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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ug 29. 2024

레이먼드 카버

고영범

북21아르테

2019년 11월 6일


레이먼드 카버라는 작가의 이름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소설가이고, 먹고 살기 바빠서 장편보다는 단편을 주로 썼고, 한국에 독자가 꽤 많다고 했다. 독서 방송이나 나름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름을 꽤 들어보기는 했는데 정작 그의 소설은 읽어보지 않았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과 시를 통해, 그리고 그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그의 삶을 정리한 이 책을 만난 것은 레이먼드 카버가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이 책의 저자인 고영범 선생과 인연 때문이었다.


저자와 인연은 그가 쓴 <서교동에서 죽다>를 읽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칭 ‘워싱턴 촌뜨기’ 정재욱 선생의 추천으로 소설 <서교동에서 죽다>를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 회사 포털에 저자가 각색한 연극 <서교동에서 죽다> 티켓을 신청받는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우리 회사에서 수여하는 ‘벽산 희곡상’ 2017년 수상자인 저자의 활동을 응원하는 행사라고 했다. 아내와 연극을 보는데 단지 각색으로 보기에는 내용이 상당히 달랐다. 그 무렵 저자와 인연이 닿게 되었고, 이 작품이 워낙 소설과 희곡 두 버전으로 쓰인 것이라는 설명을 듣게 되었다.


저자와 관심사가 비슷해 그 후로 이따금 이야기를 나누고 지냈다. 지난 6월 서울에서 잠깐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주고받은 건 이야기가 아니라 술잔뿐이었다. 이 나이대의 남자들이 다 그러하듯. 그래서 오히려 동질감을 느꼈다. (나이대를 싸잡아 이야기한 게 고 선생께는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보다는 젊으시니.)


불과 쉰이라는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레이먼드 카버는 지금 알려진 명성만큼 누리지 못했다. 마흔을 갓 넘어서 대학교수로 부임하면서 소설가로서 전성기를 맞았지만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고 아내와 결별하느라 정작 원하던 삶을 누린 건 죽기 전 몇 년이 전부였다. 저자는 2012년 카버의 평전을 번역해 한국 독자에게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소개했다. 카버는 수많은 단편 외에도 상당히 많은 시를 남겼는데, 저자는 2022년 그의 시집인 <우리 모두>를 번역하고 연이은 2024년에는 그의 인터뷰집인 <레이먼드 카버의 말>을 번역해 소개했다. 하지만 정작 카버의 단편은 번역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저자의 정체성을 생각한다면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22년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풋내기들>이라는 카버의 단편집은 역자가 소개되어 있지 않던데, 그게 저자의 번역인지는 모르겠다.)


저자는 자기가 번역해 한국 독자에게 소개한 카버의 평전과 인터뷰집과 시집을 비롯해 그간 출간된 그의 소설을 따라가며 카버의 흔적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렇게 추적한 흔적을 현장에서 확인한다. 그를 위해 카버가 작가로서 전성기를 누렸던 뉴욕의 시라큐스 대학을 비롯해 그의 흔적이 주로 남아있는 미국 서부의 워싱턴주와 캘리포니아주 여러 곳을 직접 방문하고, 그렇게 해서 카버의 문학세계로 흡수된 그의 삶을 하나하나 밝혀나간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카버의 삶을 밝혀나간 바탕이 된 것이 바로 그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나는 소설가들의 능력은 문장보다는 줄거리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왔다. 문장은 자꾸 쓰고 다듬다 보면 나아질 수 있지만 없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재능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로 여러 소설을 읽으면서 작품세계는 늘 작가의 삶 근처에서 맴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작가가 살아온 환경이나 지역이나 세대를 벗어난 작품이 드물더라는 말이다. 그래서 저자가 작품을 통해 카버의 삶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고.


오늘 독서방송을 듣는데 어느 작가가 나와 자기 소설에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실명이라고 했다. 소설을 위해 만든 이름은 어딘가 인위적인 냄새가 나고 그렇게 끌어가는 이야기가 자연스러울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신뢰할 만한 주장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적어도 공감할 수는 있었다. 없던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것, 창작이라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말이 아닐까? 실망스럽다는 말은 아니고. 오히려 그런 사람 냄새가 반갑더라.


카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조력자가 두 사람 있었다. 하나는 문학적 멘토였던 존 가드너 교수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다뤄 온 고든 리시 편집자였다.


“카버는 첫 학기에 가드너에게서 창작개론 수업을 들었는데, 그 수업의 과제로 제출한 단편소설이나 장편소설 한 챕터를 가지고 한 학기 동안 가드너의 마음에 들 때까지 끊임없이 수정해야 했다. 가드너는 그 끝없는 수정 과정에서 학생이 ‘자기가 한 이야기를 거듭 응시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깨닫게 되기’를 원했다. 가드너는 끊임없는 수정이 가진 힘을 믿었고 어느 수준에 있든 관계없이 수정이야말로 작가의 발전 과정에서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가드너는 카버가 소설을 제출하면 문장 단어부터 시작해 문장부호에 이르기까지 수정해야 할 사항을 빼곡하게 적어 돌려주었다. 가드너는 토론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그대로 지켜야 하는 건 어떤 것인지, 토론해 볼 수 있는 건 어떤 것인지도 명확히 구분했다.”


