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Oct 09. 2023

음악과 맺은 인연 (47)

지난 주말에 사우디 리야드에서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공연이 열렸는데 무려 2만3천 명이나 되는 관객들이 K팝을 따라 부르며 환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도 슈퍼주니어와 BTS 공연으로 사우디가 뒤집어진 일이 있기는 했지만, 부임했을 당시를 생각하면 천지가 개벽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전에 사우디에 부임해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십 년 넘게 커피숍은 물론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접객업소 그 어디에서도 음악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서울에서는 음악이 나오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렵고, 심지어 헬스클럽에서도 템포가 빠른 음악을 크게 틀어놔서 정신이 없을 정도인데 말이다. 음악을 좋아할 뿐 아니라 음악이 없는 곳을 찾기 어려운 도시에서 평생 산 사람이 음악을 금기로 여기는 곳에 산다는 것이 어디 만만한 일이었을까. 물론 사우디에 부임하기 전까지는 그런 경우를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다.


사우디 부임한 것이 2009년이니 이미 유튜브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때까지 널리 보급되지도 않았고 설령 보급되었다 하더라도 당시 사우디는 인터넷 속도가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뒤쳐져서 영상을 전송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게다가 CD나 DVD가 있어야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그런 사정을 몰랐으니 그저 곁에 놓고 들을 음반 몇 개만 가져갔다.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 하지 않는가. 눈치 빠르면 절간에 가서 새우젓 꽁댕이라도 얻어먹는다는 말도 있고. 가서 한두 달 지내는 사이에 프랑스 대사관에서 매달 음악회를 연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 직원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전화연결이 되어 메일로 공연일정을 받고 예약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우디 수도인 리야드에는 각국 대사관이 모여 있는 외교단지가 있다. 이슬람 종주국이라는 사우디에서는 금기가 얼마나 많은지 뭐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대사관은 사우디 통치가 미치지 않는 지역이어서 문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노래도 있고 술도 있다. 음주가무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대사관이 음악회를 여는 것은 아니었다.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 음악회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곳은 프랑스 대사관이 유일했다. 역시 문화강국이구나 싶었다. 티켓은 40달러.


처음 참석했던 건 관악5중주단 공연이었다. 사우디가 열사의 사막이기는 해도 밤이 되면 견딜 만하고, 돈 만 있으면 나무도 잔디밭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프랑스 대사관저 뒷마당 넓은 잔디밭에 무대를 만들고 이백 여 석 남짓 좌석을 만들어놓았다. 사우디에서는 모든 여성은 예외 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정색 옷인 아바야로 가려야 하는데, 그곳에는 형형색색의 옷과 장신구로 치장한 여성들로 가득 찼다. 푸른 잔디밭에서 기분 좋은 저녁 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공연을 즐긴다... 지금 생각해도 짜릿한 일이었다. 게다가 공연이 끝나고 나니 관저 홀에서 샴페인을 곁들인 다과도 제공했다.


그렇게 일 년 넘게 다녔다. 때로는 재즈밴드, 때로는 피아니스트, 때로는 성악가의 공연이 있었다. 부임하고 한 해 반이 지나서야 아내가 이사를 왔다. 법인을 설립하고 거주허가가 나와야 가족을 초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가 오고 나서는 프랑스 대사관 공연을 간 기억이 없다. 왜 그랬을까? 사우디 가기 전에는 거의 매주 금요일 저녁에 공연을 찾아다녔는데.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음악과 맺은 인연 (4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