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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ug 25. 2024

K를 팝니다

박재영

난다

2024년 6월 30일     


해외법인에 근무하는 동안 몇 차례 손님을 모시고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다. 일정 마지막 날에 관광 순서를 넣어놓기는 했는데 막상 시간이 되면 어디로 안내해야 할지 막연했다. 짧은 시간에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을 남길만한 곳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그것이 손님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렵게 고른 곳에 찾아간들 거기서 뭘 설명하고 뭘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명할 만큼 아는 것이 없다는 것도 당황스러웠고.     


그럴 때마다 좋은 안내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이 가보고 싶을 만한 곳을 골라 그곳을 소개하되 그것을 구수한 이야기로 엮을 수 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싶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저 의사소통이나 할 수 있는 정도라면 외국인에게 설명할 때 적절한 단어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 그런 팁도 함께 적어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독서방송을 진행하는 저자의 북펀딩에에 참여하면서 책의 주제가 여행이 아닐까 싶기는 했다. 여행을 즐겨하는 저자의 성향도 그렇고 <여행 준비의 기술>이라는 저자의 전작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책이 육백 쪽을 훌쩍 넘는 ‘벽돌 책’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백 쪽이 넘어가는 책은 읽지 않는다고 수도 없이 천명한 사람이 바로 저자였으니 말이다. 더구나 책의 절반은 영어였다.     


저자는 어느 날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찾아보니 한국 여행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영어로 된 책은 열 권이 채 되지 않았고, 심지어 한국인이 쓴 책은 하나도 없었다. 그중 유명하다는 가이드북은 정보는 많지만 이야기가 없었고, 그래서 저자는 구글링만으로는 절대 파악할 수 없는 한국의 진면목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외국인들이 읽으라는 책이니 영어로 쓰는 것이 당연한데, 아쉽게도 일정이 맞는 번역가를 구하지 못해 직접 번역에 도전한다. 물론 전체를 저자가 번역한 것은 아니고 번역기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DeepL과 ChatGPT를 이용했다지만, 수많은 반복 작업을 거쳐 완성도 있는 문장을 만들어낸 것은 저자의 능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쓸 때 나타나는 배배 비튼 문장도 보이지 않아 쉽게 읽을 수 있었는데, 이 역시 저자의 능력에 기인한 것이다.     


