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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Feb 02. 2024

최소한의 중동 수업

<피렌체의 식탁> 박인식의 호기심 따라 읽기 3

웹진 <피렌체의 식탁>에 세 번째 서평이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장지향 중동센터장의 <최소한의 중동수업>을 읽었습니다. 링크는 댓글에 올렸습니다. 기왕이면 클릭 한 번...


♣♣♣


장지향

시공사

2023년 10월 20일


중동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는 데 크게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에 비해 중동에 대한 정보는 놀랄 만큼 부족하고, 그나마 알려진 것 중에는 부정확한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중요한 시장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 중 가장 큰 시장인 사우디에는 우리 기업의 중동 진출 이래 언론사 특파원이 주재한 일이 없다. 정보가 부족하고 부정확한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중에 중동전문가의 시선을 빌어 중동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장인 저자는 중동을 어떤 특정한 잣대로 분류하고 판단하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는 무슬림형제단을 반대하지만 이란은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한다. 이란은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아사드 정권은 무슬림형제단을 반대한다. 하마스는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나 반미고,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나 친미다.”


이처럼 얽히고설킨 중동 정세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곳이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는 우리 기업들에게 놓칠 수 없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사우디의 거대사업들인데, 이의 성패가 바로 중동의 안정에 달렸다. 물론 그 거대사업들에는 적지 않은 위험부담이 따르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만큼 역동적인 시장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중동 안정에 결정적인 변수가 최근 일어난 가자 전쟁이고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이슬람주의 운동일 것이다. 저자는 간단명료하게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서 파타흐와 하마스가 분화한 과정과 두 국가 해법을 제안한 오슬로 협정이 실패한 이유를 설명한다. 아울러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의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팔레스타인 지도층이라고 생각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충격적인 분위기를 전한다. 이어서 이슬람주의 운동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슬람주의 운동은 1세대 원리주의, 2세대 급진주의, 3세대 극단주의로 나뉜다. 1940~1980년대를 풍미했던 1세대 원리주의는 이슬람국가 건설을 운동 목표로 삼았다. 2세대 급진주의는 1990~2010년대 전 세계를 무대로 이슬람국가 건설을 위한 투쟁을 선포하고, 반서구주의에 기반을 둔 무력사용을 주장하며, 9.11 사태로 대표되는 테러마저 허용했다. 2014년 ISIS가 등장하면서 3세대 극단주의 세력이 부상했다. ISIS는 폐쇄적이고 맹목적인 이슬람주의를 내세우며 비즈니스 수익모델을 추구한 기업형 테러조직이었다. 원유와 유물을 밀매하고 인질의 몸값과 강압적인 세금을 거둬 여느 테러집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재정이 풍족하다.”


이슬람주의 운동이 이처럼 중동 안정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었지만, 사실 나는 십 년 넘게 사우디에 살면서 중동의 모든 갈등이 이슬람 종교 갈등에서 비롯된 것인지 늘 의문이었다. 갈등구조에서 이슬람이라는 요소를 걷어내고 나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저자의 견해에 크게 공감했다.


“인간은 이해관계와 손익 계산에 따라 주판알을 튕기며 그에 맞는 선택을 취한다. 그 배경이 중동 이슬람 세계든 서구든 간에 상관없다. 국내외 정치 현상은 손익계산서 관점으로 바라봐야 가장 정확하고 명쾌하게 보인다. 단, 인간의 인식이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므로 비합리적인 행동이 종종 나타난다. 중동의 변혁과 격변을 이해하는 데 핵심은 인간이 합리성을 바탕으로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비합리성을 자주 드러낸다는 것이다.”


중동갈등의 근원 역시 이해관계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중동국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비합리성’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는데, 최근 사우디 상황을 이보다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나는 사우디를 견제할 기구도 제도도, 심지어 견제세력도 없어진 정통 전제왕정국가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런 국가라면 비합리성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면 중동안정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될 것 같아 염려스럽다.


저자는 비합리성이 지배하는 권위주의 왕정국가라도 예측 불가능한 국가를 상대하는 것은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정부 교체 때마다 정책이 널뛰는 미국보다는 푸틴 대통령의 개인 의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러시아를 더 안정적인 파트너로 여기게 됐을 것이라며 미국의 일관성 없는 중동 정책을 비판한다.


저자 덕분에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 중동 현안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한 부분도 몇 곳 있었다.


저자는 사우디를 포함한 산유국이 자국민을 상대로 실시한 민감한 주제에 대한 여론조사에 개입하려는 시도가 줄어들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나는 사우디에서 이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사우디에서 객관적인 여론조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권 생존의 위기를 미리 방지하고자 젊은 세대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는 등 심적 압박에 시달린다”는 저자의 평가가 의아하다. 하지만 아랍지역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응답자의 편향과 오차 정도가 다른 지역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내 생각을 수정하는 것이 옳겠다. 그래서 저자가 인용한 판단의 근거가 궁금했는데 아쉽게도 책 말미에 실어놓은 주석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사우디의 국가 체질 개선 프로젝트는 되돌릴 수 없는 티핑포인트를 넘어섰다고 저자는 판단했지만 나는 이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사우디에는 실질적인 통치자인 왕세자의 결정을 견제할 기구나 절차나 세력도 없으니 그가 무슨 결정이든 내리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카슈끄지 사건에 대해 사우디 왕세자가 결백을 밝혔다면서 왕세자가 미국에 매우 억울해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놀라웠다. 이것이 왕세자의 지시가 아니었다면 사건의 지휘자로 밝혀진 알 카타니가 기소조차 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시 리야드에서는 이것이 왕세자의 지시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사우디의 거대사업을 비롯한 여러 현안에 대해 사우디 정부 발표를 ‘사실’로 전제하고 그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밝힌 것은 거대사업이 안고 있는 여러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현안에 대한 사실 판단이 이 책의 주제는 아니었으니 그것이 저자의 노고를 가릴 정도는 아니다.


https://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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