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식탁> 박인식의 호기심 따라 읽기 15
웹진 <피렌체의 식탁>에 열네 번째 서평이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이집트 카이로와 카타르 도하에서 중동을 체험한 이세형 동아일보 특파원의 <중동 인사이트>를 읽었습니다. 링크는 아에 올립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클릭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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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인사이트
이세형
들녘
2024년 1월 30일
우리는 중동을 우리 시장이라고 여기는데 정작 사우디에 부임해서 보니 사우디와 수교한 이래 우리 언론의 특파원이 사우디에 주재한 일이 없었다고 해서 몹시 놀랐다. 요즘이야 해외 건설공사 수주액이 연 300억 달러를 채우기 바쁘지만 십여 년 전에는 500억 달러를 가뿐하게 넘겼다. 그때 사우디 한 곳에서만 100억 달러를 넘길 정도로 사우디는 대단한 시장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언론에 오르는 사우디 기사는 모두 외신을 베껴 쓴 것이었다. 그러니 분석 기사는 기대할 수도 없고 팩트조차 틀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중동에 우리 특파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연합뉴스가 두바이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카이로에 특파원을 두었지만 십 년 넘게 사우디에서 일하는 동안 취재하러 온 기자를 만난 건 동아일보 이세형 기자가 유일했다. 그는 기자로는 매우 드물게 카이로에서 특파원으로 주재했을 뿐 아니라 카타르 도하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중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가 중동 분석 기사를 쓰는 거의 유일한 기자라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가 전작인 <중동 라이벌리즘>에 이어 <중동 인사이트>라는 책을 내놨다. 그는 전작에서 중동을 사우디와 이란,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대결 구도로 읽어내는 신선한 시각을 선보였는데, 이번에는 중동을 총망라했다 싶을 정도로 중동의 거의 모든 이슈를 다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분량이 거의 세 배에 가까울 정도로 방대해졌다. 판형도 커지고 글자도 작아졌으니 어쩌면 그보다 더 될지도 모르겠다.
중동에 근무했다고는 했지만 부임 초기를 제외하고는 사우디 밖을 나가본 일이 거의 없어 중동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나 역시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그러다 보니 이란이 워낙은 수니파가 다수인 국가였다는 걸 몰랐다. 저자는 16세기 초 이란의 전신인 페르시아제국의 사파비 왕조가 국민이 수니파의 종주국을 자임하던 오스만제국으로 기울어지는 걸 막기 위해 시아파로 강제로 개종시켰고, 이후에도 오스만제국과 대결 구도를 유지하기 위한 명분으로 시아파 종주국을 자임했다고 설명한다.
사우디와 이란이 종파전쟁을 벌이고 있는 현장에 살면서도 사실 수니파와 시아파가 어떻게 다른지도 잘 몰랐다. 그만큼 차이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는 말이다. 그래서 두 나라의 대결을 지켜보면서 종파는 단지 명분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었다. 두 세력 간의 대결에서 종파를 걷어내도 달라질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란이 워낙 수니파가 다수인 국가였다는 저자의 말 대로라면 중동에서 이슬람은 정치 이데올로기 이상이 아니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아랍에미리트의 기술력이 중동에서 단연 발군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우주항공산업이나 첨단제조업, 4차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내면을 들여다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여간 짜임새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화성탐사선 사업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첨단과학기술부 장관이 여성이고 과학 기술 인력 중에도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여성 활동에 제약이 많은 이슬람 국가로서 놀라운 변화요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아랍에미리트는 천만을 헤아리는 인구 중 자국민이 백만을 겨우 넘길 정도로 외국인에 의존해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 큰 취약점 중 하나이다. 그런 상태에서 이슬람 관습에 얽매어 자국민의 절반인 여성의 사회 참여를 억제했더라면 아마 지금과 같은 성취를 이루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
전례 없이 겨울에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은 개최지 결정 때 로비 논란으로 시끄러웠고 경기장 건설 과정에서 불거진 학대에 가까운 외국인 노동자 처우 때문에 과연 제대로 열릴까 장담하기 어려웠다. 월드컵이 남는 장사라는데 카타르는 다른 나라에서 투입한 비용의 열 배도 넘는 2,200억 달러를 투입했으니 엄청난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카타르는 월드컵을 성공시켜 단박에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사우디가 주동이 되었던 2017년 카타르 단교 사태가 실질적인 사우디의 패배로 끝나게 되었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 싶었던 카타르의 저력이 월드컵으로 재삼 증명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월드컵에 투자했던 2,200억 달러는 낭비가 아니라 효과 만점의 홍보비였던 셈이다.
