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 Review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May 12. 2024

전쟁과 학살을 넘어

<피렌체의 식탁> 박인식의 호기심 따라 읽기 9

웹진 <피렌체의 식탁>에 아홉 번째 서평이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구정은, 오애리 두 국제전문기자가 쓴 <전쟁과 학살을 넘어>를 읽었습니다. 링크는 아래에 올립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클릭 한 번...


♣♣♣


전쟁과 학살을 넘어

구정은, 오애리

인물과사상

2023년 12월 20일


중동 근현대사를 들여다보면 주역이 되어야 할 중동의 각국은 조역에 지나지 않고 주역은 영국과 미국이 꿰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중동의 국경을 그은 것이 영국이 주도한 일이고, 중동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원인이 된 이스라엘 문제도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벌인 영국의 이중플레이가 빚은 결과였다. 그리고 그 주역의 자리를 넘겨받은 미국이 악의 축을 없애겠다는 증오의 감정으로 벌인 이라크 전쟁으로 중동이 평화가 찾아오기는커녕 오히려 이란을 패권국으로 만들어 중동을 더욱 깊은 전쟁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었다.


국제전문기자인 두 저자가 왜 인류가 끊임없이 싸우는지를 들여다본 신간이 나왔다. 저자는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전쟁과 학살의 실상을 원인부터 차근차근 짚어나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해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학살을 살피고는 있지만, 역시 중동전쟁이 압도적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스라엘이 등장한 이후 중동은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이스라엘은 등장부터가 요란했다. 1945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다음 날 이에 분개한 아랍 국가들이 제1차 중동전쟁을 일으켰다. 1956년 이집트가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하자 이스라엘은 영국,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제2차 중동전쟁을 일으켰다. 1967년에는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을 상대로 제3차 중동전쟁을 일으켰다. 6일 전쟁으로 알려진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를,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과 요단강 서안을, 시리아로부터 골란고원을 빼앗았다. 지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제3차 중동전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돌려줬을 뿐 나머지는 사실상 지금까지 불법 점령하고 있다. 1973년에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축이 된 연합군에 맞서 승리한 제4차 중동전쟁인 욤키푸르 전쟁이 일어났다.


이스라엘은 이후 1977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맺은 캠프데이비드협정에서 이집트에 시나이반도를 돌려주는 대신 수에즈운하 이용권을 인정받았다. 1993년에는 클린턴 대통령의 중재로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이 요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영토로 하는 팔레스타인 정부를 구성하고 나머지는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하는 ‘두 국가 해법’을 담은 오슬로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곳곳에 주둔하며 모든 것을 통제했다. 이스라엘에 아랍계 인구가 늘자 유대계 인구를 늘린다며 외국으로부터 유대인을 대거 받아들여 요단강 서안 여기저기에 정착촌을 만들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정착촌을 잇는 콘크리트 분리 장벽을 세워 일방적으로 영토를 굳혔다. 팔레스타인 저항과 테러 공격을 유혈진압하고 민간인을 살해했다. 그것이 지금의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중동 한복판에 유대계 나라인 이스라엘이 자리 잡게 된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영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벌인 이중플레이의 결과였다. 1차 세계대전으로 전쟁 치를 돈과 포탄 제조를 위한 아세톤 대량생산 기술이 필요했던 영국은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유대 부호들과 유대 과학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벨푸어 선언을 전달한다. “영국 정부는 유대 민족을 위한 ‘민족의 고향’을 팔레스타인에 수립하는 것을 적극 찬성하며 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약속을 담은 것이었다. 동시에 아랍 지도자들에게 “독일 편에 선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워 승리하면 독립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담은 맥마흔 선언을 전달한다. 자기 이익을 위해 양측이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약속한 것이다.


미국은 중동과 중남미,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반미 정권이 들어서면 그 나라 군부나 반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부추겨 간접적으로 정권을 뒤엎는 전략을 썼다. 그러나 9.11이 일어난 이후 전쟁이라는 ‘직접 개입’ 수단을 통해 정권을 교체해버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9.11 주모자 오사마 빈라덴이 은신해 있던 아프간을 공격해 전쟁을 일으키고, 이어서 2003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알카에다를 제거하겠다는 명분으로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훗날 후세인 정권은 오히려 알카에다를 누르기 위해 애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졌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었다. 파월 국무장관이 이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공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그조차도 속은 것이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이후 자체적으로 사찰단을 꾸려서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증거를 찾는 데 실패했다.


저자들은 미국이 위상이 떨어지고 리비아 내전, 시리아 내전이 있을 때마다 국제사회의 분열이 반복된 것은 모두 미국이 거짓 정보를 퍼뜨려가며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분란을 일으킨 탓이라고 지적한다. 그 결과 미국이 바란 것과는 반대로 이란이 최대 정치적 승자가 되어 지역의 패권국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시아파 벨트가 생긴 것이 종교적인 공통점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의 횡포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고 그런 여론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운 정치집단이 생겨났다는 말이다.


저자들은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거나 퍼뜨리는 무법자들을 ‘세계 경찰’로서 징벌한다는 미국의 입장이 국제사회에서 논란거리라고 지적한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인 핵을 가장 많이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처럼 자기와 친한 나라는 그것을 용인하고, 어느 나라도 미국에서 다른 나라를 징벌할 권한을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저자들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렇기는 한데, 그런 나라가 없으면 누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저자들은 국제사회가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각종 조약이나 국제법, 유엔 결의안 같은 것이 대규모 전쟁을 막고 전쟁을 덜 참혹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낙관론자들의 믿음일 뿐이고 실제로 잘 지켜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국제적인 룰이 없을 때에 비해 대부분의 국가들이 룰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한다. 국제 제재가 두렵고 세계 여론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을 때 장기적으로 불이익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저자들의 그런 생각조차도 너무 낙관적인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여론의 힘이 무서운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해결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그 시간 동안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나라가 생각이 이와 같다고 해도 누군가 구심점으로 나서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것이 세력을 이룰 수 있을까? 지금껏 미국이 그 구심점 역할을 해 온 것이 사실이고.

저자들이 이 책에서 지적한 것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의 행태가 정의와 무관하게 오직 자국의 이익을 취하는 쪽으로 치우쳐가는 것을 봐도 미국이 ‘세계 경찰’을 자임하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저자들은 중국이 미국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전문가들의 대답은 압도적으로 ‘아니다’ 쪽에 힘이 실려 있다고 말한다. 중국은 미국을 대체할 능력도 갖추지 못했고 그 책임을 맡고 싶어 하지도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저자들이 이런 전언이 놀랍다.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능력도 의지도 없어서가 아니라 독재국가라는 그 정체성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아무리 인용이라고는 하지만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를 어떻게 능력과 의지에서 찾는다는 말인가.


저자들은 이 책에서 다섯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살피고 있다. 첫머리에 실린 우크라이나 전쟁을 제외한 팔레스타인,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은 모두 중동에 몰려있다.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라는 평가가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저자들은 마지막 6부에서 “전쟁을 막을 수는 없는가”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전쟁을 막을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저자들은 전쟁을 막을 방법을 모색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전쟁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https://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0855


매거진의 이전글 야구의 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