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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r 01. 2024

사우디 정부의 긍정적인 변화 몇 가지

2024년도 벌써 3월인데 사우디 경제 현황을 설명할 때 아직도 2021년도 GDP를 사용한다. 그동안 GDP는 월드뱅크에서 발표한 것을 사용했는데, 그에 따르면 사우디 GDP는 2021년 8,740억 달러에서 2022년 1조 1,100억 달러로 무려 27퍼센트나 증가했다. 재정의 석유 의존도가 70퍼센트에 달하는 국가에서 석유 수출량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유가가 특별히 높았던 것도 아닌 해에 GDP가 27퍼센트나 증가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그 이전의 데이터에 대해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2021년 GDP가 다른 지표와 크게 충돌을 일으키지 않아 사용해온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월드뱅크에서 발표한 자료를 의심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경제학 교수 한 분께 이 데이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자문을 구했다. 그래서 월드뱅크 자료라고 해도 결국은 해당 국가가 제공하는 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과 함께 전력 사용량을 함께 비교해보라는 조언을 얻었다. GDP는 에너지원인 전력 사용량과 연계되고 실제 데이터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비교해보니 유가도 그렇고 전력 사용량의 변화양상도 GDP와는 영 달랐다. 도무지 GDP가 그렇게나 증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사우디가 얼마 전에 재무부에서 Interactive Budget Dashboard라는 웹사이트를 공개했다. 사우디 각종 경제지표와 예산 집행현황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것인데, 그동안 사우디에서 보여준 여러 전향적인 정책 중에도 손꼽을만한 것이었다. 그동안 제대로 된 데이터를 얻기도 힘들고 데이터에 대한 신뢰도도 의문의 여지가 있던 사우디로서는 획기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확인해 보니 Service Unavailable이라는 글만 보인다.

https://www.mof.gov.sa/en/budget/Pages/Dashboard.aspx


사우디에서 하던 일이 통계가 필수적인 일이어서 늘 통계를 꿰고 살았지만, 통계가 안정되지 않아 데이터를 이용할 때마다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같은 통계가 부처마다 값이 달랐을 뿐 아니라 같은 부처에서 공개하는 통계도 데이터마다 값이 달랐고, 심지어는 이미 발표한 과거 자료가 바뀐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인구 통계이다. 현재 사우디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는 3,218만 명인데 과거에는 같은 사우디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가 3,500만 명을 넘은 일도 있었고 지역별, 성별, 국적별 통계와 총계가 다른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제는 사우디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데이터는 적어도 서로 어긋나는 경우는 보이지 않는다.


그와 더불어 하나 더 놀라운 것은 사우디 재무장관이 ‘비전 2030’의 기치 아래 진행되는 사업들이 자금 사정으로 지연될 수 있다고 발표한 점이다. 기억이니 부정확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우디에서 일하는 동안 그리고 돌아오고 나서도 사우디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고 스스로 인정한 것을 본 일이 없다. 그런 사우디가 당초 2030년을 목표로 추진하던 사업을 재무장관이 나서서 어떤 사업은 2033년, 어떤 사업은 2035년, 그리고 몇몇 사업은 그보다 훨씬 더 뒤로 미뤄질 수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함께 발표한 보도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이 모든 사업의 돈줄이라고 하는 공공투자기금(PIF)가 보유하고 있는 자금이 150억 달러뿐이라고 한다.


https://gulfnews.com/business/economy/saudi-minister-some-2030-projects-to-be-delayed-1.1701950023385


사람에 따라서는 이것을 사우디 경제에 대한 적신호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오히려 사우디가 자기 울타리를 깨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합류하는 좋은 신호라고 생각한다. 사업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추진하는 과정에서 얼마든 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변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지극히 당연한 일을 사우디 정부는 지금까지 외면했던 것이고. 이와 더불어 정부 통계가 안정화된다는 것 또한 그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일이다.


어제 오후에 그동안 온라인에서만 교류하던 경제학 교수 한 분을 만나 사우디 현안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게 되었다. 대화 중에 사우디가 유치해야 할 외자 규모와 이런 변화를 함께 설명하다가 문득 그것이 외자 유치를 염두에 둔 변화가 아니었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사실 사우디에서 정책과 관련한 컨설팅을 하면서 통계가 부실한 것 때문에 몇 번이나 고비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런 통계를 믿고 어떻게 사우디 정부와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사우디 정부가 보여온 변화가 모두 외부, 특히 투자자의 신뢰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바람직한 변화이고 당연한 일이다. 이런 태도라면 곧이어 지금까지 발표한 사업 중에 비현실적인 것을 조정하는 과정이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할 만하겠다. 이미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으니 ‘뻥카는 이미 그 효력을 발휘한 것이고, ‘뻥카’를 더 붙들고 있어 봐야 신용만 떨어질 것이니 이제 슬슬 거두어들여야지.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이어질지 흥미진진하다.


어제 만난 교수께서 역량이 대단하시다는 말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그렇다.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질문으로 내가 가졌던 생각을 다 털어놓게 만드셨으니 말이다. 일전에 이분과 함께 근무했던 지인이 이분을 일컬어 천재라고 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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