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3.12.14 (목)

by 박인식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는 1883년 황해도 장연군에 세워진 소래교회이고 그 다음이 1885년 정동에 세워진 정동제일교회이다. 이는 지금까지 역사가 이어져 내려온 교회 중에서는 정동제일교회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정동제일교회에서 이번에 역사관을 개관했는데, 마침 가깝게 지내는 교우께서 그 일을 맡아 수고하셨다. 덕분에 역사관 건립정신을 중심으로 전시해놓은 것 하나하나 세심한 설명을 들어가며 돌아볼 수 있었다.


놀랍게도 교회 창립일은 첫 예배를 드린 날이 아니라 첫 성찬을 베푼 날이었다. 사실 전에는 성찬을 연례행사나 절기행사쯤으로 여겨왔다. 그러다 보니 루터교회에 출석할 생각을 했을 때 ‘매주 베푸는 성찬’이 마지막까지 마음에 걸렸다. 이제는 성찬을 베풀지 않는 예배에 참석하면 예배를 드리다 만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는데, 그런데도 성찬이 예배의 기준점이 된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역사관을 돌아보고 나서 함께 차 한 잔 하는데 목사님께서 성찬에 대한 정의가 가톨릭과 개신교가 다르다고 설명하셨다. 가톨릭은 예수의 고난을 재현하는 것인데 반해 개신교에서는 예수의 고난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 그래서 성찬의 원어가 ‘감사의 의식’이라는 ‘유카리스티아’이고, 그러니 엄숙한 모습보다는 기쁨을 나누는 모습으로 성찬을 받는 것이 성찬의 본뜻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지.


“교회의 성찬례는 죽음과 기억과 아픔에서 멈추지 않는다. 거기서 한참 더 나아간다. 초기 교회에서 성찬례를 ‘유카리스티아(감사)’라고 이름 했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성찬례의 명칭이 ‘감사’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성찬은 모든 성도에게 감사의 감격과 기쁨이 충만한 시간이다. 생각해보라. 감사와 기쁨이 가득한 사람이 얼굴에 잔뜩 인상을 쓰고 목소리를 까는 경우가 있던가? 슬픈 음악과 어두운 조명으로 슬픔을 조장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인위적인 분위기야말로 성찬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엉뚱한 덮개일 뿐이다.” - 최주훈 <예배란 무엇인가> p.252


그동안 성찬을 받으러 나가다 교우들과 눈이 마주치면 엄숙함을 깨트릴까 싶어 그저 눈인사만 하고 말았는데, 당장 이번 주일부터 반갑게 손도 잡고 아이들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그래야겠다. 그러고 보니 내가 교회를 오래만 다녔던 모양이다. 본질은 저기 어디쯤 팽개쳐두고.


정동제일교회 역사가 138년이라면 자랑할 것이 얼마나 많겠는가마는, 역사관은 뜻밖에 소박하고 너무도 간결했다. 사람의 손길이 아닌 하나님의 손길만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비워놓아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곳. 한 번 가보시라.


역사관을 돌아보고 나오면 커피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아담한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커피 값도 안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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