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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r 04. 2024

대체로 무해한 이슬람 이야기

<피렌체의 식탁> 박인식의 호기심 따라 읽기 5

지난 12월 8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황의현 선생의 북토크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바로 <대체로 무해한 이슬람 이야기>의 저자이시지요. 책을 먼저 읽었으면 질문할 것이 많았을텐데 어쩌다 보니 북토크에 먼저 참석하고 책은 나중에 읽게 되었습니다. 책 읽다 질문이 몇 개 생겨 저자에게 물어보러 간다고 벼르기만 하고 여태 못 가고 있습니다. 할 일도 없는 백수가...


그 책의 서평이 웹진 <피렌체의 식탁>에 다섯 번째 글로 실렸습니다. 링크 따라서 한 번 방문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대체로 무해한 이슬람 이야기>


황의현

씨아이알

2023년 11월 6일


우리나라에는 이슬람에 호의적인 사람들보다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이유가 되었겠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형편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혐오의 대상이 된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은 난민이거나 취업을 위해 입국한 사람들에게 국한되었을 뿐 중동 부자들이 이슬람혐오 때문에 푸대접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슬람혐오가 약자에 대한 차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이 테러로 나타나고 더 나아가 전쟁으로 비화된 것이 사실이니 이슬람혐오가 전혀 근거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슬람혐오는 금세기 들어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중동 연구자인 저자는 이슬람에게 폭력적이고 배타적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진 것은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한다. 동시대에 이슬람에게 정복되었던 기독교의 기록에는 정복과정에서 일어난 약탈과 탄압이 강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복이 전적으로 평화적이고 관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쪽이나 정복을 피에 굶주린 광신도들의 일방적인 파괴와 학살로 규정하는 쪽이나 모두 정복이라는 다면적이고 복잡한 사건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같다”고 언급한다. 아마 그런데도 이슬람을 폭력적이고 배타적으로 평가했다면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기독교는 왜 그렇게 평가하지 않느냐는 뜻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슬람 종주국이라는 사우디에 십 수 년을 살면서 이슬람이 과연 신앙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들은 정해진 규범에는 충실했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기독교에서처럼 신앙 때문에 치열하게 번민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 “이슬람에서는 선지자 무함마드가 알라에게 계시를 받아 기록한 쿠란과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가 완벽한 종교적 규범이기 때문에 이를 올바르게 수행하는 것이 무슬림의 의무”라고 설명한다. 아울러 북토크에서도 같은 질문에 대해 이슬람과 기독교가 생각하는 ‘신앙의 개념’이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고뇌하는 것’과 ‘수행하는 것’이라는 차이.


저자는 이슬람을 설명하는 이 책을 이슬람 전통에 도전하는 수정주의 역사학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은 이슬람의 기록이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 아니라 ‘후대인들이 이슬람과 무슬림 공동체의 역사라고 믿던 것’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쿠란이 기록된 곳이 아라비아반도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고, 놀랍게도 선지자 무함마드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이슬람은 새로운 신앙과 동시에 양극화와 빈부격차에 시달리던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사회적 운동이었으며 무함마드는 신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예언자이자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한 혁명가이자 정치적 지도자였다”는 평가는 이미 고전이 되었다. 이슬람 안에서 기독교의 성서비평학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나로서는 매우 놀라운 설명이었다. 고등종교라면 응당 있어야 할 논쟁이 이슬람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내 무의식 속에 들어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이슬람혐오 역시 이러한 경시(輕視) 풍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관점에서 이슬람의 골격을 ‘이야기’로 풀어낸 이 책이 이슬람혐오의 근원인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를 제거하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할 것이라고 기대할만 하다.


