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소명을 주셨다고 믿는다. 아주 구체적인 역할까지도 하나님께서 맡기셨다고 믿고, 그래서 그것을 외면했을 때 징계하신다고 믿는 이도 적지 않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는데, 만약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특정한 소명을 주시고 구체적인 역할을 지정하셨다면 그걸 보고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소명이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각자가 선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 소명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일 수 있고 언제든 바뀌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너무 억매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볼 생각으로 작년 연말부터 걷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순례길이 800km라니 가기 전에 그 거리 몇 번은 걸어보리라 마음먹고 한 주에 세 번, 한 번에 10km 걷는 걸 목표로 삼았습니다. 아직은 잘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1,320km 걸었네요. 걷기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깨달은 건데, 필요한 만큼만 걷다 보면 하루 몇 백 미터 걷게 되지 않더군요.
규칙적으로 걷기 시작하고 나서 무엇보다 몸이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어쩌다 건너뛰면 먼저 몸이 개운치 않습니다. 걷고 나서 땀을 씻을 때 느끼던 상쾌함, 이어지는 나른함, 그런 맛을 알고 나니 몸이 묵직할 때마다 게을러지지 않도록 자신을 재촉하게 됩니다.
더운 곳이 되다 보니 밖에서 걷기가 어렵습니다. 운동기구에서 한 시간 반쯤 걷지요. 속도를 빠르게 하고 경사도 좀 주고 그러면 땀이 무척 많이 납니다. 수건 한 장이 푹 젖을 정도입니다.
이곳 겨울은 한국 가을 날씨입니다. 하늘도 파랗고, 모래바람도 불지 않아 공기도 상큼하고, 걷기에 더할 수 없이 좋습니다. 겨울 들어서면서 실내를 벗어나 동네를 몇 바퀴 돌다가 지난주에 근처 공원으로 진출했습니다. 걸어보니 꽤 괜찮습니다. 나무도 많고 차를 피하지 않아도 되니 아주 편안했습니다. 날씨가 더워질 때까지 꽤 오래 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먼 것 같더니 두 번째는 좀 쉽던데, 익숙해지면 그것도 금방이겠지요. 요 며칠은 최재천 교수 강의를 들으면서 걸었습니다. 체력도 기르고, 지력도 기르고. 좋네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하루에 25km 남짓 걸어야 해서 무엇보다 짐을 가볍게 꾸리고 신발이 편해야 한단다. 준비를 시작한 이래 매번 10km 정도를 꾸준히 걷고 있다. 그 정도 거리는 뭘 신어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여 순례길에서 신을 신발 고르는 게 생각만큼 까다롭지는 않을 듯싶었다.
지난주에는 이런저런 일로 걷지 못했다. 한 번 건너뛰면 꾀가 날까봐 점심 때 잠깐 사무실 주변을 걷고 저녁에는 약속 장소 근처에서 한 시간 남짓 걸었다. 10km를 채우기는 했는데 구두를 신고 걷자니 발이 몹시 아팠다. 급기야는 운전하는 중에 발에 쥐가 나서 하마터면 사고를 낼 뻔 했다.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서 몇 번을 깨기도 했다. 걷는 운동하면서 신발 우습게 생각할 게 아니더라.
연말이 되어 손님 치를 일이 많아졌다. 먼저 알아서 아내를 돕지는 못해도 시킨 건 두 번 지적하지 않을 만큼 잘하는데, 아내는 늘 시시콜콜 잔소리를 한다. 시켰으면 잘하는지 못하는지 보고 나서 타박을 해야 할 게 아닌가. 혹시 아내에게는 일할 사람이 아니라 잔소리 해댈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닐까?
평생 엔지니어로 살았다. 입증된 사실과 확인된 근거를 바탕으로 모든 사안을 판단해왔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평생의 여정은 하나님 은혜였다. 이런 확실한 사실과 근거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근심하는가?
내 마음은 가시밭과 같아서 씨가 떨어져 싹이 나왔지만 세상 염려라는 가시가 기운을 막아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래서 기도는 언제나 그 가시를 쳐내기 위한 싸움이었다. 기도를 게을리 하면 가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웃자라서 기를 쓰고 덤벼들어도 가시를 쳐내기는커녕 가시에 긁혀 나가떨어지곤 한다. 요즘은 기도에 게을러 그 폐해를 온 몸으로 겪고 있다. 이렇게 가시를 쳐내기에 바쁘니 결실은 언제 맺을까.
