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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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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09. 2024

2024.07.09 (화)

지난달에 ‘진실의힘 세월호 기록팀’에서 펴낸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을 읽었다. 사실이 음모론에 가려진 채로 십 년이 흐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사고의 전말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백서가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세월호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사고 자체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자기주장의 도구로, 정쟁의 도구로 여기는 이들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외면하려 한다고 해서 외면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고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으니 들여다볼수록 오히려 혼란을 부추길 뿐이었다. 다행히 사고의 전말을 가장 사실에 가깝게 그려낸 백서가 만들어졌다. 무려 900쪽에 가까운 엄청난 분량이었지만 굳이 그것을 꾸역꾸역 읽은 것은 그것이 내 나름의 애도이자 사건의 마무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고 나서 오히려 절망이 깊어졌다. 그런 참사가 일어날 줄 알았다 해도 막을 방법이 없어 보였다.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가 켜켜이 쌓여 일어난 사건이었고, 그랬으니 그동안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언제 일어나도 일어날 사건이었다는 말이다.


세월호 사건은 모든 국민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지 현장 근무의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원칙과 안전이 몸에 배었다. 예전이라고 원칙과 안전을 외면했을까마는, 지금처럼 ‘어떤 경우에도’ 그랬던 것은 아니다.


현장에 와서 한 달 넘도록 매달린 가장 큰일이 수해방지시설이었다. 바닷가 산 능선을 깎아 만드는 시설이다 보니 큰비가 내리면 무너져 피해가 일어날 수도 있고, 마을 어민들이 애써 가꾸어 놓은 어장에 피해가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작업 현장을 돌아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전 같으면 지나치다고 반발했을 일이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일기예보와 달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저 장맛비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서둘러 출근했다. 이미 대부분 출근해 현장을 돌아보고 올리는 사진들로 카톡방이 요란했다. 사무실로 돌아오고 나서도 모두 긴장을 풀지 않는 모습이었다.


사실 그동안 소도 수없이 잃고 외양간도 수없이 고쳤지만 뭐 하나 제대로 고쳐놓지 않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채 십 년이 되기도 전에 이태원 참사가 다시 일어난다는 말이냐. 그래서 달라진 현장 분위기를 지켜보면서도 다행스러워하지도 못하겠고 마음이 놓이지도 않는다.


내일은 오늘보다 비가 더 내리려는 모양이다. 일단 내 업무부터 잘 감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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