무슬림은 19억 명으로 교인 24억 명의 기독교를 바짝 뒤쫓고 있다. 인구증가율을 감안하면 기독교를 앞지를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이슬람은 우리가 혐오를 언급할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슬람은 역사적으로도 막강한 동로마제국과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중동 일대를 장악한 세력이었다. 저자는 이슬람이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고 지금까지 그 세력을 유지하게 만든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무함마드는 메디나 주민들과 협정을 맺어 이슬람 최초의 공동체를 세웠다. 서로 싸우며 때로 제국 변방을 노략질하며 살아가는 부족들로 분열되어 있는 유목민을 같은 신앙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통합하고 삶에 새로운 의미와 목표를 부여해 정복자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때 페르시아는 왕위승계 전쟁으로 혼란에 빠져 아랍 유목민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고 그 사이 아랍인들은 메소포타미아까지 진출했다. 동로마제국은 아랍 유목민의 소규모 약탈에만 대비한데다가 주력부대를 북쪽에 배치해 남쪽에서 침입한 대규모 아랍군대를 막아낼 수 없었다.”


“유목민이나 야만인이 정주민의 국가를 군사력으로 침공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정복자들은 정주국가의 문화에 동화되어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상실했다. 그러나 유목민이던 아랍인은 동로마제국과 페르시아를 점령하고도 동화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주민을 동화시켰다. 가장 대표적인 척도가 바로 언어이다. 아랍인이 등장하기 전 중동에는 그리스어, 콥트어, 페르시아어와 같은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었으며 아랍어는 아라비아반도와 인근지역을 떠돌던 유목민이나 사용하던 언어였다. 오늘날에는 상황이 완전히 뒤집혀 이란과 터키를 제외한 중동지역의 지배언어가 되었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에게 낮은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특히 노예나 전쟁포로처럼 사회 최하층에 놓인 사람들에게 개종은 자유를 되찾고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는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비무슬림은 인두세를 내야 하는데 개종자는 이를 면제 받았다. 또한 무슬림 군대의 일원이 되어 아랍 무슬림 병사들과 똑같이 봉급을 받았다. 아랍인과 다른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던 비아랍인의 개종은 이슬람 문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 중 페르시아 문화권 개종자들은 학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저자는 책의 앞머리에서 이와 같이 대단한 저력을 지닌 이슬람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이슬람은 7세기 초반 아라비아반도 메카에서 시작되었다. 쿠라이쉬 부족의 일원인 무함마드가 메카 인근 동굴에서 명상하다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 그는 계시를 내린 유일신을 믿고 그의 뜻에 따라 살며 최후 심판의 날을 준비할 것을 사람들에게 촉구했으나 다신교 신앙을 가진 같은 부족의 지도자들의 박해로 메디나로 피신해 최초의 무슬림 공동체를 만들었다. 무함마드는 추종자들과 함께 힘을 키워 쿠라이쉬 부족의 항복을 받고 메카에 무혈 입성했다. 무함마드가 죽은 후 암송과 구전으로 전해지던 신의 계시를 쿠란으로 만들고 모든 무슬림들이 같은 쿠란을 읽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기만 하면 되었다. 쿠란은 만들어진 이래 지금껏 한 글자도 바뀌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쿠란과 하디스는 무슬림이 지켜야 하는 율법인 샤리아의 토대가 되었다.”


현재 중동의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 이슬람 종파갈등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졌지만 종파의 ‘분화 과정’과 ‘신학의 차이’는 그 정도까지 알려지지는 않았다. 저자는 이슬람 생성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분화한 과정과 그 결과로 형성된 종파에 대해 ‘이야기’ 하듯 설명하고 있다. 다만 신학의 차이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설명을 찾기 어려워 아쉬웠다. 그것은 어쩌면 이슬람의 관점에서는 신학의 차이라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인데도 아직 내가 기독교적인 신앙관으로 바라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교양서 형태로 발간되었지만 내용은 중동 연구자로서 저자의 연구 성과를 담은 학술서이다. 그래도 ‘이슬람 이야기’라는 책 이름에 걸맞게 학술용어를 최대한 피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쓴 매우 친절한 책이다.


https://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0733&fbclid=IwAR0MopTeUtNkQqC9rVHHcAF3zBIEAg_jR7bPiiV2Ut8gcWqR7RPj590PM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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