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서는 유럽여행을 계획하면서 빈을 먼저 꼽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작곡가로만 여겼던, 그저 상상 속에 남아 있는 존재인 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평생 그들의 음악 속에서 살고 그것 때문에 감동했던 한 이방인에게 주는 인생의 보너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나친 감상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내게 인간 이상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생가는 잘츠부르크에 있어서 빈에서는 그의 조각상과 기념관인 피가로하우스를 찾아보기로 했다. 슈테판 성당 뒤편 좁은 골목 안에 있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물어 피가로 하우스를 찾기는 했는데 마침 수리 중이라 그저 공사장만 보고 돌아섰다. 한 해 전에 수리를 시작해 다음 해나 되어야 문을 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오후에 도나우강을 보러 가는 길에 슈트라우스 기념관에 들렀다. 유물이라고는 달랑 슈트라우스가 직접 그린 악보 한 장, 슈트라우스 음악을 틀어주는 헤드폰은 그나마 하나가 고장 나 있었고, 초상화 몇 점이 전부였다. 어떻게 이래놓고 돈 받을 생각을 했을까.
다음날 빈에서 이삼십 분 떨어져있는 중앙묘지를 찾았다. 음악가들의 묘지가 있는 곳이라고 해서 그들만 묻혀있는 묘지가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그저 묘지 한쪽에 음악가 묘지가 모여 있는 것이었다. 베토벤ㆍ모차르트ㆍ슈베르트ㆍ브람스ㆍ요한 슈트라우스 부자ㆍ조셉 슈트라우스. 일세를 풍미한 음악가들이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옹기종기 사이좋게 모여 있었다. 죽어서도 심심치는 않겠다.
모차르트(1756~1791, 35세)는 워낙 신동으로 알려진데다가 요절했기 때문인지 나이가 많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동시대를 살기는 했지만 사실은 베토벤(1770~1827, 57세)보다도 훨씬 나이가 들었고, 셋 중 가장 나이가 아래인 슈베르트(1797~1828, 31세)가 오히려 모차르트보다 더 젊은 나이에 죽었다. (지금 보니 모차르트 사후 6년에 슈베르트가 태어났다. 동시대이기는 하나 만나지는 못했겠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세 사람의 묘지가 한 자리에 모여 있는데 제일 형님인 모차르트가 앞쪽 가운데, 그 뒤에 왼쪽에는 베토벤이 오른쪽에는 슈베르트 묘지가 있다. 좌청룡 우백호가 아니라 좌 베토벤 우 슈베르트인 셈이다. 그 옆으로 브람스와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 조셉 슈트라우스 묘지까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빈을 돌아보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지만 이렇게 음악가의 흔적을 따라다니는 게 어디 흔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참 감사했다. 그리고 아내가 그런 나를 자랑스럽게 여겨줬으면 싶었다. 중앙묘지를 돌아보고 나오는데 아내 얼굴이 발그레했다. 그럼 그렇지. 알아줘서 흐뭇하기도 하고 아내와 취향이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뒤에 무슨 자리에선가 은혼식 여행 다녀온 이야기가 나왔다.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은 갔을 텐데 중앙묘지 돌아보고 나올 때 아내가 좋아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가 망신만 당했다. 아내는 얼굴이 붉어진 것은 맞는데, 아무리 음악가가 좋아도 그렇지 묘지까지 나를 끌고 와야 하나 싶어 열 받아서 그랬다지 않는가. 이런 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