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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Sep 08.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34)

레이저디스크가 나오고 처음 산 음반이 로마 월드컵 축하공연이었던 Three Tenor Concert와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였다. 지극히 절제된 움직임으로 오케스트라를 휘어잡았던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지휘도 볼만 했고 매년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빈의 뮤직페라인 극장 안의 화려함과 관객의 면면도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그래서 빈을 여행하면서 뮤직페라인 극장을 꼭 들러보기로 마음먹었다.


뮤직페라인 극장은 빈 중심에 있는 오페라극장에서 두어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고, 빈 콘서트 하우스와 이웃하고 있다. 말하자면 세계적인 연주장 세 곳이 모두 한 곳에 몰려있는 셈이다. 빈에 머무는 동안 뮤직페라인 극장에 공연이 없어서 극장이라도 구경하려고 찾아갔다. 극장 투어라는 게 있다고 해서 표를 사려고 보니 그것도 매일 있는 게 아니었다. 혹시나 싶어 사무실에 들어가 먼 곳에서 왔는데 이곳 보는 게 꿈이었다며 구구절절이 사정을 해봤지만 단칼에 기각. 오페라극장은 빈에 도착하자마자 달려가 공연 중인 도니제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예약하려 했지만 이미 매진. 표 파는 창구에서는 적어도 한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며 웃는다. 기가 차다는 뜻이었겠지.


길거리를 지나는데 뮤직페라인에서 바리톤 토머스 햄슨 연주가 있다는 포스터가 보인다. 빈 오페라극장 연주일정을 살펴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거의 매일 오페라가 무대에 올랐고 출연진 역시 세계 정상급 성악가 일색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나 볼 줄 알았던 기라성 같은 연주가와 작품을 이곳에서도 매일같이 볼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알만한 작품만 꼽아도 라트라비아타, 로엔그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피가로의 결혼, 팔스타프, 세빌리아의 이발사, 박쥐, 토스카, 발퀴레, 코지판투테, 돈지오바니, 마술피리, 돈카를로, 아이다에 이르기까지. 한 달만 이곳에 머무르며 오페라를 즐긴다면 세계 정상급 성악가들의 세계적인 오페라를 대충은 섭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빈 오페라극장은 뒤로하고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공연이라도 보기로 했다. 프로그램을 보니 실내악 연주도 하고, 오페라 아리아도 몇 곡 부르고, 심지어는 발레까지 들어 있었다. 수준이 오죽할까 싶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연주회는 팔라리스궁에서 열렸는데 분위기라던가 음향이 전문 연주장에 비해 뒤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긴 작곡가가 살아서 활동하던 때의 연주장이 모두 이와 같았으니 그 상태를 고려해서 음악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그 음악이 그 공간에서 빛을 발할 수밖에.


놀랍게도 연주 수준이 기대를 훨씬 뛰어 넘었다. 물론 정상급의 연주와 같을 수야 없겠지만 그저 서울에서 열리는 어지간한 공연에 뒤지지 않았다. 특히 아리아를 부른 소프라노와 바리톤이 인상적이었다. 좌석이 불편해서 조금 아쉬웠다.


<뮤직페라인 극장>
<빈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도니제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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