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식탁> 박인식의 호기심 따라 읽기 17
웹진 <피렌체의 식탁>에 열일곱 번째 서평이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임성수 미국 캘빈대학교 경제학 교수, 한국석유공사를 거쳐 외교부에서 근무하는 손원호 공저인 <중동을 보면 미래 경제가 보인다>를 읽었습니다. 국내에서 발간된 책 중에 중동 경제에 대해 가장 잘 정리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링크는 댓글에 올립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클릭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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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을 보면 미래 경제가 보인다
임성수 손원호
시그마북스
2022년 9월 1일
중동의 무게 중심은 걸프 산유국에 있고 걸프 산유국의 중심에는 세 무함마드가 있다. UAE의 토후국인 아부다비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MBZ)와 두바이의 무함마드 빈 라시드(MBR), 그리고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MBS)이다. 세 사람 모두 석유로 일어선 나라의 통치자로서 석유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산업다각화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은 관계가 다소 소원해졌지만 MBS는 왕세자에 오르기 이전부터 MBZ를 멘토로 삼아 수시로 조언을 얻었을 뿐 아니라 MBZ와 MBR이 일구어낸 UAE의 성공신화를 재현하기 위해 ‘비전 2030’을 주축 삼아 국가개조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우디가 추진하는 산업다각화정책의 포트폴리오가 대부분 UAE와 겹친다.
이와 같이 걸프 산유국이 산업다각화를 통해 석유경제를 벗어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과정이나 경제 전환에 관련된 데이터를 찾기도 어렵고, 찾는다고 해도 각각의 데이터가 어떤 배경이나 조건에서 도출되었으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다. 더구나 국내에 중동 시장 연구자도 드물어서 궁금한 것이 있어도 마땅히 물어볼 곳도 없다.
그런 가운데 개발도상국 경제를 연구하는 학자가 중동 경제에 대한 책을 발간했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 읽었다. 경제학자인 저자 임성수는 미국 연방준비은행에서 근무했고 두바이 아메리칸대학을 거쳐 현재 미국 캘빈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로 있다. 공저자인 손원호는 아랍어를 전공하고 한국석유공사에서 중동 석유개발 관련 업무를, 이라크 한국대사관에서 석유개발협력 업무를 담당했고, 현재 외교부 중동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더구나 UAE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두 저자 모두 중동 경험을 갖춘 연구자들이라는 말이다.
이들에 따르면 경제지표 기준으로 봐도 UAE는 산유국 경제체제를 벗어난 지 이미 오래 되었다. 2020년 UAE의 GDP 중 비석유부문의 비중은 80%가 넘었다. UAE의 일곱 토후국 중 아부다비 다음으로 꼽히는 두바이는 2021년 비석유부문의 비중이 98%에 이르렀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UAE의 주력산업은 에너지ㆍ항공ㆍ관광ㆍ부동산과 같은 경기민감 산업이었던 것이 이미 우주항공산업ㆍ첨단제조업ㆍ4차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다. 산업다각화의 일환으로 우주항공산업을 선택한 것이 다소 뜬금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산업이 방송ㆍ통신ㆍ기상ㆍ항공/선박운항과 같은 분야에 걸쳐 자동차산업의 3배에 달하는 파급효과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들의 혜안과 실행력은 감탄할만하다. 실제로 UAE는 2006년 우주센터를 설립하고 2021년 2월 화성탐사선 ‘아말’을 화성궤도에 진입시켰다.
