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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pr 02. 2024

나영수 교수

모처럼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들러 미처 읽지 못한 <객석>을 읽었습니다. 작년 7월호 커버스토리가 ‘창립 50주년 국립합창단’이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초대 지휘자이셨던 나영수 교수의 글이 실렸더군요. 사실 얼마 전 페북에서 나 교수께서 한국에 처음 소개한 찬양곡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돌아가신 줄 몰랐습니다. 그러고 나서 찾아보니 바로 지난달에 돌아가셨더군요.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세계적인 재즈 보컬리스트인 나윤선 씨가 바로 나영수 교수의 따님입니다. 대학 불문과에서 제수씨와 단짝으로 지냈던 인연으로 제 아우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기도 했지요. 그때 불렀던 축가가 바로 ‘이 믿음 더욱 굳세라’였는데요, 부친이신 나영수 교수께서 돈 베이직이 작곡한 이 찬양곡에 우리말 가사를 붙이고 따님 노래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 제 아우의 결혼식이었던 겁니다.


지난 2월 중순에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나윤선 씨 재즈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아들 내외가 다녀왔는데요, 누군지 알아보고는 매우 반가워했답니다. 그러고 나서 보름 만에 돌아가셨군요.


나영수 교수께서는 저희 세대에게는 합창의 상징과도 같은 분이었습니다. 국립합창단을 만들고 초대 지휘자로 수고하셨고 이후에도 몇 번이나 지휘자를 역임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 합창 운동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합창 보급에 앞장서신 분이지요. 개인적으로는 합창 지휘를 그분처럼 우아하게 하는 이를 보지 못해 더욱 기억이 남습니다.


나 교수께서 이끈 합창 활동 중 하나가 지금은 연말 행사로 자리 잡은 ‘솔리스트 앙상블’입니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남성 성악가들을 모아 합창단을 만들어 공연한 것이지요. 한국 성악계의 두 기둥이셨던 테너 안형일 선생과 바리톤 오현명 선생께서 버티고 계셨으니 그 합창단의 위용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제 중학교 은사이신 바리톤 윤치호 선생께서도 함께 하셨습니다. 아마 1984년이 첫 공연이었을 텐데, 그때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공연에 아내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사실 세종문화회관에 가서 ‘솔리스트 앙상블’ 연주가 시작되기 전까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과연 홍보한 대로 그 대단한 성악가들이 빠지지 않고 다 나올까 싶었거든요. 그때는 오십 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 남성 성악가를 일렬로 세워놓고 1등부터 50등까지 뽑아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때 단원 얼굴을 모두 실은 프로그램을 사서 아마 반절 정도는 싸인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합창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한 달 전에 돌아가신 그분의 마지막 기고였을 글을 읽으면서 잠시 옛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이 저보다 열일곱 살 위이시지요. 그렇다면 저도 이제 이십 년도 안 남았다는 말이겠네요. 귀한 시간이니 앞으로 낭비하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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