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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Sep 06. 2023

네옴시티

이종호

진한엠엔비

2023년 3월 6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추진 중인 네옴 사업이 화제에 오르면서 이곳저곳에서 나름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개중에 귀담아 들을 게 없는 건 아닌데 대체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짜 맞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정보라는 것이 사실도 아니고 현실과 동떨어진 게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알려진 것과 같이 네옴 사업은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석유 이후(post oil)’를 대비해 국가 예산의 수십 배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해 사막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수출시장을 찾는데 목말라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관심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 사업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우디가 그것을 뒷받침할 재정적 여력이 있는지, 투자 사업으로 추진한다면 투자비 회수는 가능할 것인지, 기술적인 문제는 없는지, 주민은 어떻게 동원할 것인지, 신도시가 자립할 경제적 산업적 바탕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십 년 넘게 사우디 시장에 도전했던 사람으로서 이 사업에 관심이 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관련 기사는 물론 나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내리고 있는 평가를 샅샅이 찾아보고 있다. 우리 언론에서 보도한 사우디 관련 기사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사우디 정부가 발표한 것을 전하는 정도에 불과할 뿐 분석기사라고 할 만한 것을 보지 못했다. 사실 외신의 사정도 그다지 다르지 않더라. 물론 일반인인 내가 찾아 읽을 수 있는 외신이라야 뻔한 것이지만 말이다.     


한 달쯤 전에 읽었던 <네옴시티>라는 같은 제목의 책은 신문기자 출신의 중동컨설턴트 유태양이라는 사람이 쓴 것이다. (유태양 저자가 쓴 책은 금년 7월에 출간되었고, 지금 이 책은 금년 3월에 출간되었다. 아무리 네옴이 화제라고 하지만 어떻게 같은 제목으로 책을 출간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유태양 저자가 쓴 책에서는 의미 있는 정보도 있고 나름의 판단과 평가가 들어 있었다. 현실과 거리가 있는 내용이 적지 않고 사실 관계의 오류도 몇 곳에서 확인되어 아쉬움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그 정도라면 참고는 되겠더라.     


이 책은 분석은커녕 내용 자체가 피상적이기 이를 데 없다. 이미 보도된 기사만 잘 정리해도 이보다는 낫겠다. 그런 형편에 무슨 분석 기사를 기대하겠는가. 더군다나 380쪽 내용 중 244쪽을 네옴에 적용하겠다는 기술을 나열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물인터넷, 재생에너지, 그린 수소, 연료전지, 인공지능, 하이퍼루프, 드론, 자율주행자동차, 양자 컴퓨터, 인공지능, 소형원자로. 이 기술이 네옴에 어떻게 접목할 것이라는 내용도 없다. 그저 각 항목 말미에 억지스럽게 사우디 현황을 몇 줄 덧붙였을 뿐이다. 거기에 ‘한국의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40쪽에 걸쳐 중동진출 역사를 정리해놨는데 이 또한 잘못 알려진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네옴에 관련한 내용이라고는 1부 ‘네옴시티의 탄생’ 47쪽, 5부 ‘사우디 비전 2030’ 22쪽, 저자의 의견이라고 할 수 있는 6부 ‘바이 코리아’ 18쪽이 전부이다. 네옴시티가 궁금해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이 얻을 내용은 책 내용의 1/4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앞서서 언급한 네옴에 대해 기본적으로 확인해야할 내용에 대해서는 당연히 아무런 언급도 찾을 수 없다.     


책의 내용 중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과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혁명적인 수직농업과 온실을 이용하는 스마트팜을 도입한다는 것인데, 현재 약 80%의 식품을 수입하는 사우디로서는 혁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p.29     


스마트팜은 네옴의 주연에 해당하는 The LINE에 설치된다. 이 건물은 높이 500미터, 폭 200미터, 길이 170킬로미터에 이르는 전대미문의 구조물이다. 실현 가능성은 둘째 치고라도 높이 500미터 초고층 건물이라면 면적당 건설비가 20층 건물의 3~4배에 이른다는 것이 정설이다. 게다가 이 건물에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최첨단 시설이 들어선다. 그 시설의 건설비 뿐 아니라 운영비가 우리의 짐작을 훨씬 넘어설 것이라는 말이다.     


네옴을 관장하는 공공투자기금(PIF) 총재도 그렇고 지난 6월 네옴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하느라 방한했던 나드미 네옴 CEO도 네옴은 투자사업인 것을 밝혔고 우리기업의 투자를 기대한다는 발언도 했다. 결국 네옴은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될 것이고, 이는 분양을 전제로 한다. 이와 같이 천문학적인 건설비를 분양가로 회수하자면 그 수준은 아마 현재 서울의 고가 아파트보다도 훨씬 높을 것이다.   

  

그런데 그 비싼 공간에 스마트팜을 만든다? 그렇다면 거기서 나오는 채소며 과일은 얼마를 받아야 할까? 사우디에서 소비되는 농산물과 과일은 모두 인근 저개발국가에서 수입한 것이다. 그래서 사막인 사우디의 농산물이 한국보다도 싸다. 그런데 그런 것을 마다하고 초고가의 공간인 스마트팜에서 농산물과 과일을 공급한다는 계획이 합리적인지 의문이다.     