카버는 훗날 이 과정에 대해 그의 비평이 항상 자기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치밀하고 더 분에 넘치는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그 선생에 그 제자가 아닐 수 없다. 열성을 다해 지도한 선생이나 그것을 분에 넘치는 것이라고 받아들인 제자 모두 큰 복을 받은 게 아닐까.


카버는 1967년 고든 리시를 만나 사망하기 5년 전인 1983년까지 작가와 편집자로 동행한다. 소설가로 이름이 알려진 기간 대부분 동안 카버의 소설은 리시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카버는 리시의 통제 속에 갇혀있었다.


“카버가 원고를 보내고 한 달 뒤에 리시가 편집본을 보내왔다. 원고에서 불필요한 지방을 걷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구조를 복잡하게 만드는 듯한 잔뼈와 거기에 붙은 근육과 살까지 통째로 들어낸 것이다. 리시는 13편 중 몇 편의 제목을 바꾸고, 본문의 약 40퍼센트를 발라내고, 10편은 심지어 결말까지 바꿔 사실상 재창작이나 다름없는 편집본을 만든 것이다.”


책을 읽는 데서 지나 책 만드는 데 관심을 두게 되면서 책은 편집자가 저자의 멱살을 끌고 가며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그래서 번역하면서, 또 내 책을 쓰면서 가능하면 편집자의 의견을 따르리라 마음먹었다. 번역서는 새로 쓰는 것과 영 다르기 때문인지 편집자와 별다른 마찰 없이 잘 끝냈다. 내 책을 쓰는 것은 나 자신도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편집자에게 책 제목과 배열을 책임져달라고 자청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면 내 글을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잘 끝나기는 했어도 나 역시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편집자가 글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보낸 것이었다. 지적이 타당하지도 않았고, 설령 타당하다고 해도 팔리는 책을 만들자고 내 글을 버릴 생각은 없어서 잠깐 그만둘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편집자가 바뀌어 잘 마무리하기는 했다.


아쉽게도 내 책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편집자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받아들였다면 그건 어차피 내 글이 아니고, 내 글이 아닌 것으로 독자들의 선택을 받는 게 내겐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시가 재창작이나 다름없이 만들어 놓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카버는 이 책으로 ‘미니멀리스트’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 후로 카버는 소설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저자는 카버가 리시의 편집본에 격렬하게 저항하고 애절하게 호소도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훗날 편집본을 밀어내고 정본을 회복한 것을 보면 카버는 오히려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어찌 되었든 결국에는 카버가 동의했으니 출간되었을 것이고 그 수혜를 입은 것도 카버이기는 하다. 하지만 카버는 훗날 인터뷰에서 ‘미니멀리스트’라는 별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이것이 “리시의 문학관을 향한 공격이었고 여태까지 리시가 해온 역할과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편집자 리시가 카바를 배은망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리시는 그것이 자기 것이고 백번 양보해도 카버와 공동작업한 결과물이라고 여겼다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리시의 주장이 옳은 것일까? 카버의 소설이 유명해진 것이 편집자의 노력 때문이라고 확신할 근거는 무엇이며, 그렇게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왜 공동 저작으로 발표하지 않았는지도 궁금하다. 아무튼 카버는 그런 리시의 편집에 동의했고, 리시의 손을 거친 그의 문장과 구조가 그의 스타일이 되었고, 리시와 결별한 후에도 그것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카버는 소설의 구조와 문장을 자기 것으로 여겼을까?


저자는 카버의 소설뿐 아니라 카버의 삶을 재구성 해내는 자료로 그가 발표한 수많은 시를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다. 저자가 곳곳에 인용한 카버의 시를 보면서 한편으로 의아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소설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지만 시는 더욱 그렇다. 그런 문외한의 눈에 그저 낙서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한 글이 ‘시’라는 이름을 달고 발표되는 것을 보면 과연 시의 정의가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시 한 편을 놓고 우주와 철학을 끌어들여 의미를 부여하고 극찬하는 글이 적지 않은데, 그런 글을 볼 때마다 그들만의 세상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하게 된다. 내 눈엔 카버의 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저자는 이 책에서 카버의 시를 그의 삶을 재구성하는 텍스트로 사용했을 뿐 그에 대한 평가는 내리지 않고 있다. 혹시 저자가 번역한 카버의 시집 <우리 모두>에는 저자의 평가가 담겨있지 않을까?


저자가 발표한 레이먼드 카버에 관한 책은 하나같이 ‘벽돌책’이다. 2012년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이 960쪽, 2022년 시집 <우리 모두>가 640쪽, 올해 발표한 인터뷰집 <레이먼드 카버의 말>이 508쪽. 그리고 카버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의 삶을 재구성한 이 책까지 저자가 카버에게 기울인 노력을 놀랄 만하다. 카버에 대한 입문서는 읽은 셈이니 이제 카버의 소설을 읽을 차례이다. 저자가 심혈을 기울일 만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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