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 것이 아마 자식이 중학교 3학년이던 해 여름이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기도가 몸에 익지 않을 때여서 길게는 하지 못하고 그저 자식의 앞길을 보여주십사 구했을 뿐이다. 그해 가을에 자식이 난데없이 성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가족에게 그럴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본 일도 없고 거기서 살아남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익히 알고 있었으니 일언지하에 거절할 일이었는데, 웬일로 왜 성악이 하고 싶으냐고 묻게 되었다. 그렇게 성악을 시작한 것이 지금 유럽 오페라 무대까지 이어졌다. 생각해 보니 그것이 자식의 인생을 가르는 큰 갈림길이었는데 다행히 지혜롭게 그 과정을 지날 수 있었다.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혜인이가 중학생이 되고 혜원이가 유치원에 다닐 나이가 되도록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건 늘 한 가지이다. 좋은 친구, 좋은 이웃, 좋은 어른 만나게 해주십사.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좋은 시민으로 자라나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다시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 좋은 이웃, 좋은 어른이 되게 해주십사. 그래서 그 아이들 때문에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 갈 수 있게 해주십사 기도하고 있다.
생명보다 소중한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기도할 생각을 왜 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살아보니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건 내 몫이 아니었다. 미래는 늘 나를 가장 유익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결정하실 몫이었다는 말이다. 그동안 웅대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나름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웠지만 내 앞에 펼쳐지는 길은 늘 그것과는 무관했다.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삶이 망가져야 했을 텐데 나는 늘 심은 것보다 많은 것을 거두고 살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게 해주십사 하는 기도를 멈췄다. 그리고 그날 그날 내게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할 힘을 주십사 기도했고, 그렇게 살려고 애쓰고 있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자라고 어떤 일을 하게 되었으면 좋을지 아무 생각이 없다. 그건 어차피 사람의 몫이 아니니 말이다. 그저 늘 기도한 대로 그 아이들 때문에 세상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 그리고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 테니.
오늘 아침 혜인이가 혜원이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모습을 보니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듯싶어 매우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