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뭔가 무척 기쁜 일이 있었는데, 문득 이곳에서도 이렇게 좋으니 죽어 천국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아마 그때부터 천국에 소망을 두게 되었을 것이다.
모처럼 처가 산소에 왔다. 함께 온 막내 처남은 산소 가꾸는 일에 지극정성이다. 조상 산소 옆으로 형님들 뿐 아니라 자기 부부 가묘까지 만들어놨다. 풀을 뽑고 낙엽을 긁는 처남을 보고 기왕 왔는데 자기 산소에 대고 절이나 한번 하고 가지 그러느냐고 어깃장을 놨다. 죽고 나면 산소 쓰는 건 물론 장례도 치르지 말라고 일러놓은 내게는 그 지극정성이 그저 부질없는 일로 여겨졌거든.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름을 쳐다 보다가 천국이 어디쯤 있을까 궁금해졌다. 거기 가면 좋기는 할텐데.
갑자기 천국이 좋으면 얼마나 좋으랴, 좋으면 또 어쩌랴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만사가 무덤덤해졌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천국에 대한 소망도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이젠 천국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렇다. 있어서 딱히 기쁠 것 같지도 않고 없다고 섭섭할 것도 없어 보인다. 그걸 따지는 것이 모두 부질 없는 일이다 싶고. 그저 무념무상이라고나 할까.
예수께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천국을 말씀하신 일이 언제 있기는 했는지 잘 모르겠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나 천국은 죽음 이후에 옮겨질 어떤 세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태도, 혹은 마음의 상태를 일컫는 것은 아니었을까? 영생도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영생이나 천국은 믿음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 없는 건 혹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