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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Sep 10. 2024

중국필패

야성 황

박누리 옮김

생각의힘

2024년 8월 16일


책을 읽고 나서 독서목록엔 올렸는데 이렇게 읽은 걸 읽었다고 해야 하나 싶기는 하다. 건너뛴 페이지는 없었지만 뒤쪽으로 가면서는 건성으로 읽다시피 했다. 처음부터 쉽게 읽을 수 있을 책이라고 생각하고 덤벼든 건 아니다. 역자는 번역을 마치고 이 책이 “제목 그대로 시험ㆍ독재ㆍ안정ㆍ기술이 어떻게 중국을 대국으로 만들었고, 지금 어떻게 중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 아주 뼈를 부수는 책”이며, “중국을 대한민국으로 치환해도 책이 술술 읽히는 마법과 같은 책”이라고 기대감을 표현한 바 있는데, 그 짧은 글로도 이 책이 결코 쉽게 읽힐 책이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문구에 끌려 읽게 되기는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분석적인 책은 사백 쪽이 넘으면 덤벼들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잘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삼사백 쪽까지는 그런대로 쫓아가겠지만 그 분량을 넘어서면 처음과 같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책을 읽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은 중국의 ‘현재’를 분석해 ‘미래’를 내다보자는 책임에도 멀리는 기원전 중국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갈 뿐 아니라 동서양 역사를 망라하는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더욱 그랬다. 그렇기는 해도 만연체로 쓰여있는 이 책을 “쉽게 더 쉽게, 매끄럽게 더 매끄럽게” 번역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쓴 역자 덕분에 건성으로라도 마지막까지 읽을 수 있었다.


“시험ㆍ독재ㆍ안정ㆍ기술은 어떻게 중국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왜 쇠퇴의 원인이 되는가”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네 가지 관점에서 중국을 해부하고 있다. 쉽지 않은 내용에 방대한 분량이기는 해도 첫 번째 주제인 ‘시험’은 기대와 집중력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읽은 데다가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서 즐겁게 읽었다.


저자는 중국의 통치자들이 나라를 이끌어갈 관료들을 뽑을 때 육체적 능력보다 정신적 능력을 우선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기준이 필요했고, 그것이 시험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국가가 과거시험으로 대표되는 관료 선발시험을 주도하게 되자 최고의 인적자본을 국가가 독점하게 되었고, 그래서 국가가 아닌 다른 집단에서는 인재를 선발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말하자면 사회를 희생하면서 힘의 균형을 국가 쪽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왕조시대 중국에서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과거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얻기 위해 몇 번이나 예비시험을 치러야 했고, 그것을 위해 40만 개의 글자와 구문을 암기해야 했다. 명나라에서는 정기적으로 이삼백만 명이 과거시험에 응시했다. 그렇게 해서 최종 합격해 진사를 제수받은 이들은 400명에 불과했다. 많지는 않아도 아무튼 능력 있는 이들에게 과거시험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어준 것이다.


