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현ㆍ도례미ㆍ어유경
사회평론아카데미
2023년 9월 22일
어쩌다 보니 자식이라고는 아들 하나를 두었다. 아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부모에게 준 기쁨이 평생 속 썩이는 것을 덮고도 남는다는데, 나는 현장에서 현장으로 떠돌아다니느라 그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외동이라 혹시 버릇없다는 소리나 듣지 않을까 늘 엄한 아버지로 살았다. 자식이 장성해 가정을 이루고 아이 둘의 아빠가 되었다. 아쉽게도 아이들이 외국에서 나고 자라고 있다. 자식도 손녀도 모두 자라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말을 이리도 길게 하고 있다.
그런 나라고 해서 아이들 키우는데 관심이 없기야 하겠나. 아들에게는 관심을 쏟지 못했으니 손녀들에게라도 쏟고 싶은데, 멀리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 엄마가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어 그럴 기회는 영 물 건너갔다.
가까운 교우가 육아와 관련한 책을 출간했다. 임상심리학자인 그와 공저자인 두 분 모두 워킹맘이다. 나는 임상심리학자인 그 교우에게 신세를 진 일이 있다. 아흔 넘으신 어머니의 까다로우신 성정이 혹시나 이상 징후가 아닌가 싶어 상담을 받았던 것이다. 그가 심리학자였다면 그저 그런 학문을 하는 사람이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선에서 직접 사람을 상대로 관찰하고 판단하고 상담하는 이여서 아닌 척 하면서도 늘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임상경험을 갖춘 학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고, 그저 내 곁에 그런 학자가 있어서 든든하다는 말이다.
임상심리학자인 워킹맘 세 분이 상담을 요청한 아이들 16명의 사례를 놓고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한 대담 내용을 책으로 정리했다. 제수들이나 며느리를 포함해 주변에 워킹맘이 적지 않아 그런 상황에 놓인 아이들의 문제를 몇 가지 보고 들은 바가 있고, 그래서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에서 그런 경우 대부분을 다루고 있지만 ‘폭식(暴食)’에 대한 것은 다루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들의 아이들에게 그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그래도 그게 작은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아이들이 겪는 문제의 원인 중 상당 부분이 아이가 아닌 부모에게 있다는 말은 놀라우면서도 당연하다. 어른들이 자식은 말로 키우는 게 아니라 사는 모습으로 키운다고 하셨고, 살아보니 정말 그렇더라.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놓였을 경우 아이에 대한 인내심이 줄어들어 아이의 문제가 더 심각하게 보이거나, 그것이 부모의 행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엄마가 친구와 즐겁게 통화하고 있을 때 평소에 엄마가 자주 먹지 못하게 하던 초콜릿을 먹어도 되는지 물었더니 쉽게 허락하더라”는 사례는 부모가 자칫 놓치기 쉬운 점을 잘 짚었다. 나 역시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들이 중학교 졸업할 때쯤 되어서야 비로소 집에서 출근하는 날이 더 많아졌고, 아마 그때쯤부터 아들의 삶을 제대로 지켜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때 가장 난감했던 일 하나가 언제 아는 척을 하고 언제 모르는 척을 해야 하는지 구분하는 것이었다.
저자들은 떼쓰는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에 대해 이렇게 조언한다.
“부모 반응이 아이의 문제 행동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울거나 떼쓸 때 반응하지 말라고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막막해한다. 우는 아이를 못 본 척하는 게 아이를 방임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스로 진정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다음에 아이가 원하는 것을 말로 표현할 때 반응해야 한다.”
같은 사례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해 부모 의견이 다른 경우) 학업이나 전학과 같은 의사결정에 깊이 간여하지 않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들도 있지만 이것은 아이의 문제 행동을 개선하는데서 뒤로 물러서는 일이다. 부부가 함께 의논하고 역할 분담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딱 부러지게 개입해야 한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개입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 인격에 관한 문제인데 정답이 어디 있겠으며, 정답이 있다고 한들 어디 하나만이겠는가. 그렇기는 해도 이 사례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지켜보는 것’과 ‘개입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아들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더할 수 없을 만큼 관계가 악화되었던 일이 있다. 여러 사정이 얽혀서 그렇게 되었고 그것을 개선할 계기를 찾지 못해 계속 그렇게 지냈다. 한 번은 일이 있어서 심하게 나무랐는데 아들이 크게 반발했다. 아무리 대학생이 되었다지만 내게 반발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마음먹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문제는 그 반발이 당연했다는 것이지. 내 잘못이었다는 말이다. 다행히 잠깐 사이에 내가 잘못했고 사과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자리에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렇게 그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놀랍게도 그 일을 계기로 아들과 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되어 이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뭐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자녀에게 실수했다면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면 든 생각이다.
