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by 박인식

피아노 (2017.11.04)


자식이 유치원 다닐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장손이 피아노 배우는 것이 신기하셨던지 아버지가 피아노를 사주셨다. 삼십 년도 넘은 일이다. 자식이 성악을 시작한 다음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성악 시작했을 때 이미 의식이 없으셔서 피아노를 요긴하게 사용하는 건 보지 못하셨다. 자식이 유학을 떠나고 나서도 피아노를 없애지 못하고 결국 사우디까지 끌고 왔다. 언젠가 자식이 다시 쓸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남기신 유일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피아노를 처분했다. 애틋한 물건이기는 해도 가져가봐야 쓸 사람도 없고 소음 때문에 제대로 쓰기도 어렵겠다 싶었다. 악기를 쉽게 구하기 어려운 곳이어서 생각보다 빨리 임자가 나섰다. 피아노를 내어주면서 괜한 짓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빈자리가 유난히 휑하다. 아내가 피아노 값으로 받은 돈을 혜인이 통장에 넣었다.


막내아우 상견례 때 일이 생각났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아우 상견례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굳이 아버지 양복을 입고 나갔다. 맏형으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대신하는 자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버지가 입으셨던 양복을 내가 입는 일이, 아버지가 사주신 피아노를 끝끝내 붙들고 있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어쩌면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이 저녁 가슴이 서늘한 것이 선선해진 날씨 탓만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가치 있는 삶 (2017.11.05)


치열하게 살아오기는 했지만 그렇게 살아오느라 그게 가치 있는 삶이었는지 살피지 못했다. 걸어보지 않은 길을 앞두고 있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도, 얼마나 오래 걸을지도 모르겠다. 그 길을 지금까지와는 달리 가치를 살펴가면서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 언론의 역량(2017.11.06)


며칠 전 이곳 사우디에서 일어난 친위쿠데타로 사방이 뒤숭숭하다. 이곳 언론이야 철저하게 정부에서 통제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소식을 기대하는 것 애초에 불가능한 일. 아직까지 서방 언론에 접속하는 걸 통제하고 있지는 않아 몇몇 서방 통신사 포털을 열심히 살피고 있다. 국내언론도 열심히 살펴보기는 하는데 모든 기사가 천편일률적으로 사실을 나열한 정도에 그치고 있을 뿐, 제대로 된 분석기사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하긴 사우디에 국내언론사 특파원 단 한 명이 없으니 분석기사는커녕 사실 확인이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욕심이겠다.


최근 사우디 정부에서 발표한 원전 건설계획이나 네옴 신도시 개발계획에 대한 국내 기사를 보면 기도 안 찬다. 사우디 정부 발표를 아무런 검증 없이 그대로 옮기는 것으로 모자라 거기에 장밋빛 환상까지 더해 당장이라도 노다지가 쏟아져 나올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어느 한 곳도 과연 그것이 실현가능한 것인지 살피는 걸 보지 못했다. 형편이 안 되면 주재원이나 교민에게라도 의견을 물어봐야 할 텐데, 주변 누구도 그런 요청을 받아본 일이 없단다. 과연 독자들이 사우디 관련 기사가 현지에 특파원 하나 없이 작성되는 줄은 알고 있을까? 우리 언론의 역량이나 자세가 중동에 특파원 한 명 내보낼, 딱 그 정도 수준인 걸까?



절정의 능력 (2017.11.08)


“일반적으로 기억력은 10~20세가 절정이요, 상상력은 30세가, 창조력은 30~55세가 절정이며, 사리를 추상 종합하는 능력은 45세부터 절정기가 시작되어 70세가 넘도록 유지된다고 한다. 그러니 정년이 60세가 되지 않는다는 건 국가적으로도 여간 낭비가 아니다.”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예전에 써놓은 글이 생각나 찾아보았다. 날짜를 보니 꼭 20년 전 글이다. 기억력, 상상력, 창조력이 바닥을 드러낸 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다. 하지만 전후사정을 살피고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여전한 듯싶은데, 앞으로도 10여 년은 더 유지될 것 같은데 말이다. 착각일까? 그러고 보니 60세가 훌쩍 넘도록 일 해왔구나. 감사한 일이다.



