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네트웍스
사회평론아카데미
2023년 4월 30일
언젠가부터 <보보담>이라는 잡지가 배달되었다. 신청을 했으니 배달이 되었을 텐데 신청한 기억도, 책값을 지불한 기억도 없다. 지난봄에 하나 받고 두 달쯤 전에 하나를 더 받았다. 빌려온 책 반납하고 나서 밀린 책을 읽으려다가 문득 이 책에 눈길이 끌렸다.
열어보니 대단한 잡지다. LG네트웍스에서 계간으로 발행하는 무가지(無價誌)인데 어지간히 비싼 잡지보다 더 품위 있고 내용도 알차고 심지어 종이도 고급이다. 마치 예전에 아껴 읽었던 <뿌리 깊은 나무>나 <샘이 깊은 물>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잡지 표지에 로고와 함께 이런 글이 적혀있다.
“함께 걸으며 나누는 이야기인 <보보담>은 한국의 사람이자 그들이 처해 있는 자연이며, 또 그들이 자연환경과의 투쟁을 슬기롭게 이어오며 만들어놓은 문화이다.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과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결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현명하게 대처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과거로부터 현재를 가져오고, 현재로부터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그래서 보보담은 미래를 꿈꾸기보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 그것이야말로 먼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LS네트웍스가 기업의 사회공헌 차원에서 2011년 여름호로 창간한 잡지이다. LS그룹을 이끌고 있는 구자열 회장이 창간호부터 줄곧 보보담의 편집주간으로 잡지의 총책임을 맡고 있단다. 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서 만드는 사외보인 셈이다.
“구 회장은 기획안을 보고 받고 다룰 지역 후보 중 독자 의견 등을 반영해 책의 주제를 결정한다. 필진은 인문 분야의 전문가들로 교수나 작가들이 참여한다. <보보담>은 잡지 형식으로 발행되다가 5년 전부터는 소장해서 계속 두고 꺼내 읽는 책을 만들기 위해 차별화를 시도했다. 내용은 좀 더 학술적으로 바뀌었다. 구 회장은 최근 제작 실무자에게 <보보담>을 죽을 때까지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보담>은 매번 5000부를 찍는데 배송비를 포함해 한 호를 제작하는 데 1억 원 이상이 든다. 1년에 4억~5억 원을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전국 800여 곳의 공공도서관과 300여 곳의 대학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구독 신청을 한 일반 독자에게 무료로 배송한다.”
지금은 배부처가 모두 채워져서 더 이상 구독 신청을 받지 않는다니 내가 잡지를 무료로 받아보는 일반 독자로서 거의 막차를 탄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기특한 일이 있나.
책을 받아보고 <뿌리 깊은 나무>를 연상한 것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구 회장이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의 열렬한 독자였고, 요즘 그런 잡지가 나오지 않는 걸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다가 <보보담>을 직접 창간했다는 것이다. 단편적인 지식에 익숙해 있는,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지만 정작 한국 이야기는 잘 알지 못하는 회사의 젊은 직원들을 생각하면서. 그 덕분에 일반 독자들까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보보담>은 기존 콘텐츠를 재가공하거나 상업용 이미지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편집국에서 직접 생산한 콘텐츠만을 담는다는 것이다. 편집장이나 사진작가가 길게는 두 달을 지역에 가서 살면서 사람과 풍경을 담고, 인터뷰를 위해 한 사람을 예닐곱 번씩 찾아가기도 하고,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같은 장소를 서너 번씩 찾기도 한단다.
2023년 봄호는 전주를 다루고 있다. 전주의 근원과 역사와 문화와 음식까지 전문가들이 친절하고 깊이 있게 설명한다. 먼저 책을 열면 사진가 조재무가 찍은 전주의 봄 사진이 열 장 가까이 나타난다. 사진에 감동하다 보면 자연히 어떤 기사가 실렸을까 기대하게 된다.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장을 지냈던 김현호 <보보담> 편집장의 글이다.
“백제 시대의 이름인 ‘완산(完山)’과 이후의 이름인 ‘전주(全州)’, 그리고 토박이 말인 ‘온고을’에는 모두 ‘온전하다’ 혹은 ‘완전하다’는 뜻이 있다. 이는 단순히 물산이 풍부하거나 산업이 발달한 곳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주에는 거의 모든 것이 있었다. 전라도와 제주도를 총괄하는 전라감영, 나라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경기전, 호랑이 눈썹도 구한다는 성문 밖 큰 장터, 대사습놀이로 대표되는 당대 음악가와 공연예술가, 최고 수준의 공예품, 풍부한 물산을 바탕으로 하는 음식 문화, 책과 출판을 통해 생산되는 지식에 이르기까지 전주는 모든 것을 온전하게 지닌 풍요로운 땅이었다.”