검도 처음 시작할 때 사범께서 숨이 턱에 닿도록 몰아붙이고 나서 꼭 한 번을 더 뛰게 했다. 운동 자체가 격렬한데다가 나이가 들어 시작하다 보니 따라가기가 여간 버겁지 않았지만 어린 관원들과 운동하면서 주저앉을 수도 없는 일이라 따라가기는 했는데, 매번 짜증스러웠다.
다음 달이면 부임한지 9년이 된다. 애는 썼는데 거둔 것이 없다. 올해 들어서면서부터 의욕이 급격하게 떨어져 급기야 스스로 물러날 생각을 하는데 이르렀다. 그렇게 한 해를 보냈다. 이미 젖 먹던 힘까지 짜냈으니 더 걸을 힘이 없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는 일이라 거기서 꼭 한 걸음 더 내딛었고, 그러다 보니 다시 연말을 맞는다.
문득 검도 시작할 때 한 걸음 더 내딛으라고 몰아붙이던 일이 생각이 났다. 그때는 원망스러웠는데 생각해보니 그 힘으로 지금까지 버틴 게 아닐까 싶다. 한 걸음 더 내딛던 그 힘으로. 그러면 더도 말고 딱 한 걸음만 더 내딛어보는 건 어떨까? 숨이 턱에 닿기는 했지만 아직 숨이 넘어간 건 아니니.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나서 돌아가실 때까지 주말마다 온가족이 본가에 모였다. 비록 아버지는 의식 없이 누워계셨지만, 몇 년 동안 주말마다 어머니 모시고 온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하던 일은 모두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모두 제 살기 바빠 일 년에 한 번 모이기도 힘든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그때 작은 아우네 아이 둘이 유치원 다닐 나이쯤 되었는데, 그 아이들에게는 주말마다 내 손을 양쪽에서 잡고 동네 가게에 군것질 거리 사러 가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군것질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은 먹고 싶고 엄마는 못 먹게 하고. 평소에 엄두도 못 내던 군것질 거리를 큰아버지를 앞세워 의기양양하게 사들고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니 아이들에게는 본가가 해방구인 셈이었다. 제수씨인들 그게 왜 못 마땅하지 않았겠나마는, 내 앞에서 그 일로 한 번도 아이들을 나무란 일이 없었다. 나에 대한 배려였거니 여겼고, 그 이유로 아이들이 대학생이 된 지금껏 제수씨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혜인이가 올해 부쩍 자랐다. 올 봄에만 해도 애기 티를 내더니 예비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쩍 어른스러워졌다. 외출하면서 예전처럼 혜인이를 업으려 하니 아범이 펄쩍 뛴다. 엊저녁 외출에서 돌아오는데 내게 귓속말로 다리가 아프다고 소곤거렸다. 그래서 아범 뒤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혜인이를 업었다. 아범이 알까봐 업혀서 소리를 죽이는 혜인이를 보면서 문득 조카아이들이 군것질하는 걸 눈감아줬던 제수씨 생각이 났다. 그리고 자식이 그 어렵다는 제수씨보다 더 어렵게 여겨지더라는.
혜인이를 만나면 늘 장난감을 두 개 사준다. 하나는 할아버지 몫, 하나는 할머니 몫으로. 엄마가 한 번에 하나만 사는 것으로 못 박아놓으니 장난감을 고르는데 여간 신중하지 않다. 우리를 만날 때가 되면 으레 뭘 살지 생각해 놓았을 텐데도 장난감 고르는 일은 매번 한 시간을 넘긴다.
아이들의 집중력이라는 게 15분을 넘기기 어렵다는데, 그만 고르라고 재촉하지 않으면 한 시간도 모자랄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장난감을 고르는 순간을 즐기는 건지,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건지. 하긴 남성은 목표지향적이고 여성은 과정지향적이라니 혜인이도 벌써 여성으로서 성향을 보이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한 편으로는 이리저리 재느라 결정을 쉽게 못 내리는 내 인자가 유전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고. 아무튼 얼마나 열중하는지 쉽게 그만 고르라고 못 하겠다. 그 집중력이 좋은 면으로 발휘되기를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