분노 (2017.11.23)


마음속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날 때가 있다. 기도하는 가운데 분노의 대부분은 해결되지만, 문제는 분노가 일어날 때 기도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기도하려고 애는 쓰는데 기도에 집중이 잘 안 된다는 말이다. 때로는 기도를 의식적으로 피하는 마음이 일기도 한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예단 (2017.11.24)


기자가 예단이나 선입견을 갖지 않고 인터뷰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그런 경우가 있기는 할까? 외교전문가가 한 분이 인터뷰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 한다는 글을 올려 의아했던 일이 있다. 의도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애쓰는 일이 너무 고단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오늘 손석희 앵커가 “지열발전소가 지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과 관련해 인터뷰하는 중에 뜬금없이 이런 주장이 신재생에너지의 의미를 깎아내리려는 게 아닌지 질문하기도 하고, 기대했던 대답이 나오지 않으니 그런 곳이라면 원전을 짓지 말아야 하지 않느냐는 압박으로 느껴질 만한 질문을 서슴없이 이어갔다. 그래도 현직 언론인 중에 가장 신뢰할만하다는 그가 이 정도이니 다른 사람은 얼마나 더 할까 싶어 몹시 실망스러웠다.



소명 (2017.11.26)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소명을 허락하셨다고 믿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소명이라고 여기는 그 ‘구체적인 모습’까지도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으니 모든 이들이 스스로 자기 길을 선택하기 바라시는 것이 아니겠나. 그렇다면 우리가 소명이라고 여기는 것이 우리 의지며 가치관이요, 때로는 우리 욕심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돌이켜보니 나는 그랬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셨고, 그래서 이곳에서 내가 감당해야할 소명이 있다고 믿었다. 좀처럼 그 소명을 이룰 길을 찾지 못해 번민과 고통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길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더욱 괴로웠다. 올 초 어느 날, 불현 듯 소명이라고 여겨온 것이 욕심이었음을 깨달았다. 비로소 실패했다는 자괴감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다. 이제는 잘 정리하는 일만 남았다.



확증편향 (2017.11.27)


1986년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발사한지 73초 만에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폭발했다. 인지심리학자인 울릭 나이서(Ulric Neisser) 교수는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 자기 수업을 듣는 학생 106명에게 설문지를 나누어주고 사고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어떻게 사고 소식을 들었는지, 그때 기분이 어땠으며 그러고 나서 뭘 했는지 상세히 적게 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후 다시 학생들을 불러서 당시 기억을 물어보니 놀랍게도 학생들의 25%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50%는 전체적인 흐름은 맞지만 세부 사항은 대부분 엉터리였으며, 비슷하게라도 기억하는 사람은 채 10%를 넘지 못했다. 이후 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나이서 교수는 사실과 다르게 이야기한 학생들에게 본인이 작성한 기록을 보여주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했는데, 거부하기 어려운 객관적이고 결정적 증거를 들이대는 데도 대개는 자기 기억이 맞는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대학 갓 입학해서 본 ‘밀애(Darling Lili)’라는 영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영화에 나오는 ‘집시 바이올린’이라는 노래는 선율도 아름답지만 노래가 나오는 장면이 너무도 애잔해서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문득 그 장면이 생각나 동영상을 검색해보니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는 장면이며 분위기가 모두 달랐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랬다. 굳이 한국까지 DVD를 주문하는 요란을 떨고 나서야 내 기억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마치 어제 본 것처럼 기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틀린 기억이었다니. 갑자기 기억력에 대해 자신이 없어졌고, 그 후로 지금까지 남들과 기억이 다를 때 더 이상 내 기억을 고집하지 못하고 있다.


기억력이 자신 없어져 조금은 위축되어 있던 중에 챌린저호 이야기를 들으니 적이 위안이 되었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이 나이 때문도 아니고 내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라니 말이다.



형제 (2017.11.27)


오남매의 맏이로 자라 형제가 적은 편은 아니었는데 모두들 자식을 하나둘만 낳다보니 명절이 되어도 도통 북적거리는 느낌이 없다. 어쩌다 보니 자식을 하나만 두었다. 자식은 하나만 두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자식이 너무 커서 그저 아쉬움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자식이 가정을 이루고 나서 아이는 최소한 둘은 낳고, 힘이 자란다면 셋까지 낳기를 당부했는데 뜻밖에도 아들 내외가 선선히 그러마고 했다.


혜인이가 입학하게 생겼는데 둘째 소식이 없어 걱정이 되었다. 자식 내외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아 뭐라고 말은 못하고 그저 좋은 소식 오기만 기다렸다. 어제 둘째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저녁나절에 통화하는데 그때까지 혜인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우리와 이야기 하는 걸 듣고 혜인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어린 것이 뭘 안다고 그렇게 기뻐했을까. 엄마에게 정말이냐고 묻는 내내 마치 대견하다는 듯이 엄마를 바라보고 엄마 손을 쓰다듬고 그랬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콧등이 시큰거렸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느껴보지 못하고 자란 자식에게 미안했다. 생각해보니 자식을 위해 하나만 낳겠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자식에게 형제를 만들어줘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일 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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