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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3.12.24 (일)

by 박인식

아이들이 결혼한 다음해 6월에 잠깐 베를린 아이들 집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 아들은 유학 과정이 끝나가고 며느리는 아직 한 해 정도 더 공부해야 했다. 아이들 학교 근처에서 맥주 한 잔 마시고 들어오는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쾰른 오페라극장에서 일하는 선배가 자기 극장 오페라스튜디오 단원을 뽑는다고 지원해보라고 연락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들은 오페라스튜디오 단원으로 독일에서 성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오페라스튜디오는 2년 과정의 오페라 가수 육성 프로그램인데, 아들은 그 과정을 마치고 다행히 오페라 단원으로 선발되어 그곳에서 2년을 더 노래했다.


학교 동문도 아니고 그저 베를린에서 공부하는 동안 알게 된 선배인데 아들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고 또 그곳에서 4년 노래하는 동안 부인과 함께 아들 내외를 살뜰하게 챙겼다. 아들 내외는 물론 우리 내외도 그 선배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신세를 졌다.


아들은 2014년 그곳을 떠나 비스바덴 오페라극장으로 옮겨 지금 열 시즌 째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아들 가족은 쾰른을 떠나고 나서도 선배 내외와 가깝게 지냈다. 그 선배는 올해 귀국해서 지금은 서울대학교 성악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악가 중에서 바그너 오페라 연주에 일인자로 꼽히는 바리톤 사무엘 윤 교수이다. 쾰른 오페라극장의 종신단원일 뿐 아니라 올 초에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독일 궁정가수에 올랐다.


윤 교수는 쾰른극장에서 일하는 동안 한국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열어 우승자를 쾰른극장 오페라스튜디오 단원으로 초청하는 일을 해왔다. 오랫동안 지켜봤지만 정말로 후배 양성에 진심인 사람이다. 귀국하고 나서는 ‘음악 예찬’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을 뽑아서 4개월 동안 훈련시켜 무대에 세우는 프로그램인데, 유럽 무대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소프라노 임선혜 선생과 함께 그 수고를 자청했다. 윤 교수의 마스터클래스는 이미 이름난 것이어서 이 소식을 듣고 해외에서 유학 중인 학생들도 귀국해 오디션을 볼 정도였다.


중고등학교 동창 아들이 그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크리스마스이브에 그 무대에 선다는 연락을 받았다. 친구에게 축하도 하고 오랜만에 윤 교수도 볼 겸 해서 음악회에 다녀왔다. 윤 교수 내외가 어찌나 반가워하던지. 부인께서 우리 아이들 놀래어준다고 얼른 카메라를 뽑아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사진을 보내니 벌써 받았단다. 언제 시간 날 때 식사라도 한 번 대접해야 하겠다. 그동안 신세 진 것을 생각하면 업고라도 다녀야 할 것인데.


윤 교수 내외와 반가워 이야기 나누느라 정작 축하하러 간 친구 아들과는 사진 한 장 못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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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31224_213523639_01.jpg <바리톤 남궁 형>
KakaoTalk_20231224_213523639_02.jpg <사무엘 윤 교수, 남궁 형 아버지인 중고교 동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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