀고 제일 먼저 베토벤 기념관인 파스콸라티하우스를 찾아 나섰다. 숙소 바로 건너편에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작고 아담했다. 베토벤 기념관이라고 해서 상당히 웅장하고 사람이 줄을 이을 것으로 짐작했던 모양이었다. 기념관 명판에 “베토벤이 1804년에서 1815년까지 머물면서 교향곡 4, 5, 7번, 피델리오 서곡과 레오노레 서곡, 피아노협주곡 3번, 바이올린 협주곡 4번, 현악4중주 작품번호 59번과 95번 외 다수 작품 작곡”이라고 적혀있었다. 아, 정말 베토벤 가까이에 왔구나 싶었다.


건물 1층 대문에 기념품 가게는 보이는데 도무지 기념관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물어물어 4층에 있다는 기념관을 올라가는데 계단에 불조차 켜놓지 않았다. 기념관에 들어가니 일요일은 무료라면서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베토벤이 작곡할 때 쓰던 피아노도 보고, 직접 그린 악보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베토벤이 살던 집이었다는 정도 이외엔 별다른 유물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다른 음악가의 기념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문득 베토벤이 이 계단을 오르내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토벤이 오르내리던 계단에 서서 아내에게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했다. ‘베토벤’이 밟고 다니던 바로 그 계단에 ‘내’가 서서. 베토벤 동상은 베토벤 광장에 서있었고 광장 명판 아래 ‘슈베르트가 1808년에서 1813년까지 살면서 학교 다녔던 집’이라는 명판이 함께 붙어 있었다. 두 사람은 동 시대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한 마을에 사는 이웃이기도 했던 셈이다.


베토벤 기념관에서 나오는 길에 쇼텐교회에 들러 예배를 드렸다. 교회 문 앞에 오후에 열리는 바하 브람스 보컬 앙상블 연주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오후에 슈테판 성당에서 성가대가 미사곡을 연주하는 것을 볼 계획이어서 아쉬움을 안고 돌아섰다. 교회 숫자에서는 우리가 압도적이고 교회마다 음악 하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왜 저런 연주회 한 번 할 생각을 하지 못할까 싶었다. 슈테판 성당으로 가서 미사곡 연주회에 참석했다. 삼십 여명 대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무반주로 불렀다. 연주장이나 교회에서 듣던 것과는 울림이 상당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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