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환 아카이브
동연
2023년 6월 9일
지난 3월 퀴어퍼레이드에서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감리교단에서 이동환 목사를 출교시켰다. 6월에는 창조과학을 사이비 과학이라고 비판하고 (진화를 과학적 사실로 인정하되 이를 신의 뜻으로 해석하는) 유신진화론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성결교단이 박영식 서울신학대학 교수를 해임했다. 성소수자는 타고난 것이며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전환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의학적ㆍ임상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고, 창조과학은 이미 오래전에 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었는데 소위 종교재판에서 그것을 빌미로 목회자와 신학자를 파문한 것이다. 지금 시대에 종교재판이라는 것도 가당치 않은 일이고 미개하기 짝이 없는 이유로 목회자와 신학자를 파문한 것은 그렇지 않아도 신뢰를 잃은 기독교의 몰락을 재촉하는 상징 같아서 개신교인으로 참담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지켜보면서 삼십 년 전에 일어났던 종교재판의 자초지종이 어땠는지 궁금해졌다. 마침 변영권 목사께서 변선환 박사의 출교 원인이 된 종교다원주의에 관한 책을 나눠주신다고 해서 얼른 손을 들어 받았다. 그런데 <종교다원주의와 신학의 미래>라는 책은 변선환 박사의 회갑 기념 논문집으로 본인이 아닌 후학들의 글인데다가 너무나 학문적인 글이어서 결국은 읽기를 포기했다. 그 대신 변선환 박사의 저서나 그의 주장에 관한 책이 출간된 것이 없는지 찾다가 후학들이 그의 종교재판 30년을 회고하며 쓴 글을 모은 책이 2년 전에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변선환 박사 본인의 글은 없었지만 후학들이 그의 주장과 걸어온 길을 회고하며 쓴 40여 편의 글을 통해 그의 주장과 그에게 가해진 모욕, 그 사건이 한국 신학계뿐 아니라 기독교계 전체에 미친 해악, 그리고 그 중심에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변선환 박사 출교의 빌미가 된 것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 신학이었다. 그의 주장은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교리는 신학적인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 타 종교를 무조건 악마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개종 중심의 선교 신학은 제국주의적 발상이다. 지구촌에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현실과 그 진리성을 인정하되 종교 간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종교를 배워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새로운 신학을 정립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그의 신학적 양심에 감리교단은 ‘사탄의 종’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인 것이다.
변선환 박사의 출교 일화를 찾아 읽다가 아주 통쾌한 모습을 만났다. 그가 출교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제자 이현주 목사는 그를 찾아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도 영국 성공회에서 쫓겨났고 루터도 로마가톨릭에서 쫓겨났고 예수도 결국 희생되었다면서 오히려 스승의 출교를 축하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표현은 잘못되었으며, 자기라면 “교회 안에도 구원이 있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했다. 교회 안에서 구원을 이야기하고 그것으로 교회의 권력을 누리지만 정작 교회 안에서는 구원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니, 어쩌면 이현주 목사의 진단이 현재 한국교회를 가장 정확하게 평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변선환 박사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한 것 때문에 출교당한 사실을 알지 못하던 상태에서도 나는 과연 구원이 교회 안에만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유를 주재하신다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훨씬 더 많은 사람을 구원에서 배제한다는 게 모순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람을 고생하며 근심하게 만드는 게 본심이 아니시라는 하나님께서 그 많은 사람을 고생이나 근심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구원에서 배제 시킬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기독교만큼 배타적인 종교는 보지 못했다. 그것이 한국 기독교만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님께서 당신을 섬기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배타적이어도 괜찮다고 하실 것 같지는 않다. 오늘날 많은 비기독교인이 기독교를 더 이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신뢰하지 못할 종교로까지 여긴다. 바로 이와 같은 기독교의 배타성 때문이다.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타 종교에 대해 언제나 배타적이고 독선적이기 때문에 기독교에 귀의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개신교가 그렇게 배타적인 바탕에는 타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는 확신이 깔려있다.
2022년의 ‘기독교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독교의 호감도는 불교와 천주교의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했고 개신교의 신뢰도는 18.1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그 이유가 교회 지도자들을 포함한 교인들의 비윤리적인 삶, 교인들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언행, 불투명한 재정이었다. 한인철 연세대 교수는 이것을 한마디로 ‘삶의 결핍’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그 이유를 니케아 신조와 사도신경에서 찾고 있다.
한인철은 니케아 신조의 핵심은 예수는 본질상 하나님과 같다는 것인데 그 결과 상당수의 개신교인이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사도신경에는 예수의 탄생과 죽음 사이에 삶이 빠져있는데 이에 따라 예수 믿고 구원받는데 삶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가 “예수는 믿되 예수처럼 살지 않는” 기독교인을 만들어냈다고 개탄한다. 그는 초기 기독교는 예수의 활동이 ‘가르침의 실천’이었다고 강조한다.
“동시대의 가난은 두 가지 문제를 발생시켰다. 질병과 기아. 이에 따라 예수의 활동은 질병에 따른 고통을 치유하고 배고픈 사람과 공동식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고통의 치유와 공동식사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나누는 자리였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자리였고,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한 모형이었다.” - 한인철
그런데도 한국 개신교인들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구원은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라는 믿음으로 행함을 실천하지 못하는 데 대한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구원이 교회 밖에도 있느니 없느니 따지기에 앞서 구원의 본질이 무엇인지 숙고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채수일 크리스천 아카데미 이사장은 한국교회의 성장은 기독교의 배타적 절대성을 근거로 교회 성장을 추진해온 성장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그런 이들에게 변선환 교수의 ‘종교 대화’는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위험한 신학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정배 현장 아카데미 원장은 교회 성장을 절대 가치로 여긴 이들이 변선환의 신학을 백해무익한 것이자 성장의 방해물로 여겼으며, 교세를 키운 부흥 목사들이 교단 권력자가 되어 신학교 이사로 학문에 간섭하면서 마침내 종교재판을 열어 만장일치로 변선환을 출교시켰다고 말한다.
정경일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변선환 종교재판을 ‘교권 세력이 신학 교육기관을 장악하고 통제하게 된 징후적 사건’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것이 감리교 신학자만이 아니라 타 교단 신학자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주류 교단의 신학교 학장에다 한국기독교학회 회장까지 역임한 권위 있는 신학자를 종교 권력이 무참히 짓밟는 모습을 보면서 공포를 느낀 한국의 신학자들은 종교다원주의 탐구를 회피하고 금기시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세계 신학계에서 종교 신학, 비교 신학, 종교적 이중/다중 소속, 탈 종교적 영성, 세속적 영성 등 다양하고 새로운 신학 담론이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한국 종교 신학은 발아하지도 못한 채 얼어붙은 땅속에 잠들어 있었다. 종교 신학의 기나긴 겨울이었다.” - 정경일
변선환의 종교다원주의 신학은 감리교회 교리수호대책위원회에게 고발당해 1991년 10월 감리교 특별총회에서 “감리교 교리에 위배된다”는 평결을 받고 1992년 5월 7일 서울연회 재판위원회에서 최고형인 ‘출교’를 선고받았다. 변선환은 1995년 8월 8일 ‘한일 양국의 근대화와 종교’라는 논문을 집필하던 중 책상 위에서 그렇게 하나님 나라로 떠났다.
1927년 태어난 변선환의 탄생 백 주년이 되는 해를 기려 그의 제자들이 선생의 평전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평전을 통해 선생이 가지고 계셨던 구원에 대한 이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으로 구원에 대한 내 궁금증이 풀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