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by 박인식

마술피리 (2018.01.04)


혜인 아범이 성악을 시작하고 나서 꽤 오래도록 연주하는 걸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부모 마음이 다 그렇지요. 무대에서 연주하는 걸 편하게 보기 시작한 건 사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오늘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를 보았습니다. 혜인 아범이 ‘마술피리’에 ‘자라스트로’ 역으로 노래한 건 꽤 오래된 일인데 번번이 일정을 맞추지 못해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혜인 아범 대학입시 실기곡이 ‘마술피리’ 아리아 중 한 곡이었습니다. 그때는 유럽 오페라 무대라는 게 그저 꿈이었지요. 그 무대를 꿈꾸며 불렀던 입시곡을 바로 그 무대에서 부르는 걸 보고 있자니 감개무량했습니다.


한국 성악가들의 기량은 정말 뛰어납니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성악가들이 설만한 무대가 별로 없습니다.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도 무대가 없어서 기량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는 국내 상황을 생각하면, 평일인데도 객석을 꽉 채우는 이곳의 문화적 토양이 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혜인 아범이 일하는 비스바덴 극장은 한 해 오페라 공연만 100번을 넘게 합니다. 그런 곳에서 일한다는 게 기적이지요.


요즘 오페라는 복식이나 무대장치가 예전과는 매우 다릅니다. 단순화, 상징화해서 표현합니다. 그러다보니 무대가 예전처럼 화려하지 않지요. 이번 ‘마술피리’에서는 영상을 활용해 단순화, 상징화 되어 조금은 밋밋할 수 있는 무대를 아주 다채롭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내내 무대가 꽉 찬 것 같았습니다.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와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 두 무대에 선답니다. 두 주 사이에 무려 세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지요. 어떻게 그 악보를 다 외울 수 있는지, 혹시 연주 도중에 잊어버리거나 혼동하는 경우는 없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 중 ‘탄호이저’를 보기로 했는데, 워낙 낯선 작품이라 미리 줄거리라도 파악하고 가야겠습니다.



천사와 폭탄 사이 (2018.01.05)


교회학교에서 지내면서 아이들과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대상으로만 여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좋아지더군요. 중고등부에서 이십 여 년 가까이 지내다가 사우디 부임 앞두고 두 해 동안 초등학교 아이들과 지냈습니다. 아내가 여름성경학교 밥 해주러 가는데 따라갔다가 아이들 자는 모습에 반해서 자원했습니다. 얼마나 들고 뛰는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던 아이들을 선생님들이 씻기고 잠옷으로 갈아입혀 재우는데 천사가 따로 없더군요.


제게도 천사가 하나 있지요. 떨어져 있을 때는 보고 싶은 마음에, 함께 있을 때마저도 헤어져야 할 생각에 늘 애틋한. 그 천사도 미운 일곱 살은 건너뛸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요 며칠 엄마 대신 유치원에 데려가는데, 부쩍 큰 모습만큼이나 행동도 아주 달라졌습니다. 교회학교 아이들 애 먹이던 모습 그대로에요. 어제 오늘은 할머니가 안 왔다고 하는 것부터 사사건건 걸고 넘어가더군요. 갑자기 북한이 남한 중학생들 무서워서 못 내려온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요즘은 유치원생 무서워서도 못 내려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잘 때는 여전히 천사입니다.


아직 함께 있을 시간이 한 주일도 더 남았는데도 이 아이를 두고 어떻게 떠날까 걱정스럽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아내와 함께 혜인이 데리고 주말시장을 가기로 했습니다. 같이 가겠냐고 하니 좋다고는 하는데, 내일 아침까지 그 마음이 바뀌지 않을지 두고 봐야지요.



