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이 글을 책으로 낼 생각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암에 걸리셨을 때, 만약 우리 가족이 아무런 고통 없이 그 모든 어려움을 단숨에 헤쳐나갔다면 이 책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암에 걸리신 것을 안 이후, 아버지와 우리는 이 사실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 김치영 목사는 간암 진단을 받고 약 4개월 정도를 사셨다. 아버지는 주위에서 존경받는 목사였고 신학자이셨다. 작은아버지 역시 목사이시고, 형과 나도 신학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 형은 호남신학대학교에서, 나는 영남신학대학교에서 각기 약 10년째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 가족들은 삶과 죽음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부활을 믿고 선포해 왔다. 나는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힘을 주며, 환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아버지가 암으로 고통받게 되자 우리는 다른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것과 똑같은 고통과 당혹함을 겪었다.
우리 가정에 큰 시련이 닥쳐왔다. 이제 ‘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이 시련을 어떻게 맞이하고 이겨내는지 시험대에 올랐다.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나름 삶을 정리하셔야 했다. 지금 까지 당신이 믿고, 교회에서 선포하셨던 신앙의 실체가 무엇이 었는지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나 역시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 보면서 나의 신앙을 새롭게 확인해야 했다.
우리 가족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통, 슬픔, 좌절을 경험했다. 당시 어떤 방문객이 “목사님 가정도 이렇게 슬퍼 하세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어떤 대답을 하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지금그 질문에 대해 답하건대, 인간이 겪는 당혹과 고통에는 목사와 일반인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예수도 참 인간으로서 울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셨지 않는가?
어떤 시련 앞에서 겪는 고통에는 모두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 시련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각기 다르다.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차이도 결국 그들이 삶을 어떻게 보며,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 닥친 이 시련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닥친 것이었다. 아버지와 우리들은 우리에게 닥친 이 시련을 신앙적으로 받아들이고, 남은 삶에서 어떻게 의미를찾아야 할지 고심했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신 아버지의 모습은 아주 놀라운 것이었다. 이 말은 아버지가 아무런 인간적인 단점이 없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물론 아버지께도 여러 인간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의 인간적인 단점을 넘어서는 그의 신앙과 독특한 정신적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인격을 구성하는 이런 특징적 측면이 암 진단 후 돌아가실 때까지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난 것 같다. 나는 아버지와 우리 가족이 겪은 매 순간의 고통, 인간적인 번민, 또 이를 이겨내기 위해 기울인 신앙적 노력들을 노트에 기록했다.
한편, 나는 약 4개월 동안 죽음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죽음이 있었다. 아버지는 바로 죽음의 문턱에 서 계셨고, 나는 산 자로서 죽어 가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상적인 대화 외에도, 조직신학을 전공한 아버지와 나는 여러 신학적인 주제들을 두고 대화하는 기회를 가졌다. 우리는 고통에 대해, 죽음에 대해, 인간에 대해, 부활과 종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에 어떤 형식이 있지는 않았다. 때로는 병실에서, 때로는 아버지가 심한 고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시는 가운데 간간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내가 궁금한 주제에 대해 의도적으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대화가 아니어서 단편적인 부분도 있고, 끝을 맺지 못한 대화도 많았다. 그러나 죽음을 앞에둔 아버지의 말씀에는 어려운 신학적 주제들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다. 나는 우리의 대화를 아버지의 말씀을 중심으로 기록에 남겼다.
- 2002년 9월에 김동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