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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Dec 26. 2023

균형재정유가로 보는 사우디의 재정 현황

석유의존도가 높은 산유국은 국가재정수입의 상당부분을 석유수출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사우디의 경우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가 넘었던 2014년까지 석유의존도가 90% 이상이었다. 2015년부터 유가가 급속히 하락해 저유가시대에 접어들자 국가재정이 적자로 돌아섰고, 그런 현상은 2021년까지 지속되다가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선을 회복한 2022년이 되어서야 적자재정을 탈피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국가재정이 균형을 이루는 유가를 재정균형유가(Fiscal Break-even Oil Price)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사우디, 혹은 산유국 정부에서 재정균형유가를 발표한 것을 보지 못했다. 주로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금융기구나 S&P Global 같은 금융평기회사에서 추정해 발표했고, 그러다 보니 발표하는 기관마다 차이를 보였다.


며칠 전 IMF에서 2016년부터 2023년 사이의 사우디 재정균형유가를 발표한 것을 확인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래프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2016년은 사우디 왕세자가 ‘비전 2030’을 추진하기 시작한 해이다. 다시 말해 사우디가 ‘비전 2030’을 시작한 이래 재정균형유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통해서 사우디 경제현황을 진단하려 한 것이다.


이 그래프에서는 재정균형유가를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표시했는데, 하나는 공공투자기금(PIF)를 포함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포함하지 않은 것이었다. 공공투자기금은 흔히 사우디 국부펀드라고도 불리는 기금으로 규모(AUM, Asset Under Management)는 7,766억 달러이며, 사우디 정부는 이 기금을 여러 곳에 분산투자해서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국가재정에 편입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수익규모가 얼마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재정균형유가는 석유수입으로 국가재정이 균형을 이루는 기준점이고 PIF에서 올리는 수익이 사우디 정부의 재정수입 일부를 충당한다면, PIF 수익을 포함했을 경우의 재정균형유가는 이를 포함하지 않은 경우보다 낮아야 한다. PIF에서 올리는 수익만큼 원유수출대금이 적더라도 국가재정이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IMF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PIF를 포함할 경우의 재정균형유가는 오히려 포함하지 않았을 경우보다 높았다. 2023년의 경우 PIF를 포함하지 않을 경우의 재정균형유가는 배럴당 91달러인데 PIF를 포함하면 오히려 이보다 17달러가 높은 108달러인 것이다. 이는 PIF가 적자를 내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 더 눈에 띄는 것은 2016년까지는 그 차이가 2달러에 불과했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 2023년에 17달러까지 벌어졌다는 점이다. 왕세자가 ‘비전 2030’을 발표하고 국정을 이끌어가면서 적자가 계속 늘어났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것을 보면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사우디가 축구리그를 위해 호날두 벤제마 네이마르를 데려오고 LIV라는 골프리그를 새로 만들어 PGA 골프를 합병하는데 투입된 자금이 모두 PIF 자금이다. PIF 총재는 이와 관련해 자금은 얼마든 동원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스포츠 투자를 더 늘리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것뿐 아니다. 현재 네옴시티를 비롯한 사우디 거대사업(Giga-Project)의 재원도 여기서 충당하고 있다.


사우디가 이와 같이 PIF 자금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PIF 자금은 쌓아놓은 것이 아니라 어디엔가 투자되어 있는데, 다른 곳에 투자하자면 그것을 회수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게 해서 이전보다 더 큰 수익을 올리거나 최소한 이전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투자를 계속하면 이전만큼 수익을 올릴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7년 동안의 결과이고 좀 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왕세자가 의도하는 대로 더 큰 수익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적자가 계속되고 있으며 그 폭이 점점 늘어난다는 점이다.


S&P Global에서 지난 9월 7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PIF에서는 기금규모를 현재 7,766억 달러에서 2025년까지 1조 667억 달러까지 늘일 예정이고, 매년 신규 사업에 4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지금 유가를 올리기 위해 OPEC을 동원해 감산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유가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생산하는 오일셰일 때문에 감산정책이 먹히고 있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 며칠 전에는 이에 반발한 앙골라가 OPEC을 탈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사우디의 전설적인 석유장관이었고 전 세계 유가를 쥐고 흔들던 알리 나이미는 1973년에 “앞으로 석유가 떨어져서 석유시대 종말이 오는 것이 아니라 석유를 쓰지 않는 시대가 와서 석유시대의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일이 있다. 지금 산유국에서는 그 시기가 언제 올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그 시기가 와서 있는 석유도 팔지 못하는 상황이 되기 전에 얼른 팔아서 국가 경제발전의 재원으로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과 미국의 오일셰일이 맞물렸으니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OPEC이 감산정책을 고수한다고 해도 유가가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가는 사우디 재정균형유가를 밑돌고 있다. 재정적자를 내고 있다는 말이다. 더구나 유가도 올리지 못한 상태로 감산을 계속하고 있어 석유수출대금도 평소 수준을 밑돌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사우디가 어떤 방법으로 PIF 기금규모를 3천억 달러나 늘이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늘이고 나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는 사우디 정부가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투자의 근원인 PIF가 생각보다 어려운 상황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최근 사우디 아람코 계약서에 자금조달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난공불락으로 보였던 아람코가 그럴 정도라면 사우디 자금사정은 생각보다 더 나쁜 것이 아닌가 싶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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