“옥사곤은 지속 가능한 재생에너지, 자율주행을 특징으로 하는 이동성, 물류혁신, 지속 가능한 식량, 건강 및 웰빙, 기술과 디지털 제조, 현대적인 건설 등 7개 분야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옥사곤은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인간-기계 융합, 인공지능과 예측지능, 로봇공학과 같은 첨단 기술을 채택함으로서 산업 중심지를 재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p.36     


신도시를 건설하면 먼저 신도시의 성격이나 목표를 규정해야 한다. 세종은 행정도시, 일산 및 분당은 주거도시, 판교는 IT 도시, 이런 식으로 말이다. 목표가 없다면 정체불명의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네옴이 어떤 도시인지에 대해서는 사업 추진을 발표하고 나서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 ‘네옴은 첨단도시’라는 것이 전부이다. 그 첨단적인 시설로 뭘 하겠다는 목표인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물론 국가 운명이 걸린 거대사업을 추진하면서 그런 계획이 없을 리 없다. 그래서 내 질문은 그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저자가 열거한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재생에너지, 자율주행, 물류혁신, 건강과 웰빙,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로봇공학. 이 모든 것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내 질문은 재생에너지를 공급해서, 자율주행 방식을 도입해서, 물류를 혁신해서,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과 로봇을 활용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는 말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당연히 없다.     


네옴 홈페이지에 올라온 옥사곤 항목에는 ‘선진 청정 산업의 요람, 기업친화적 진취적 기업환경, 선진화된 청정 에코시스템,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생활환경’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도 옥사곤이 뭘 하는 곳이라는 설명은 없다. 궁금하기 짝이 없다.     


“현재 옥사곤은 세계 최대 규모의 그린 수소 프로젝트, 세계 최대 규모의 모듈식 빌딩 공장, 이 지역 최대 규모의 하이퍼 스케일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네옴의 나드미 CEO는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만들어지는 항구 도시에 2022년부터 이미 제조기업의 입주가 시작되고 있다고 밝혔다.” p.38   

  

옥사곤의 넓이는 40평방킬로미터로, 직경 7킬로미터 정도인 팔각형 단지이다. 서울 강남구와 넓이가 같다. 지난 6월 서울 DDP 전시회에서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옥사곤에는 주택단지, 공원, 물류단지, 연구단지, 거기에 크루즈 터미널까지 들어설 계획이다. 옥사곤 중앙 상당 부분이 수로를 이루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40평방킬로미터는 턱없이 부족한데, 거기에 세계 최대 규모의 그린 수소 프로젝트, 모듈식 빌딩 공장, 하이퍼 스케일 데이터센터가 들어가는 게 가능한가?     


“사우디가 네옴시티를 개발하는 요인 중 하나는 수많은 관광객을 사우디로 유치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냐는 지적이 제기되었지만 유사한 예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는 세계최고층 빌딩인 부르즈 칼리파, 세계 최대 쇼핑몰인 두바이몰, 중동 최초의 스키장,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르즈 알 아랍 호텔, 세계 최대의 인공섬과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로 세계인의 시선을 끌었다.” p.45     


두바이도 가능했는데 사우디라고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바이로 몰리는 관광객을 사우디로 뺏어오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관광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것인가? 관광객 유치 전쟁은 외국과 벌이는 것만이 아니다. 네옴에 인접해 추진하고 있는 알울라 유적지, 홍해리조트 개발, 남쪽 국경에 있는 아시르 국립공원 개발, 수도 리야드에 접해 있는 왕가 발원지 디리야 개발, 세계 최대 복합위락단지인 키디야, 이 모든 사업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네옴이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라면 이 경쟁구도에서 어떤 차별점을 보일 것인가 밝혀야 할 것이 아닌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난 아직 그런 기사를 보지 못했다.     


“건설업계에서는 1976년부터 1983년 사이를 중동붐에 힘입은 우리 건설업계의 확장기로 생각하는데 8년간 중동 지역 건설 수주액은 607억 달러로 이 기간 전체 해외 수주액의 92%를 차지했다. ... 중동 특수는 한국으로서 그야말로 절대적인 기회였다. 이를 발판으로 그동안 외화보유에 어려움을 겪던 한국경제는 상당한 힘을 축적하면서 이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어가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p.334-335     


저자는 여기서 한국 기업이 중동사업으로 상당한 돈을 벌었다는 말을 명시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글이다. 한국 기업이 중동사업으로 한국경제를 부흥시킨 것은 맞다. 하지만 저자가 언급한 시기에 우리 기업 중에 중동사업으로 돈을 번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내가 부임한 직후인 2010년에 5억 달러짜리 사업 두 건을 한 건 가격인 5억 달러에 수주해 몇 년 뒤 한꺼번에 적자를 털어내는 빅배쓰를 시전한 일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 기업이 중동사업을 발판으로 성장하고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판단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중동사업에서 이익을 많이 남겼기 때문은 아니다. 회계 상으로는 대부분 적자였다는 말이다. 너무도 긴 이야기이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빈 살만 왕세자의 재산을 약 2조 달러, 한국 돈으로 2600조 원으로 추정한다. 한국 2023년 예산의 거의 4배나 되는데, 단순히 보통 예금을 넣어놔도 1년 이자가 50조 원이다.” p.361     


이런 이해를 가지고 네옴에 대한 책을 썼다는 용기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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