“호남을 통일하며 빛나는 문화를 일구었던 백제는 결국 패망했다. 이백사십여 년이 지나 견훤은 전주와 익산을 중심으로 후백제를 세웠으나 고려와 패권다툼에 패배했다. 승리자인 고려 태조 왕건은 이곳 사람들과 혼인하거나 관직을 맡기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다. 해방 이후 서울과 부산을 중심으로 재편된 새로운 산업과 물류의 축에서 벗어나 있는데다 농업 기반의 경제 구조가 지속되었던 탓에 전라북도와 전주시의 경제와 산업은 전국에서도 가장 취약한 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불과 한 달이 되지 않아 한양과 충주와 성주에 있던 서고가 불타고 전주서고만 남았다. 전주서고마저 불타면 조선의 실록은 모두 사라지게 되는 상황이었다. 경기전 참봉 오희길을 비롯한 몇 명이 태조에서 명종까지 13대에 걸친 실록 804권과 태조 어진을 숨길 곳을 찾아 험난한 내장산을 하염없이 헤맨다. 내장산에서 충청도 아산으로, 황해도 해주로, 강화도로, 평안도 묘향산 보현사까지 2천 리 이상을 떠돈다. 그들의 고된 행보는 오륙 년이나 이어졌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참봉의 월봉은 쌀 열 말과 콩 다섯 되에 불과했다. 무거운 책을 지고 산중으로 돌아다닐 만한 보답은 아니며, 실록을 지키는 것이 그의 고유 업무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 왕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거의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페이스북에 우리 고전문학을 소개하는 울산대 노경희 교수가 조선 후기 이 지역의 인쇄 출판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올렸다. 그동안 ‘완판본(完板本)’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그저 여러 판본 중 하나인가보다 생각했다. 그의 글을 통해서 그것이 전주와 인근 지역에서 만든 책이라는 사실과, 그에 대응해 ‘경판본(京板本)’과 ‘방각본(坊刻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완판본’은 전주와 인근에서 만든 책을 뜻한다. 백제 시대 지명인 완산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에 대응해 서울에서 만든 책은 ‘경판본’이라고 하며, 민간에서 사고파는 책은 목판에 판각해 ‘방각본’이라고 한다. ‘방각본’은 1576년에 출판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지만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은 18세기 후반의 일이다. ‘방각본’의 백미인 한글 소설은 서울의 경판과 전주의 완판이 두 축을 이룬다. ‘방각본’은 쉽게 알아보기 힘든 서체를 사용했으나 후대로 갈수록 누구나 알아보기 쉬운 서체로 바뀌었는데, 이는 한글 소설의 독자층이 지식층에서 평민층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판본’은 한문을 번역한 문어체가 주를 이루고 ‘완판본’은 일상어와 방언이 많이 섞인 구어체로 이루어졌다.”
전주라고 하면 무엇보다 먼저 음식이 떠오를 정도로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음식민속학자인 양미경을 통해 전주 음식의 유래를 알아보자.
“매달 2일과 7일에 남문 밖에서 열리는 장은 규모가 대단했다. 우시장이 열리고 전국 최대 규모의 약령시가 개최되었다. 수많은 인파와 물자가 모이는 곳에는 으레 음식 문화가 발달하기 마련이다. 전주 음식은 좋은 재료와 양념을 아끼지 않고 써서 풍부한 맛을 내기로 유명했다. 전주에는 예로부터 풍토병이 심했는데 전주 사람들은 콩나물로 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까닭에 해장국에 꼭 콩나물을 넣었다. 이렇게 생긴 전주 콩나물해장국은 전주 약령시를 통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는다.”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은 1951년 개점한 ‘한국집’이었다. 처음에는 떡을 팔다가 차차 점심 때 떡국을 파는 것으로 확장했다. 떡국이 겨울 한 철 메뉴이다 보니 다시 궁리해 낸 것이 비빔밥이다. 워낙 비빔밥은 바쁜 시장통에서 큰 그릇에 갖가지 나물을 넣고 한꺼번에 밥을 비빈 후 한 그릇씩 떠서 팔던 것이고, 이것을 뱅뱅돌이 비빔밥이라고 했다. ‘한국집’ 주인은 뱅뱅돌이 비빔밥과 차별화해 갖은 나물과 철마다 나는 특별한 재료를 넣고 그 위에 소고기 육회를 올렸다. ‘한국집’이 비빔밥으로 인기를 끌자 주변 식당도 메뉴에 이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신세계에서 판촉행사로 개최한 ‘팔도강산 특산물 민속전’에 ‘중앙회관’이 초대되었다. ‘중앙회관’에서는 비빔밥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곱돌그릇을 개발했고 이것이 돌솥비빔밥이 되었다. 전주비빔밥의 실체는 이와 같이 전주 저잣거리 상인들의 치열한 경쟁과 노력의 산물이다.”
전주비빔밥이 궁중음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모양인데 필자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전주의 영화관, 피리, 종이우산에 이어 얼마 전 프로 구단이 떠나 소란스러웠던 경기장 이야기까지 다양한 소재의 글이 실렸다. 보는 (읽는 것이 아니라) 내내 느꼈지만 이 잡지는 정말 고급스럽다. 내용과 이를 받쳐주는 사진과 심지어 사용한 종이까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아마 별 생각 없이 구독 신청했던 모양인데, 이렇게 기특할 데가 있나.
옥에도 티가 있다고 하나 아쉬운 것이 눈에 띄었다. 목차에 표시한 페이지가 맞지 않는다. 본문에 달려 있는 각주 번호도 맞지 않고. 이미 여름호도 도착해 있으니 눈여겨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