아이 버릇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망친다는 이들이 있다. 일정 부분 사실이기는 하다. 그것이 저자가 말했듯 “주변에서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구분했고, 그래서 어려서부터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하고 싶어도 참았다”는 엄마 아빠의 나이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하지만 “당시의 내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생각할 할아버지 할머니 나이가 되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렇다고 엄마 아빠 말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세상을 좀 더 살아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큰 손녀는 이미 말 건네기가 조심스러운 십대가 되었다. 다행히 제 엄마에게는 아직도 이야기를 다 한단다. 아이가 학교 다녀오면 엄마와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 나누는 걸 보면 흐뭇하고 다행스럽다. 저자는 “아이에게 일상을 물어보는 것은 단순히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서 이기도 하지만 엄마가 아빠가 ‘네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결국 아이가 엄마의 물음에 대답하고, 그러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그래서 관계가 긍정적으로 되먹임 한다는 말이다. 매우 중요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엄마가 무슨 일을 하고 언제쯤 돌아올 것이며, 그때 아이는 뭘 해야 하는지, 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아이들에게 가능한 자세히 설명하면 아이들도 자신의 하루를 예상하고 계획을 세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른이라면 당연한 말인데 아이들에게도 이런 구조가 작동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임상심리학자의 말이니 입증된 것이기는 하겠는데.
청소년기에 아이들이 부모에게 반항하는 건 어느 정도 당연한 현상이라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들 그렇게 자라는 것이거든. 그런데 저자는 단순히 청소년기라서가 아니라 다른 정서적인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고 지적하며, 이 경우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방치했다가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으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서 그 경계가 어디쯤인지, 그럴 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전문가가 누구이고 어떻게 접촉해야 하는지 설명이 있었더라면 좋았겠다.
워킹맘이 맞닥뜨리는 상황 가운데 대표적인 어려움이 거짓말과 도벽이 아닌가 한다. 앞서 말한 폭식도 그 중 하나이고. 물론 워킹맘에만 해당되는 경우이기야 하겠는가만. 그에 대해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집에서 아이에게 어느 정도 허용해줘도 될 만한 것조차 허용하지 않을 경우 아이가 원하는 것을 빠르게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혼나지 않기 위해서 문제를 감추려고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 한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또 거짓말을 한다. 아이가 거짓말을 안 하게 하려면 사소한 잘못은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아이를 추궁하기 보다는 부모의 생각과 감정을 아이에게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거짓말을 하게 된 상황에 대해서도 물어보는 것이 좋다. 거짓말을 해서 상황을 모면하거나 더 편해진 것을 경험할 경우 거짓말이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다.”
“도벽이 아주 비정상적인 행동은 아니다. 사실 많은 아이들이 물건을 훔치고, 그것을 별다른 문제로 여기지 않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일관되게’ 그것이 잘못인 것을 알려줘야 한다. 어느 때는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내고 어떤 날은 잘못을 눈감아주면 아이가 오히려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 아이 스스로 잘못을 깨달았다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지 (아이와) 상의한 다음 결정한 것을 실천하도록 한다. 하지만 문제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심리적 문제가 내재되어 있을 수 있으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꾸준히, 일관되게’라는 지침은 낯설면서도 매우 중요해 보인다. 여태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없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지침이고, 동시에 모두들 놓치고 있었던 일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의력 결핍 아동 사례에 대해 언급하면서 저자들은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라는 단어를 아무런 설명도 없이 사용한다. 정확한 뜻은 몰라도 대충 짐작은 가는 말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를 뜻하는 그 용어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검색해서 알아보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결국 그렇게 되었으니 친절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의 감점 요인이 되었다. 검색으로 그것이 아동 행동을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까지 알아내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다 읽었으니 책을 이 리뷰와 함께 며느리에게 보낼 참이다.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