끝을 기다리는 기쁨 (2018.01.08)


올해 은퇴를 앞두고 계신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끝을 기다리는 기쁨’을 말씀하셨다. 끝을 기다리는 게 기쁨이라면 지금 겪고 있는 시간이 고통이라는 뜻일 텐데, 설마하니 그건 아니실 것이고. 아마 끝 그 이후에 만날 시간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무엇인가 이룰 수 없다면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걷지 않았던 길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동시에 궁금하기도 했다. 설교를 들으면서 그것을 기쁨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의 거리 (2018.01.09)


혜인이 학교에서는 창문 밖으로 묘지가 보입니다. 유럽의 묘지가 예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묘지 아닙니까. 우리 같으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묘지라면 으레 멀리 떨어져 있고 음울한 느낌이 드는 우리와는 달리 유럽의 묘지는 밝고 때로는 화사하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렇기는 해도 집들이 묘지와 담장 하나 사이로 이웃해 있는 것이 몹시 생소하기는 합니다. 유럽에 처음 왔을 때 마을 한복판에 묘지가 있는 게 그렇게 인상 깊었습니다. 그 차이가 우리와 이들이 느끼는 삶과 죽음의 거리, 꼭 그만큼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오늘 포도밭 길을 따라 걷다가 묘지에 이르렀습니다. 담장에 이어진 집에서 어떤 사람이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죽음조차도 삶의 일부분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우리는 죽음을 단절로 여기는데 이들은 죽음 이후에도 부활을 통해 삶을 이어가기를 꿈꾸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긴 부활신앙을 몇 백 년 이어온 이곳 사람들과 불과 백 년 남짓한 우리가 같을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탄호이저 (2018.01.10)


독일 오페라 무대의 궁극은 바그너랍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바그너 오페라 축제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에 서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합니다. 바그너 오페라는 흥행에서도 보증수표입니다. 늘 객석이 꽉 찹니다. 바이로이트 무대가 아니더라도 이런 이유 때문에 이곳에서는 바그너를 소화하지 못하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합니다.


혜인 아범이 재작년부터 바그너 무대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바그너 오페라 한 편을 제대로 챙겨보지 못했습니다. 음반을 사놓고도 엄두를 못 냈습니다. 상당히 길기도 합니다만, 선율 위주의 이태리 오페라에 익숙해 있다 보니 곡의 전개가 사뭇 다른 바그너 오페라에 선뜻 다가서지 못한 것이지요. 결국 줄거리 몇 번 읽어보고 극장에 들어섰습니다.


오케스트라 피트 바로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손을 뻗으면 무대에 닿을만한 거리였습니다. 바그너 오페라를 본 분은 많지 않아도 탄호이저 서곡이나 합창곡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요. 남성합창을 해본 분이라면 불러봤을 겁니다. 익숙한 서곡 덕분에 긴장을 풀고 쉽게 오페라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내내 이래서 바그너 오페라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웅장함이라고 할까요? 혜인 아범은 튀링겐 영주 역할을 맡았습니다. 베이스는 음역의 특성상 대체로 왕이나 성주, 제사장 같은 역할을 많이 맡습니다. 군중들과 어울려 있기보다는 떨어져 홀로 서있는 역할이 많고, 그러다 보니 체격도 큰 게 유리합니다. 성악을 시작할 때 체격이 너무 커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걱정을 했는데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군요.


지금껏 혜인 아범이 출연한 오페라를 적지 않게 봤습니다만 이번만큼 뿌듯했던 적이 없습니다. 맡은 역할도 그렇고, 그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는 것 같아서 더욱 그랬습니다. 그동안 무척 노력을 했겠구나 싶었습니다. 맡은 역할 자체가 좌중을 압도하는 역할인데다가 연출도 그 역할이 아주 돋보이도록 짜놨습니다. 문득 이제 아비로서 할 일을 다 마쳤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혜인 아범과 함께 무대에 섰던 동료가 숙소로 돌아가 급서한 일이 있었습니다. 심장마비였답니다. 그런 일이 전에도 있었다는 군요. 테너는 수명도 짧고 요절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 탄호이저를 보니 그럴 만도 하겠더군요. 한 시간 씩 3막을 연주하고 중간에 두 번 휴식을 할 만큼 긴 작품인데, 주인공 탄호이저는 절반 이상을 노래했습니다. 탄호이저는 잘하니 못하니 따지지 않고 그저 하는 것만으로도 인정받는다는데, 정말 그렇겠습니다. 보는 제가 다 힘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요절한다는 말이 절로 나오겠더군요. 그러고 보면 베이스인 것이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테너나 바리톤만큼 각광을 받지는 못하지만, 오래도록 건강을 잃지 않고 노래할 수 있을 테니 말이지요.