이를 감안하면 사우디의 MBS가 추진하는 ‘네옴시티’가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양국 간에는 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경제력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사우디 ‘비전 2030’의 재원은 국부펀드인 공공투자기금(PIF)으로 충당한다고 발표하고 있는데, 기금의 규모나 기금을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은 UAE의 국부펀드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우선 PIF의 자산규모는 7,760억 달러인데 비해 UAE는 아부다비 투자청(ADIA)을 비롯한 4개 펀드에 1조5,685억 달러로 사우디의 2배가 넘는다.(국부펀드연구소 SWFI 실시간 자료 반영) 사우디 PIF보다 규모가 큰 UAE의 ADIA는 원유의 잉여수익이 재원으로 투입될 뿐 아니라 기금이 미국이나 유럽의 안전자산에 투자되어 있다. 반면 PIF는 정부 출자나 아람코 매각으로 기금을 충당하기 때문에 적자재정이 계속되고 있는 사우디로서는 외부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최근 수년간 전망이 불투명한 스포츠 산업에 과도하게 투자하고 있어 재정이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와 UAE는 경제력의 체급이 다르다. 석유부존량이나 면적이나 인구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자국민 인구는 사우디가 UAE의 20배에 가깝다. 그래서 전체 투자여력은 당연히 사우디가 앞설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저자들이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서술의 맥락을 살펴보면 석유자원이 매우 적었던 두바이가 생존을 위해 1985년 자유무역지대를 개설하고 혁신과 개방을 추구한 것이 UAE 국부의 대부분을 쥐고 있는 아부다비에 자극이 되어 선순환이 일어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 후로 이러한 개방정책은 아랍민족과 견원지간인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FTA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념을 버리고 실리를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사우디는 와하비즘에 묶여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사우디는 살만 국왕이 즉위하고 MBS가 실질적인 통치자로 나서면서 이슬람의 빗장을 하나씩 풀고 있다. MBS는 와하비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쿠란을 해석하는 파트와 권한이 국왕에게 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그가 국가의 명운 걸고 추진하는 ‘네옴시티’는 별도 법령으로 움직이는 ‘국가 안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MBS는 왕세자에 오른 2017년 11월 비밀리에 이스라엘을 방문했고 2020년 11월에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가 사우디 ‘네옴시티’에서 MBS를 만났다. 비록 한 발짝 뒤지기는 했지만 사우디가 UAE를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우디가 UAE의 성공신화를 재현할 수 있을까?
사우디는 2017년 리야드에서 개최한 미래투자이니셔티브에서 ‘네옴시티’ 건설계획을 발표한 이래 하루가 멀다 하고 거대사업계획을 발표했다. 문제는 ‘네옴시티’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업이 관광산업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항공산업, 스포츠산업이라는 점이다. ‘네옴시티’에도 ‘트로제나’와 ‘신달라’ 같은 리조트가 들어있을 뿐 아니라 최근 발표되는 ‘네옴시티’의 구체적인 사업도 하나같이 관광산업이다. 이런 면에서 선도적이었던 UAE가 중동에서 코로나19로 가장 많이 타격을 받은 나라로 꼽힌다는 것은 사우디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지표가 될 만하다.
사우디가 산업다각화를 추구한다고 하면서 그것이 관광산업에 집중되어 있는 건 의아한 일이다. 이미 두바이ㆍ아부다비ㆍ카타르가 선점하고 있는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으니 그들과 경쟁해야 할 것이고, 사우디 안에서도 관광지끼리 경쟁해야 한다. 더구나 관광산업은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 터지면 만회할 길도 없다. 이미 UAE 사례에서 입증된 것처럼. 어디 그것뿐인가. 중동화약고의 오명을 극복하는 것도 큰 숙제이다. 당장 가자지구 전쟁으로 정정이 불안한 상태에서 관광산업이 주축이 되는 사우디 거대사업에 투자자를 확보하는 일도 차질이 우려된다.
게다가 사우디 재무부는 지난 연말에 발표한 2024년 예산에서 2023년 재정적자(예상)에 이어 2026년까지 재정적자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이 일어났는데도 유가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큰 이유이다. 그래서 사우디가 시장점유율을 포기해가며 감산을 무릅썼는데도 유가는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예측조차 뛰어넘는 미국의 셰일오일 증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사우디는 저유가와 감산과 시장점유율 축소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데 셰일오일은 구조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으니 이러한 판세는 좀처럼 뒤집어 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영영 뒤집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연장 170km의 단일 건물인 ‘더 라인’이 ‘네옴시티’의 중심으로 부각되었지만 워낙은 산업지구인 ‘옥사곤’이 중심이고 그의 거주시설로 ‘더 라인’을 계획했다는 주장도 있다. ‘옥사곤’은 생명공학ㆍ식품공학ㆍ로봇 연구 및 산업시설을 유치해 세계적인 과학허브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계획대로라면 관광산업 일변도의 리스크도 줄이고 한정된 시장을 놓고 이웃 국가들과 경쟁할 일도 피할 수 있을 것인데.
매사를 사우디에 초점을 맞추는 필자에겐 내용 중 사우디와 UAE 관련부분만 눈에 들어오지만 이 책에서는 나머지 걸프협력회의(GCC) 국가인 카타르ㆍ쿠웨이트ㆍ오만ㆍ바레인과 바다 건너 이란의 경제구조도 함께 다루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이 겨냥할 시장도 국가별로 정리해놓았다. 인용한 데이터 중 일부는 최신 정보로 업데이트하였으나 대부분 2~3년 전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것이 경향을 파악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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