그런데 이삼백만 명에서 고작 400명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을 과연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여길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평범한 명나라 백성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반복해서 도전하면 결국에는 말단직에라도 오를 수 있으리라 믿게 되었으며, 국가로서는 이를 통해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고 나머지는 과거급제의 영광이라는 환상을 추구하는데 영원히 묶어 두었다”고 말한다. 그랬으니 나머지 백성들은 국가에 반기를 들 생각을 하거나 이를 행동으로 옮길 여유가 없었다. 국가는 관료를 뽑고 백성 대부분은 불만을 표출할 기회조차 박탈하는, 말하자면 ‘도랑 치고 가재 잡은’ 격이 된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국가의 전략을 ‘아편’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과거시험으로 인한 폐해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극심한 경쟁을 유발했고, 협업은 부정행위로 간주해 가혹하게 처벌했다. 표준화된 시험은 표준화된 답을 요구할 수밖에 없으니 이 과정에서 이질성은 철저하게 제거되었다. 복잡하고 이질적인 사회를 성공적으로 헤쳐 나가는 데 필수적인 비판적 사고나 다양성 같은 정신적 특성을 배제한 것이다. 게다가 외형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였지만 실제로는 극소수의 경우를 뺀 모든 이동의 사다리를 치워버려 반 이동성 사회가 되어버렸다. 또한 백성들이 권위에 의존하고 권위를 숭앙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과거시험은 청나라에 들어와 후퇴한다. 청나라 후기로 갈수록 황제들이 과거시험을 경시했는데, 저자는 여기에는 과거시험이 만주족에게 불리하고 한족에게 유리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로 인해 과거 급제자가 줄고 과거시험의 영향력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문제는 그동안 유일한 신분 상승의 기회로 여겼던 과거시험이라는 통로가 좁아지면서 사회적 이동성이 위축되었고 그로 인한 분노가 백성들 사이에서 깊고 넓게 퍼져나갔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자는 결국 이것이 백성들의 좌절로 이어지고 다시 ‘태평천국의 난’으로 이어져 청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저자의 논지는 그동안 백성들에게 아편으로 작용했던 과거시험의 신화가 깨지면서 멸망으로 이어졌다는 것인데, 앞에서 의문을 제기했던 것처럼 ‘이삼백만 명에서 고작 400명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을 과연 백성들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여긴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밖에도 몇 가지 의아한 점이 있다. 우리나라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과거시험이 형태를 바꿔가며 오랫동안 존속되었다. 과거시험이야말로 능력주의의 표본과도 같은 것인데, 나는 오래전부터 과연 과거시험이 응시자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과거시험에 때로 정책이 출제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실무와는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는 문제들이었는데, 그런 시험을 통과한 이들이 어떻게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이 끌어가는 나라였는데도 수백 년을 존속했으니 오히려 그것이 역설적으로 과거시험이 인재를 판별하는 적절한 도구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저자도 중국이 육체적 능력보다는 정신적 능력을 우선했고, 그래서 문인 유형의 인적자본에 집착했다고 말한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 군인들은 늘 학자 관료보다 한 단계 열등한 지위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왕조시대 대부분 문신이 무신 보다 우대받지 않았나. 그런데 무력을 지닌 무신이 왜 그런 상황에서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 문신에게 굴종하고 살았을까? 무엇이 그런 구도가 유지될 수 있게 만들었을까? 물론 고려 때 무신의 난이 있기는 했지만, 조선시대에는 그런 일이 없지 않았나. 아쉽게도 이 책을 읽어가면서도 그를 풀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저자는 이에 반해 무력을 숭상한 로마제국은 정복 전쟁에서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내정의 평화는 희생했다고 말한다. 무가 문에 예속되었던 중국 왕조들은 이와 같은 강력한 서양 군대와 덜 발전한 유목 민족과 전투에서 패배했고.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중국 왕조는 로마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엘리트 지배계층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해 장수할 수 있었는데, 그 핵심 요인은 인재 채용이었다고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전투에서 패배한 중국 왕조가 로마제국보다 장수했다는 것인데, 읽기 바빴던 나로서는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혹시 “로마제국은 중국의 국가 주도 관료 채용시험만큼 강력한 규모 확장 도구를 발명하지 못했고 치열한 이질성 때문에 모든 통일운동이 실패로 돌아갔다. 주권국들의 집합체인 오늘날 유럽은 이런 규모 확장 실패의 유산이다”라는 구절이 그에 대한 설명이었을까? 그렇기는 해도 지금 서구사회가 중국에 비교우위를 보이는 것은 그들이 중국과 달리 “하나의 공무원 조직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군사 공무원ㆍ외교 공무원ㆍ삼림 공무원 등 다양한 공무원 조직이 존재했고 이러한 조직들은 귀중한 인적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정계ㆍ대학ㆍ기업 등 다른 영역들과 경쟁”했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말해 ‘이질성의 우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집중력 부족으로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며 읽지는 못했지만 읽다 보니 네 부분으로 나누어놓은 내용이 실은 교육 하나로 모두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자도 “중국의 정치 체제를 시험ㆍ독재ㆍ안정ㆍ기술이라는 4개의 프레임으로 분석한 책. 그중에서도 첫 번째 요소인 시험, 즉 과거제도가 나머지 3개를 관통”한다는 총평을 남겼던데, 그러고 보면 내가 읽고 이해한 것이 저자의 의도와 아주 동떨어진 것은 아닌 모양이다.


몇 가지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


“만리장성과 병마용을 만들고 도량형과 도로를 표준화하고 관료제를 만든 강력한 국가였던 진나라가 불과 14년 만에 멸망했다.”


“중국 정치권력 구조가 오늘날과 같은 단일 구조로 바뀐 것은 (중국 민주화 투쟁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1989년 천안문 사태의 결과였다. 천안문 사태에 취약했던 것은 강력한 정치적 기반이 부족했고 정책적 역량과 업적이 모자랐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고 그 결과 중국의 혁명 원로들 사이에서 위기감이 높아져 그런 실패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혁명 원로들은 천안문 이후 당 지도부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권력 중심을 희생시키면서 중국공산당 총서기라는 단 하나의 직책에 힘을 실어주었다. 역설적으로 천안문은 미래의 독재자를 위한 길을 열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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