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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24. 2024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고영

포도밭출판사

2019년 11월 25일     


언제부턴가 페이스북에 도드라져 보이는 음식 사진이 올라왔다. 페이스북에 음식 사진이 보이는 것이야 새로울 게 없는 일인데 그 사진은 그 중 유달리 돋보였다. 여느 사진과 달리 단품 음식을 하나 놓고 방향과 높낮이와 밝기를 바꿔가면서 음식이 지닌 본디 색깔을 구현하려고 애쓰는 것이 둔한 내 눈에도 읽힐 정도였다. 사진만큼이나 글도 독특했다. 어찌 보면 선문답 같은. 은유와 상징이 아닌가 싶기는 했어도 글쓴이를 분간할 수 없으니 그저 짐작에 맡기는 밖에.     


어느 날 본인이 쓴 신문 칼럼을 올려놓은 것을 보고 비로소 그가 음식 문헌 연구라는 드문 일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 4년 넘게 그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찾아 읽으면서 그의 저서가 궁금해졌다.     


책을 펼치니 지난달에 계간지 <보보담>에서 읽었던 정조시대 인물 김려(1766-1822)가 남긴 서사시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 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김려의 <우해이어보 牛海異魚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읽던 기억이 있어 무척 반가웠다. 저자는 그 이야기에 이어 ‘역사 문헌 읽는 일’을 “그저 옛날이야기를 읽는 한가한 일이 아니며, 사람이 살아남자고 발버둥 친 자취와 그 발버둥이 구체적인 궁리와 행동과 제도로 이어진 자취를 널리, 깊이 그리고 행간까지 읽는 일”이라고 재정의한다.     


언제부턴가 음식 칼럼니스트라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면서 우리 음식의 특징과 유래에 관한 글이 부쩍 늘었다. 저자 역시 자신의 고유한 시각으로 우리 음식을 풀어가고 있는데, 그중 김치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끌었다.     


“김치는 홑으로도 자립한 일품요리인가 하면 흰 쌀밥의 으뜸 반찬이고 국수와 만두하고도 최고의 짝꿍이다. 홀로 자립할 수 있으면서도 밥과 동반해 밥상의 방점이 되고 다른 음식 안에서 빛나는 조연이 된다. 부재료가 되어 섞일 때도 제 줏대를 잃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다른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음식이 또한 김치이다.”     


이 글을 읽는데 슬며시 웃음이 났다. 라면에 대한 설명이라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라면이 우리 삶에 김치만큼이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 음식이 되었다.     


이 책으로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적지 않다. 저자는 지금은 간단해 보이는 국수가 예전엔 여성들의 땀국이라고 할 만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국수도 흔하고 포장한 맛국물이나 액상 장국도 흔하지만 예전엔 밀 낱알을 까부르고 씻어 멍석에 말린 후 맷돌질을 해서 밀가루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평생 촌부로 사시던 분이 신식 부엌을 보고 가장 부러워했던 게 주방기기가 아니라 수도와 가스레인지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쳤는데, 국수 만드는 걸 밀가루 반죽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밀 낱알을 까부르는 걸로 시작해야 했다니 지금 슈퍼에 가서 국수 사 오는 걸 보면 느낌이 어떨까.     


빵과 과자를 가르는 경계는 늘 궁금해하면서도 미처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었다.     


“반죽이 발효를 거치면 빵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과자가 된다. 빵은 주식이니 입에서 물리지 않고 뱃속에서 부담이 없고 질김과 풍미가 수수해야 한다. 반면에 과자는 배 불리자고 먹는 게 아니라 별미로 먹는 간식이니 맛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 빵은 19세기 말 개항한 이후에야 한국 음식문화에 유입되었는데, 속 넣지 않고 쪄낸 빵이 만두이고 속 넣고 쪄낸 빵은 포자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만두는 빵의 속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 교자이다. 일본은 주로 구운 빵인데 전통 팥소를 중국식 포자로 싸서 구운 단팥빵이 대표적이다.”  


책을 읽는 내내 왜 제목을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로 했을까 궁금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16세기 말 포르투갈에서 나가사키로 유입된 카스텔라가 일본에 정착하면서 카스테라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유럽 사람도 이것을 양과자가 아닌 일본 전통의 화과자로 여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니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런데 책 읽기를 마치도록 저자가 이 제목을 통해서 독자에게 무얼 전하려 했던 것인지 끝내 짐작하지 못했다. 굳이 음식에 국적을 따지는 게 불편했던 것일까?     


