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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Feb 29. 2024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

김현철

김영사

2023년 9월 20일


의사를 그만 두고 경제학 교수가 된 이가 최근 경제학이 왜 필요한지, 어디에 사용되는지 설명하는 책을 냈다. 저자가 출연한 방송을 보고 관심이 가서 도서관에서 찾으니 이미 예약이 밀려 한 달이나 지나서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대체로 각종 경제지표를 사용해 정부가 펼치는 정책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중 요즘 논란이 되는 의료보험과 복지정책에 대한 내용부터 살펴봤다.


의료정책


외국의 사례라고 해봐야 우리가 살던 사우디나 자식이 사는 독일 말고 나머지는 전해 들은 것이 전부이지만 우리나라의 의료 접근성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탁월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물론 사용자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의료정책으로서 적정한지는 다른 문제이지만.


저자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과잉 진료를 부추기는 것으로 판단한다. 개인 부담율이 낮은데다 실손보험이 그것을 더욱 부채질해서 의료 서비스가 오남용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그래서 건강보험을 적용한 의료 서비스가 정말 사람을 살리는지 삶의 질을 개선하는지 살펴보고, 그렇지 않으면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초기에 실손보험에 가입해 무제한에 가까울 정도로 의료비를 보장받고 있다. 물론 보험료가 만만한 수준이 아니고 의료비를 보장받았다고 해도 지금까지 납부한 금액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것으로 얻는 안도감에는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불만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이 의료비이다. 큰 어려움 없이 생계를 이어가는 서민들을 한순간에 빈곤층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바로 중증질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제는 은퇴해서 만회할 길도 없어 더욱 그렇다. 만일 지금과 같은 의료보험이나 실손보험이 없었더라면 서민에서 빈민으로 떨어졌을 사람들이 내 주변만 해도 숱하게 많다. 우리 내외만 해도 앞으로 의료비 지출이 늘면 늘지 줄어들 일이 없는 나이이다 보니 그런 사례가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물론 저자가 염려하는 대로 과잉 의료가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고 의료체계가 제대로 유지되기 위해서라도 보장을 축소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현 체계가 국민에게 주는 안도감이라던가 실질적으로도 빈민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일이고, 실제로 빈민으로 떨어졌을 때 국가가 감당해야 하는 복지 부담을 고려한다면 그것을 그렇게 단순화시켜 생각하는데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국가정책이라면서 의료재정만 생각하고 복지재정은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복지정책


지금도 복지정책이 미흡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어려운 시절을 지나온 우리 세대의 눈에는 지금 정책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수준이다. 당장 나만 해도 국민연금으로 최소한의 생계는 염려하지 않을 수 있고 지하철 무료 이용으로 외출하는데 거의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그런 복지정책이 국민의 건강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게 만드는 큰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 주변에는 최소한의 생계를 염려해야 하는 이들이 적지 않고, 정부에서도 이를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도 제도의 허점이나 미비점으로 인해 투입되는 재정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가장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오히려 대상에서 배제되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오래전에 교회에서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돕는 행사를 벌인 일이 있었다. 난치병 치료는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여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그들은 그나마 있는 복지제도의 혜택에서도 배제되어 있었다. 연락이 끊어져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지만 부양의무자인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유일한 생계 수단인 행상을 위해 중고 트럭을 가졌다는 이유로 배제된 이들을 보면서 제도를 조금만 손보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방치하는지 몹시 아쉬웠다.


사실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행정비용도 만만치 않고 한정된 재원으로 가능한 많은 이들을 돕기 위해 두고 있는 여러 가지 제한 조건이 일으키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위에서 말한 부양의무자나 재산 조건도 그렇고, 애써 소득을 올리면 그만큼 혜택이 줄어드니 일을 할 유인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허황해 보이기는 하지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에 한동안 관심을 가졌던 때도 있었다.