저자는 한국을 소개하는 내용을 스무 개 주제로 정리해 주제별 내용을 먼저 한글로 적고 이어서 영어로 적었다. 처음에는 한영 대조 방식으로 편집할 생각도 했지만 지금처럼 주제별로 한글판과 영어판을 순차적으로 배치해 한글과 영어를 비교해 읽는데 불편하지 않게 만들었다. 이 정도라면 한글판과 영어판을 나누어 만들만도 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이 낯선 외국인뿐 아니라 한국인 역시 이 책의 독자로 상정했기 때문에 그랬다고 말한다. 당연한 일이다. 외국인에게 우리나라를 소개하는데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도 그렇고, 외국인 눈에 비친 우리 모습이 궁금한 사람에게도 필요하고, 내용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니 왜 굳이 한국 독자를 외면하겠는가. 요즘은 한글을 이해하는 외국인도 적지 않으니 그들에게 한글 텍스트를 접할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점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저자는 책 머리에서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소개한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책을 국내에서 출판하는 것은 이 책을 읽은 많은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한국을 설명하는 달인이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을 다 아는 건 아니다. 더구나 그것을 영어로 옮기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저자는 이 책이 외국인들이 던지는 한국에 대한 질문에 훨씬 더 풍부한 대답을 할 수 있는 한국인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그렇다. 그간 외국인에게 소개한 한국이 평면적이었다면 거기에 스토리를 입힌 이 책은 한국을 좀 더 입체적으로 그리고 대답 또한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한 끼만 먹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삼겹살을 권하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말하자면 삼겹살이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것이자 더 나아가서 한국 문화를 대표한다는 말인데, 나로서는 썩 동의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의문은 불과 한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저자는 삼겹살 이야기를 단지 음식 이야기로 묶어두지 않는다. 음식점을 찾을 때 삼겹살을 영어로 표시한 곳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심지어 삼겹살이라는 단어를 한글로도 표시하지 않은 곳이 많다면서 “지방과 살코기가 층을 이루고 있는듯한 모양의 돼지고기 사진이 보이면 제대로 찾은 것”이라며 외국인의 눈으로 관찰하지 않으면 깨달을 수조차 없는 답답함에 대해 명쾌하게 답변을 내놓는다. 어디 그것뿐인가. 음식점에 들어가 자리 잡고 앉으면 메뉴판도 주지 않고 뭘 먹을지 물어보니 그럴 때는 당황하지 말고 ‘삼겹살’이라고 말하면서 인원수만큼 손가락을 펼치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주라는 술’을 주문하면 되는데 그럴 때 종업원이 십중팔구 “무슨 소주?”라는 질문을 던지겠지만 못 알아들어도 문제는 없으니 그냥 어깨만 으쓱하면 적당히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야기는 한국인의 주량으로 넘어간다. 한국에서 주량을 이야기할 때 다짜고짜 그저 몇 병이라고만 말할 때 기준이 되는 술은 소주이며, 한국 남성에게 주량은 일종의 특기이자 경쟁력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자기 주량보다 부풀리는 게 흔하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이 이야기의 주제는 삼겹살에 그치지 않고 한국 음식 이야기를 뛰어넘어 한국 사회사와 문화사로 확장되어 나가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글쓰기는 이처럼 삼겹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책 모두가 독특하고 참신하지만 그중 압권이라면 단연 10장 ‘오직 한국에만, 오직 한국인만’을 꼽을만하다. 이 장에서 저자는 한국의 출산 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산모들은 출산 직후 미역국이라는 음식을 먹고, 그래서 한국인들은 생일날 반드시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해 “미역국도 못 먹었어”라는 말은 한국에서 ‘쓸쓸한 생일, 제대로 축하받지 못한 생일’이라는 관용적 표현으로 쓰인다는 데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핵가족 시대가 되면서 산후조리원이 등장했고, 산부인과 클리닉에서 출발해 지금은 여러 개의 대형 병원과 의대와 관련 기업까지 거느린 차병원 그룹의 성공 비결이 산모에게 제공한 ‘맛있는 미역국’이라는 전설 같은 이야기까지 확장된다. 어디 그것뿐인가. 한국에서는 시험을 앞두고 절대로 미역국을 먹지 않는데, 이는 미역국의 미끈거리는 특징이 ‘미끄러지다’는 단어를 연상하기 때문이라며 그 대신 잘 들러붙는 음식인 찹쌀떡이나 엿을 먹는다는 이야기도 풀어놓는다.     


‘산후조리’에서 출발한 ‘오직 한국에만’ 있는 문화적 특징은 결혼식과 장례식으로까지 이어진다. 저자는 한국에서는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참석하는 이들이 축하나 위로의 뜻으로 50달러나 100달러를 전한다는 이야기며, 결혼식에 참석하는 손님이 너무 적은 것을 체면 깎이는 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는 한국을 소개하는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처럼 예상하기 어려운 저자의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감탄을 연발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 영화 <기생충>에서 배우 박소담이 과거 ‘결혼식 하객 알바’를 많이 했다는 대사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신함과 독특함보다는 허를 찔린 것 같은 느낌이 더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야구장에서 반드시 즐겨야 하는 치맥과 잠실야구장 지하철역의 무인 보관함 이야기를 거쳐 지하철 푸시맨과 노약자석과 임산부석, 이는 다시 버스와 환승 시스템과 경로우대권으로 종횡무진 이어진다. 저자의 이런 글쓰기는 마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기차놀이 같기도 하고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장소팔-고춘자 만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스토리가 있고, 그래서 재미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는 해도 648쪽이나 되는 부피는 가이드북으로 쓰기에는 몹시 부담스럽다. 마음 같아서는 한영 합본 말고도 한글판 영문판 따로 내라고 하고 싶지만 땅 파서 출판하는 것도 아니니 그저 영문판만이라도 하나 더 내라고 할까 싶다. 그렇다면 내가 몇 권은 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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