자식이 찬란한 빛을 발하면서 사는 걸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찬란한 빛이라는 게 자기를 태워야만 낼 수 있는 빛이겠으니 찬란하지 않아도 그저 오래도록 무대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명성보다는 꾸준함에 중심을 두는 것 같아 걱정을 덜었습니다. 아비로서 그저 기도할 일만 남았군요.



대접 (2018.01.14)


저녁 무렵에 혜인이네 교회 교우 한 분이 음식을 들고 오셨다. 우리에게 대접한다고 들고 오셨단다. 가까이에 사는 교우가 없다고 들은 게 생각나 사시는 곳을 물으니 다름슈타트란다. 음식 하나 대접하자고 이곳까지 30여km를 달려오신 것이다. 무척 고마웠다. 교우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도록 자식 내외가 잘 살아준 것도 매우 고마웠고.



성숙 (2018.01.15)


혜인이네 학교는 포도밭 언덕 위에 있습니다. 창밖으로 묘지가 보이지요. 푸르름 속에서 건강하게 뛰놀며 죽음조차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기대합니다.



기약 (2018.01.20)


가을이 되기 전에 혜인이 동생을 보게 되었다. 아내가 도와주러 가야하니 나도 얹혀서 한 번 다녀오지 싶어 가을에 보기를 기약하고 헤어졌다. 문득 네덜란드에서 공부하신 목사님이 십 년 넘는 동안 집에 전화를 꼭 세 번 했다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유학하는 중에 아이 셋을 낳았는데, 부모님께 그 소식 전하느라 전화했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랬다. 우리 부모님들은 외국에 사는 자식을 찾아간다는 건 꿈꾸기도 어려운 세월을 사셨다. 예전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참 큰 복을 받고 사는구나 싶어 감사하고, 한 편으로는 그런 복을 누릴만한 자격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쳐 송구스럽다.



십일조 (2018.01.20)


국민일보가 이삼십 대 젊은이 중 절반이 십일조를 출석하는 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나 단체에 낼 수 있다고 응답한 조사 결과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십일조를 출석하는 교회에 냈고, 그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초대교회에서 성도들이 자기 재산을 사도들의 발 앞에 내놓은 사건이 뜻하는 것처럼, 헌금은 이미 하나님의 것이니 용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헌금이 헌금의 본질 그대로 쓰인다는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헌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신뢰가 없다면 어떻게 그 교회에 내겠나? 그리고 그런 교회에 어떻게 출석하겠나?



불평 (2018.01.24)


사우디에 처음 왔을 때 기름 값이 리터에 135원이어서 차에 가득 채우는데 채 8천원이 들지 않았다. 2년 전에 225원으로 올랐던 것이 휴가 다녀온 사이에 405원으로 올랐다. 이제는 기름 한 번 넣으려면 2만5천원이나 든다. 무지막지한 인상 폭에 투덜거리니 아내가 원래 ‘말이 안 되는 가격’이지 않았냐며 불평을 간단히 정리해버렸다.


걸어보지 않은 길을 앞두고 있다. 걱정이 없을 수 없다. 삶이란 워낙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이겠지만, 사십 년 가까운 세월을 일에 묶여 살다가 하루아침에 손에서 일을 놓아야 하니 여간 막막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일은 많고 몸은 일에 묶여 있으니 휴가가 늘 아쉬웠다. 앞으로는 시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을 텐데, 그 시간이 마냥 반갑기야 하겠나. 하지만 지금까지 잘 감당하게 하셨으니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실까 기대할 뿐이다.


하긴 자격 없는 사람이 지금껏 넘치는 은혜를 입은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언제 모든 은혜를 거두어 가신다고 해도 투덜거릴 수 없는 처지라는 말이다. 올랐다고 해도 아직 한국에 비해 엄청나게 싼 기름 값에 투덜거리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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