기본소득 제도는 일을 하려는 유인을 꺾지 않고 행정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워낙 돈이 많이 드는 일이어서 한정된 재원으로 시행했다가는 푼돈 수준을 면하기 어렵고 따라서 소득재분배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한 만큼을 지원해주는 ‘안심소득’ 정책이 더 현실적일 것으로 판단한다. 이는 2022년부터 서울시가 시범 사업으로 실시하고 있는 정책으로, 서울시가 정한 기준소득(중위소득의 85%)과 실제 소득과 차이의 50%를 지급하는 것이다. 복지 수급자가 일할 유인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정된 재원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니 기존의 복지정책과 기본소득 정책의 유리한 점을 모아놓은 셈이다. 행정비용도 기존의 복지정책에서 크게 늘어날 것이 없어 보인다. 관심을 두고 추이를 지켜볼 만한 일이다.


동의하기 어려운 해석


저자는 주5일 근무가 오히려 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증명되었다고 말한다. 주5일 근무가 되면서 급여가 줄어들지 않았으니 시급이 올라간 것인데, 생산성이 시급 오른 것보다 더 많이 향상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여러 지표를 근거로 내린 결론이겠지만 실제로 그 변화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별로 동의가 되지 않는다. 나는 개인의 생산성이 다른 업종보다 잘 측정되는 설계회사에서 근무했다. 주5일 근무가 시작되고 나서도 같은 업무량을 소화했으니 생산성이 늘어난 것이 맞기는 했지만, 문제는 그 생산성이 그대로 유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고마운 마음에 자발적으로 근무 강도를 높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한 권리가 되었고 그러자 다시 원래의 근무 강도로 돌아갔다는 말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생산성은 향상되게 마련이다. 업무에 익숙해지기도 하고, 절차를 개선해 시간 낭비 요소를 없애기도 하고,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때문에 성과가 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계량해 주5일 근무로 늘어난 생산성에서 분리해내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경험해본 사람들은 정량적으로는 불가능하더라도 정성적으로는 주5일 근무로 인한 생산성 향상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2000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제조업 정리해고자 4만여 명을 대상으로 이들의 소득과 건강을 5년 이상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소득은 크게 감소했지만 놀랍게도 남성의 경우 건강은 오히려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 및 비만 지표가 감소되었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것을 열악한 근무 환경이나 회식 문화에서 벗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사회역학 연구자인 서울대 김승섭 교수의 쌍용차 해고노동자 추적 관찰 결과와 너무도 다르다. 김승섭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해고노동자 본인뿐 아니라 그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은 가히 치명적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상반된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의아하다.


저자는 임산부 건강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장에서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이 임산부에서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거론하면서 “라마단 때의 불충분한 영양 섭취로 이때 영향 받은 태아가 훗날 장애인이 될 확률이 20%나 높았다고 설명한다. 미국 경제학술지에 실린 2011년 논문을 인용한 것인데, 라마단을 단순히 금식월로만 이해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이슬람에서는 헤지라력으로 아홉 번째 달인 라마단 월 내내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금식한다. 하지만 해가 지고 나면 해 뜰 때까지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논다. 이슬람 종주국이라는 사우디에 십수 년 사는 동안 생활 쓰레기 배출과 관련된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면서 이때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가 평소보다 30%나 많다는 것을 직접 측정한 사람으로서 라마단에 영양 섭취가 부족하다는 해석은 이해하기 어렵다.


저자는 곳곳에서 자신의 해석을 뒷받침하는데 자신의 사례를 예로 들고 있다. 글의 첫 주제인 ‘인생 성취의 8할은 운’에서 자신이 거둔 놀라운 성취가 운 때문이었다고 언급하는데, 그 모습이 겸손함보다는 자기 자랑처럼 느껴져서 불편했다. 책을 열자마자 나오는 무려 열다섯 편에 이르는 추천사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 자신의 주장인지 자기 자신인지 혼동하게 만들어 오히려 없느니만 못했다. 그래서인지 나머지 부분에서도 저자가 공들여 쓴 것만큼 공들여 읽게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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