이런 카타르의 저력에 대해 저자는 에듀케이션시티를 만들고 파격적인 조건으로 해외 명문대학을 유치한 카타르의 교육 투자 성과로 해석한다. 카타르의 교육 투자는 짧은 시간 안에 자국의 역량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특히 여성 교육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회가 개방되었다 해도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을 유학 보내는 일이 쉬울 수 없는데, 카타르는 해외 명문대학을 유치함으로써 이 난관을 극복했다.
카타르는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사회의 이목을 끌고 있다. 유럽 음악계에서는 카타르에서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은퇴하는 것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현 카타르 국왕의 어머니인 무자 빈트 나세르 왕대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하는데, 카타르 교육을 한 단계 높인 해외 명문대학 유치 역시 무자 왕대비가 이끄는 카타르 재단이 중심이 되었다.
사우디의 여성 정책은 이 같은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의 정책과는 너무나 큰 격차를 보인다. 어쩌면 사우디의 시대에 뒤떨어진 여성 운전 금지 정책이나 후견인 제도가 사우디와 이들 두 나라 사이의 격차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2018년부터 여성 운전이 허용되고 후견인 제도도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두 나라의 개혁 개방이 본격화된 것이 1990년대였다는 것은 고려하면 사우디가 그 격차를 좁히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노라면 작지만 강한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가 중동의 중심이 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중동 전반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내 시선은 사우디에 관한 내용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아람코의 기술 수준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특히 책의 앞머리에서 아람코를 석유기업으로만 보지 말라며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는 주체로 평가하고 있다. 내가 책을 읽으며 특히 공감한 내용이기도 하다.
사우디는 아람코가 이끌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아람코는 사우디 경제의 중심으로 오랫동안 역할을 잘 감당해왔다. 사우디는 지금 산유국 경제를 탈피하기 위해서 국가의 명운을 걸고 산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고,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유국 경제를 탈피한다는 것은 석유화학산업 일변도의 체제를 벗어난다는 것이지 석유화학산업을 버린다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사우디가 석유화학산업을 ‘버렸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사우디 정부에서 발표하는 각종 정책을 따라가다 보면 석유화학 분야, 또는 거기서 파생되는 기술집약적인 사업에 대한 정책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사우디 정부는 중요한 사업을 추진할 때 아람코 사람을 중요 포스트에 앉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만한 역량을 가진 사람이 거기 있고, 또 거기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아람코는 석유화학산업뿐 아니라 선진 기술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 막강한 역량을 가진 기업과 사람을 활용해서 뭔가 해보겠다는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사우디 왕세자가 추진하는 비전 2030이 관광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중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저자의 평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의아한 구석이 있다. 저자는 관광산업이 산업 다각화, 국가 브랜드 향상,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분야라고 평가하고 있다. 저자는 다른 한편으로 두바이 경제 위기의 원인을 “부동산, 물류, 관광 등 주변 나라들의 경기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 산업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그렇다면 두바이에 위험 요소가 되는 관광산업이 인근의 사우디에 이점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저자가 아랍 산유국의 아이들이 외국인 보모 손에서 자라나기 때문에 아랍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지적해 놓았는데, 나는 이 현상이 특별히 한 장으로 다룰 만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사우디에는 100만에 가까운 여성 가사노동자들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가정부로서 적지 않은 아이들이 이들 손에서 자란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바로는 이로 인한 영향이 언어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고 생활 태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물론 힘들고 귀찮은 허드렛일을 외국인이 감당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영향을 미치지만 말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함께 일하던 미국인 동료도 크게 공감해 그 주제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눈 일도 있었다.
이처럼 이 책은 중동 각국의 중요 현안부터 구체적인 삶의 모습까지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동안 중동에 대해 이만큼 다룬 책이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매우 흥미롭게 읽었고 많이 배우기도 했다. 읽고 나서 하나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중동을 경험해서 저자의 글을 큰 어려움 없이 따라갔는데 중동을 잘 모르는 독자가 읽고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저자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러 나라의 서로 다른 주제들을 수시로 넘나들고 있다.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알리고 싶은 저자의 의욕은 이해되지만, 편집자가 이를 적절히 배분했더라면 훨씬 더 친절한 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더라면 필요한 부분을 찾아보기도 쉬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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