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식탁> 박인식의 호기심 따라 읽기 16
웹진 <피렌체의 식탁>에 열여섯 번째 서평이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중앙일보 기자였으며 지금은 북칼럼니스트로 자리를 잡아가는 남궁민 기자의 <오독의 즐거움>을 읽었습니다. 링크는 댓글에 올립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클릭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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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의 즐거움
남궁민
어바웃어북
2023년 8월 7일
책을 읽다 보면 그냥 읽고 넘어가기 아까운 구절이 많아 언제부턴가 메모를 남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차츰 그 메모에 내 생각도 함께 적어넣었다. 말하자면 독후감인 셈이다. 요즘 들어 독후감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고 그 자리를 서평이라는 말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서평은 말 그대로 책을 평가한다는 뜻이니 그저 내용을 따라가기도 바쁜 나 같은 이들은 감히 쓸 말이 아니어서 요즘은 이도 저도 아닌 ‘리뷰’라는 애매한 말로 눙치고 넘어간다.
몇 년 전에 <서울리뷰오브북스>라는 전문 서평지가 발간되었다. 책을 고를 때 도움이 되겠다 싶어 창간호부터 꾸준히 읽고 있지만 내용이 너무 전문적이어서 책 고르는 안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읽어야 할 책이 되었다. 신문에 실린 신간 소개는 책 고르는 지침으로 쓰기엔 너무 간략하고, 제대로 된 서평은 일부러 찾아보기 전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요즘 독서 방송이 여럿 생겨 그곳을 기웃거려 보지만, 대체로 문학 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사회과학책을 주로 읽는 내겐 별 도움이 안 된다.
벌써 몇 년 된 일이다. 경제방송에서 기자가 나와 책을 소개하는데, 책 내용뿐 아니라 그 책이 갖는 의미까지 설명해서 아주 들을 만했다. 그때 소개한 책이 <더 박스>라는 컨테이너에 관한 책이었다. 그는 컨테이너가 생겨난 유래부터 컨테이너가 가져온 물류 시스템 혁신에 대해 아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마침 나도 읽은 책이어서 그가 내용을 얼마나 함축적으로 잘 전달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서평집을 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부쩍 눈에 띄게 늘어난 서평집이 궁금했던 터라 반가운 마음으로 주문했다. 어쩌다 보니 주문한 책을 받고 몇 계절이 지나고 나서야 그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사이에 그는 경제방송에서 책을 소개하는 코너를 맡아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어 그렇게 들은 방송만 해도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그 방송에서도 처음 들은 방송에서처럼 그는 시청자들이 책을 사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게 그의 입담 때문만이 아닐 것이고, 사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책 내용이 좋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입담이 좋든 책을 고르는 안목이 탁월하든, 아무튼 서평에 있어서는 그만한 사람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글도 그렇다는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글 대부분이 사회과학 분야 책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반가웠다. 그가 다룬 46권 중 투자와 경제에 대한 것 몇 권 빼고는 평소에 관심을 두었던 분야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읽은 것이 그중 열 권 남짓 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읽어 보니 할 여력도 없고 관심도 없는 투자 관련 서적 몇 권을 빼고는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었다. 그중 단연 관심을 끄는 책으로 반독점법을 다룬 팀 우(Tim Wu)의 <빅 니스>, 플랫폼의 역할을 다룬 레이첼 보츠먼(Rachel Botsman)의 <신뢰 이동>, 그리고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 처지가 오히려 전세를 뒤집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팀 마샬(Tim Marshall)의 <지리의 힘>을 꼽을 만하다.