음식에 대한 소소한 상식도 적잖게 나오지만, 음식 문헌 연구서인 이 책의 진가는 그것보다는 그간 잘못 알려진 것에 대한 통렬한 비판에서 빛을 발한다.     


“조선 임금이 선농단에서 제를 올리고 끓인 선농탕에서 설렁탕이 유래했다는 이야기는 이젠 음식 문화사 공부하는 사람들이 거론조차 하지 않는 낭설이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설렁설렁 끓은 것을 사람들이 설렁설렁 걸어가 설렁탕 뚝배기를 설렁설렁 해치운다는 데서 설렁탕이 되었다. 한국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신 이가 고종이라는 사실도 그렇다. 낭설 수집을 음식 문화사 공부로 착각하면 그 다음이 없다.”     


문득 이 말을 새겨들어야 할 이가 몇몇 떠 오른다. 그것 말고도 남의 집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이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이런 이야기도 있다.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하는 차례상에 관한 규약은 예서에 나타나지 않는다. 예서의 기본으로 자리 잡은 ‘주자가례’가 그렇고 18세기 ‘사례편람’도 그렇다. 1577년 간행된 ‘격몽요결’에서 차례는 그때 나는 식음료로 해 올리되 별다른 게 없으면 떡과 과실 두어 가지면 된다고 언급한다. 명절을 앞두고 기억할 말은 딱 한 가지 ‘가가례(家家禮)’이다. 집집마다 예가 다르다는 말이니 집집마다 저마다의 예를 따르면 되는 일이다. 남의 집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일도 없고 오랜만에 피붙이들이 모이는데 남의 눈치를 볼 일도 없다. 차례는 원래 축문도 읽지 않고 술도 한 번만 올리는 간소한 예식이었다. 퇴계 이황도 간소한 제사와 차례를 강조했다. 파평 윤씨 고택에 전해 내려오는 차례상은 두 자에 석 자를 조금 넘는다. 1970년대 이후 대중매체가 차례에 무슨 대단한 규약이 존재하는 듯 굴었으나 이는 소비와 과시의 시대를 맞아 새로 만들어낸 전통이다.”     


아직 집에서 제사 드리던 때 일이다. 형이랍시고 아우들에게 제사상은 이렇게 차리는 것이라며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읊어대고 있는데 작은아버님이 지나가듯 “제사는 가가례란다” 말씀하셨다. 이 글을 읽으며 그때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음식 문헌 연구자인 저자의 글 중 압권은 한식 세계화, 음식 문화 복원에 관한 저자의 신랄한 비판이다. 저자는 문화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한식 세계화의 한식’은 한국인이 먹어본 적도 없고 먹을 일도 없는 음식이라고, 다만 사진과 영상은 잘 받아 장식품으로는 볼 만하다고 일갈한다. 정체불명의 음식이라는 것이다. 하긴 우리 전래주택쯤으로 여기는 북촌도 일제 강점기 집 장사가 지은 집이고 궁중음식도 그 당시 요릿집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문헌에 보이는 다양한 방법과 재료를 대하는 태도와 감각은 배우지 못하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복원을 운운한다. 온 세계와 다함께 피 흘려 해방을 맞고 피 흘려 공화국을 세웠는데 난데없이 반가(班家)와 왕실이라는 이름을 음식에 가져다 대고 그 말 한마디에 음식에 위엄이 깃든다고 착각한다.”     


광화문 월대 복원하는 일에도 비슷한 비판이 있었다. 월대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온 건 세종 때 일로, 중국 사신을 맞기 위한 것이었다. 임금의 권위를 강화하고 한편으로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를 강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하지만 세종은 이것을 거부했고, 월대가 세워진 건 그 후로 수백 년 지난 흥선대원군 때로 조선이 망하기 고작 수십 년 전이다. 그런 걸 민주시민이 사용하는 광장에 복원하자는 것이니, 피 흘려 해방을 맞고 피 흘려 공화국을 세웠는데 난데없이 반가니 왕실이니 하는 이름을 음식에 가져다 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책은 저자가 쓴 칼럼을 읽으며 짐작했던 그대로였고, 그래서 반가웠다. 이 정도면 저자가 올리는 글을 해독할 만도 한데, 아직도 저자의 글 태반이 내겐 암호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왜 저자는 오늘 갑자기 4년 가까이나 된 ‘라면’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링크해 놨을까? 내가 김치에 빗대어 라면 이야기할 줄 알고 그런 건가, 아니면 내 잠재의식이 그 글에 영향을 받은 것일까. 말 난 김에 저녁은 흰 쌀밥의 으뜸 반찬으로 김치 아닌 라면을 택할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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