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포드
이윤진 옮김
시크릿하우스
2022년 9월 29일
무려 6백 쪽에 달하는 원서를 보름 만에 다 읽었다. 예전 같으면 서너 달에도 끝내지 못할 분량이지만 인공지능을 이용한 번역기 덕택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스캐닝 하고 텍스트를 인식시키는 번거로움은 있었는데 내년쯤에는 그런 수고도 필요 없을 것 같다. 자율주행차량 이야기 나온 것은 벌써 오래되었고 얼마 전에는 챗GPT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멀기만 한 것으로 생각했던 인공지능이 이미 일상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은 고도의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을 ‘인공지능의 민주화’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로 인해 인공지능이 급격하게 진화되고 비용도 낮아져 조만간 무료 이용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그런 사회에서는 데이터가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가 될 것이며, 결국 데이터를 지배하는 이가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렇기는 해도 저자는 인공지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다고 말한다. 로봇이 대체할 기능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손의 기능이라고 한다. 크기, 무게, 모양, 질감, 포장상태가 모두 다른 수 천 가지 품목을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상당 부분이 공장자동화로 해결했고 지금 속도라면 머지도 머지않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의 궁극적인 모습이라면 먼저 자율주행차량을 손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자율주행차량은 동시에 인공지능의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인공지능으로 99%를 안정적으로 처리한다고 해도 처리하지 못한 나머지 1%가 재앙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쓸모없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것이 인공지능이 ‘무한에 가깝게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이해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눈짓이나 손짓, 혹은 운전자가 알아차리기를 기다리며 잠깐 멈추는 행동’이나 ‘보행자의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행동’은 딥러닝 능력 밖의 일이며, 그래서 가까운 미래에 이것을 해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것뿐 아니다. 일반인에게는 어렵지 않은 ‘상식’이 사실은 ‘엄청난 양의 정보를 극적으로 압축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이를 따라잡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일반인이라면 놀랍도록 적은 사례로도 이해할 수 있는 ‘인과관계’도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해서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어 한 것은 ‘인공지능 기술’보다는 이 책의 부제인 “인공지능은 어떻게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나” 하는 것이다. 그중 가장 심각하고 우리 피부에 와 닿는 현상은 바로 일자리이다.
과거에 농업기계화로 수많은 농민이 일자리를 잃었고, 그 일자리를 제조업이 성장하면서 채웠다. 이후에 제조업 일자리가 공장자동화로 없어졌지만 서비스업이 그 자리를 대체해 지금까지 왔다. 그러니 서비스업을 대체할 어떤 일자리가 다시 생기지 않겠냐고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예측은 이런 우리의 기대를 무너뜨린다. 저자는 과거에는 일자리 변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났지만 인공지능 발달로 유발되는 일자리 변화는 ‘모든 부분’에서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뿐 아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자리 변화는 산업이 달라졌어도 단순 반복 작업이라는 일자리의 성격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자리의 양은 유지되었다. 농장이 공장으로 월마트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미래산업이 창출하는 일자리는 줄어드는 양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을 것이다.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이라고 해서 이 파도를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블루칼라 근로자들을 대체하려면 로봇이나 자동화시설을 갖추기 위해 많은 비용을 투입해야 하지만,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은 강력한 소프트웨어만으로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대체효과가 훨씬 크다. 거기에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이 고임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효과는 극적으로 치닫는다. 결국 ‘모든’ 일자리가 ‘극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이 마냥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최첨단 인공지능 개발에 필요한 컴퓨터 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3.4개월 마다 두 배가 필요하게 되었다. 비용도 해마다 열 배씩 늘어난다. 이쯤 되면 인공지능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의심할 정도이다. 어느 기업도 기술개발 투자비가 해마다 열 배씩 늘어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니 말이다.
인공지능 발달의 또 다른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개인의 신상과 일상이 모두 공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문제이니 어쩌면 앞서 언급한 모든 문제보다 더 결정적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중국 상양시에서 혼잡한 교차로의 질서를 회복할 목적으로 안면인식기술을 사용한 사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불법으로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안면인식기술로 확인해 전광판에 띄워 망신을 주는 것이다. 확인해 보니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다. 위반내용이 문자로 전송되고, 위반이 중복되면 벌금을 부과할 뿐 아니라 공개된 장소에서 교통규칙 교육도 받고, 벌점이 누적되면 기차나 항공기 이용도 불이익을 받는다. 사우디에서 건설 중인 네옴시티에서는 범죄가 일어나는 즉시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소설로만 여기던 빅브라더가 이미 출현한 것이다.
개인의 신상과 일상 공개를 찬성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를 질서 있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신상과 일상 공개가 불가피하다고 하면 받아들일 사람이 그보다는 훨씬 많지 않을까? 우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중국 상양시의 사례를 정작 그곳 시민들은 질서가 회복되었다는 이유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된다는 것을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누군가 악용한다면 그 결과는 재앙이 될 텐데 말이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 정작 개인정보 공개에 둔감한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문제를 열거한데 이어서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하는 산업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직업선택 기준, 그리고 인공지능기술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올리는 기업과 그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공존하기 위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 분배를 리모델링해야 한다는 대안도 함께 내놓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미 인공지능기술에 일상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이런 시대 상황을 깨닫고 대응할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앞부분에 실린 인공지능기술에 대한 설명은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지만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 일반인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은 6-8장에 실렸으니 나머지는 과감하게 건너뛰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