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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Feb 18. 2024

시대예보

송길영

교보문고

2023년 9월 25일


빅데이터로 사람을 읽고 시대를 읽는다는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송길영이 그렇게 읽은 것을 바탕으로 시대를 예보하는 책을 내놓았다. 디지털 도구와 인공지능의 발달로 조직과 권위뿐 아니라 가족마저 무너지고 그 자리를 온전히 ‘핵개인(nuclear individual)’이 감당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키워드가 되는 ‘핵개인’은 핵가족이 다시 분화한 것으로, 검색으로도 찾을 수 없는 저자만의 독특한 개념이다.


저자는 ‘핵개인’의 시대가 되면 무엇보다 먼저 가족과 조직이 무너지고 그것을 지탱해온 권위도 당연히 해체될 것으로 예상한다. 대가족이 핵가족이 된 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그 연장선에서 핵가족이 핵개인이 되는 것도 놀랍지는 않다. 그런 조짐이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도 사실이기도 하고.


나는 시대가 어떻든 변화의 중심에는 자기 보호의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핵개인 시대에 학연이나 지연, 조직이나 가족과 같은 관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저자의 예상은 그것이 자기 보호 또는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는 데 방해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게 들린다.


그런데 학연이나 지연이 자기 보호나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는 데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학연이나 지연을 동원할 수 없는 이들이라면 몰라도 그것을 누리는 이들 중에 그것을 없애야 할 악습으로 여기는 이들이 과연 있기는 할까? 최근 들어 학연이나 인연의 폐해를 지적하고 그것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아졌는데, 이는 그만큼 그에 집착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방증이지 않을까?


대학 졸업하고 연구소에 들어갔을 때 선임부장께서 출신학교별로 파가 갈리는 것이 못마땅하다면서 기껏 4년 한 학교에 다녔다는 인연을 평생 우려먹으려 든다고 일갈하시는 걸 들은 일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분은 연구소 주요 보직을 독점하고 있던 이들과 같은 학교 출신이었고, 그 독점 구조를 깨보려고 다른 학교 출신들이 모인 것을 비난한 것이어서 그 지적은 공감은커녕 반감만 키웠다. 어디 그 경우뿐이었을까. 학연이나 지연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 없어서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나 이미 그것을 누린 이들이 아닐까. 과문한 탓이겠지만, 누릴 수 있는 학연과 지연을 포기하겠다는 이를 아직은 본 일이 없다.


나는 이처럼 학연이나 지연을 자기방어기제로 이해하는데, 그렇게 된 이면에 농경민족이라는 우리의 문화적 특성이 배어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농경민족은 한자리에 오래 거주한 정주민이라는 특징 때문에 낯선 것을 수용하려 들기보다는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그러다 보니 낯선 사람과 섞였을 때 자기들끼리 뭉치는 것으로 이에 대응하려 드는 것이다. 예멘 난민에 대해 유독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때 그것을 이슬람 혐오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내게는 그것이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읽혔다.


물론 내 생각이 옳지 않을 것일 수 있다. 본능이 달라질 일은 없으니 학연이나 지연이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법이 아니면 되는데, 그건 법으로 불이익을 받도록 규정하면 가능할 것도 같다. 하지만 그런 법을 누가 발의하고 거기에 얼마나 찬성할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학연이나 지연으로 대표되는 자기방어기제가 없어질 것 같지도 않고, 없어진다고 해도 모양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우리는 효율이 최고의 기준인 시대를 지내면서 자기 욕망을 표출하는 것을 금기로 여기고 살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효율을 얻기 위해 최적화된 집단주의가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자기 욕망을 표출하며 사는 것이 더 이상 금기가 아닌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효율, 또는 효율의 결과인 경제적 풍요를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기 욕망을 표출하며 살겠다는 이가 과연 경제적 풍요를 포기할 수 있을까? 아니 경제적 풍요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적 독립 없이 자기 욕망을 표출하며 사는 게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이 책 전반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에 공감이 가면서도 동시에 공허한 것은 이처럼 앞으로 지향해야 할 것을 언급하면서 정작 그것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거나, 본능을 거스르는 방법을 해결책이라고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영입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다르지 않다.


학업을 마친 이가 당장 현업에 투입되어 실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그 말이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사십 년 넘게 직장 생활하면서 아무리 유능한 신입사원이라고 해도 당장 현업에 투입할 수 있을 만큼 역량을 갖춘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을 육성하는 일이 선배 사원이 후배 사원에, 나아가 기업이 사회에 져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내 경험에 따르면 신입사원이 자기 몫을 감당하기까지 빨라야 이삼 년이 필요했고, 그동안 회사에 안긴 부담을 만회하기까지 또 그만큼 시간이 필요해 결과적으로 오 년쯤 지나야 비로소 그때부터 자기 가치를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업들이 인재를 육성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영입할 생각만 한다면 결국 중소기업이 육성해 놓은 인재를 대기업이 채가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 중소기업에서 그런 인재를 뽑겠다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테니 말이다. 결국 그 상황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비교열위에 있는 중소기업의 위치는 더욱 열악해져 갈 것이 아닌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점점 강조되는 사회에서 대기업이 심지는 않고 과실만 따 먹겠다는 배짱을 그저 현상으로만 기록하는 저자를 과연 ‘시대를 읽는 마인드 마이너’라고 부르는 게 타당한지 모르겠다.


나는 기업의 인재 육성 의무만큼은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중소기업 출신의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나라 대기업 성장의 발판에는 무수한 중소기업의 희생이 있다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면에서 경력직원 채용 또한 대기업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산 책은 십만 부가 넘어 새롭게 꾸민 양장판이라고 한다. 나름 의미 있는 지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식 없이 현상만 지적하는 책이 13쇄에까지 이르렀다니 그저 출판의 세계가 오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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