“반독점법이 미국 경제에 가장 성공적으로 작동한 사례로 1970년대에 있었던 AT&T 해체를 들 만하다. 중국기업이 저렇게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하고 있는데 경쟁력 있는 우리 기업을 쪼개서야 하겠느냐는 당연한 반발이 뒤따랐다. 이에 대해 저자 팀 우는 1945년 군산복합체 알코아를 해체한 사건을 소환하며 ‘전쟁 중이라도 전투기와 탱크를 생산하는 기업을 해체하는 게 진정한 미국의 정신’이라며 일갈했다.” <빅 니스>
“플랫폼은 공중으로 흩뿌려지는 평판을 별점으로 붙잡아 생산자의 자산으로 만들어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한다. 소비자에게 불신이라는 비용을 줄여줘 마음 놓고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고 생산자에게는 성실함을 자산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신뢰 이동>
“지리적인 관점에서 미국은 강대국이 될 운명처럼 보이고 두드러진 장점이 없는 한국은 국운을 펴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타고난 조건을 파악하는 건 굴복이 아니다. 이겨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 단계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박복하게 태어났지만 강대국 사이에 끼인 지정학적 한계를 오히려 지렛대 삼아 가장 큰 시장에 물건을 내다 타파는 무역 국가를 이루었다.” <지리의 힘>
사실 책 한 권을 읽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책 읽는 일에만 매달려도 이삼일은 걸리고 일과가 있는 경우에는 한 주일에 한 권 읽기도 빠듯하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읽었는데 읽고 나서 드는 느낌이 후회뿐이라면 얼마나 억울할까. 내게도 추천사를 읽고 골랐다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 책도 있었고 조악한 번역 때문에 몇 번이나 읽으려고 집어 들었다가 결국은 포기한 고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읽을 만한 책을 골라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온라인이 활성화되면서 개인이 올리는 각양각색의 리뷰가 사방에 넘친다. 요즘은 유튜브에 올라온 리뷰 영상도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늘었다.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책을 고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어서 눈에 뜨이는 대로 읽고 듣는다. 그렇게 해서 고른 책이 전체 읽은 책 중에서 절반이 넘는다. 물론 리뷰라고 모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관심이 다르고 지향이 다르니 같은 책에 대해 상반된 이해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고. 아무튼 내가 주의를 기울여 읽는 사회과학 분야 리뷰 중에서 이 책의 저자인 남궁민 기자의 리뷰는 매우 신뢰할만하다.
출간 소식을 듣고 그가 서평집에 <오독의 즐거움>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가 궁금했다. 책을 잘못 읽었다는 게 자랑일 수 없으니 제목에서 말하는 오독은 의도적이었을 것이고, 자신도 대가들의 책을 의도적으로 비틀어 읽었다고 설명한 일이 있다. 하지만 그중 내가 읽었던 책에 대한 리뷰에서는 딱히 그럴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 정도 책을 일부러 찾아 읽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공통으로 가질 수 있는 느낌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할까. 물론 내가 읽지 않은 책이 훨씬 많으니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그가 첫 번째 책 방송에서 <더 박스>를 소개할 때 잠시 다른 책인가 했다. 읽은 지 5년도 더 된 책이었기 때문이다. 책 방송이라면 으레 신간을 소개하기 마련인데 설마 그렇게 오래전에 발간된 책을 소개하는가 싶어서였다. 그는 이 책에서도 <더 박스>를 제일 첫머리에 올려놨다. 그것뿐 아니라 그가 소개한 책 상당수가 발간된 지 수삼 년이 지난, 신간이라고 할 수 없는 책들이다. 사실 사회과학 분야에서 그 시간이면 얼마든 이론이 반박될 수 있는 기간이 아닌가. 독자로서 그 책이 주장한 내용의 유효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에서 주장한 내용이 지금도 유효한지 언급하는 것은 어땠을까? 지금도 유효하다고 판단했으니 목록에 올렸을 것이고, 굳이 그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저자가 나와 같은 고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리뷰를 쓰다 보면 본문을 인용하게 마련인데 나는 그럴 때 인용 부호를 써서 구분할 것인지 글에 녹여 낼 것인지 망설인 경우가 수없이 많다. 단지 책을 소개하는 것뿐이라면 따로 인용 표시를 하지 않아도 저자의 글로 이해하겠지만 거기에 내 의견이 들어가면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일이 인용 부분을 표시하자니 글이 깔끔하지 못하고. 이 책에서는 인용 부분과 저자의 생각을 구분하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어디까지가 원저자의 생각이고 어디부터가 리뷰어의 생각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물론 책을 읽으면 해결될 일이지만.
저자인 남궁민 기자가 젊다는 것은 알았는데 이 글을 쓰며 확인해보니 짐작보다도 더 젊었다. 이제 삼십 초반. 그런 젊은 기자가 썼다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이 책의 넓이며 깊이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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