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식탁> 박인식의 호기심 따라 읽기 18
웹진 <피렌체의 식탁>에 열여덟 번째 서평이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일란 파페의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를 읽었습니다.
저자인 일란 파페는 1954년 이스라엘 북부 도시인 하이파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1984년부터 하이파 대학 교수로 재직해왔습니다. 그는 유대계 이스라엘 사람이면서도 아랍 사람을 대하는 이스라엘 정부의 태도를 강도 높게 비판해왔습니다. 이스라엘 국회가 비난하고 나서고, 교육부 장관이 총장에게 저자를 해고하라고 촉구했을 뿐 아니라, 살해 위협까지 받는 지경에 몰리자 결국 이스라엘을 떠나 2009년부터 영국 액서터 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노암 촘스키는 그를 가리켜 '현존하는 이스라엘 최고의 양심'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이스라엘의 실체를, 신화라고 잘못 알려진 이스라엘의 적나라한 모습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약속의 성취'로 이해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는 특히 충격적인 내용일 수 있지만, 이스라엘 적국에서 십수 년 살았던 저로서는 상당히 많은 부분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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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일란 파페
백선 옮김
틈새책방
2024년 5월 31일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유례없는 대규모 공격을 시작하자 세계 대다수의 나라가 비난하고 나섰다. 심지어 아랍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마저 하마스 비난의 대열에 동참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공격이 반격의 수준을 넘어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절멸시키려 드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지지를 이어가던 서방의 여론이 부정적으로 돌아섰고 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던 미국의 여론마저도 등을 돌리고 있다. 이 책에서 ‘이스라엘 건국 신화의 바탕이 된 시온주의’의 추악한 실체를 파헤치고 있는 저자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반격을 “연민과 배려로 이스라엘을 지지한 서방 정부의 선의를 배반하고 이를 자신들의 대량 학살에 대한 사면장이자 가자지구 파괴를 허용하는 백지 위임장으로 악용”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나는 기독교인으로 살아오면서 한때 이스라엘 건국을 ‘예언의 성취’로 여겼다. 하지만 중동에서 십수 년 동안 이스라엘과 주변국 간의 팽팽한 긴장감을 실감하며 살아가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중동과 관련한 글을 쓰게 되면서 이스라엘의 실체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오늘 그 실체를 깊이 파헤친 이 책에 이르게 되었다.
이스라엘 건국의 바탕이 된 시온주의는 정치적인 개념도 민족적인 개념도 아니었다. 저자는 “19세기 이전까지는 시온주의가 단지 유럽 중부와 동부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의 문화 형태이자 유대인을 거부하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시온주의 이전의 유대인들은 성경을 정치적이나 민족적인 메시지로 해석하지도 않고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았다. 이런 모습은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도 다르지 않았는데, 유대인 랍비들은 성경에 담긴 정치적이거나 주권에 관한 서사를 아주 사소한 것으로 여겼고, 정작 그들이 큰 관심을 기울인 것은 ‘하나님과 자신들의 관계’였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는 1882년 젊은 유대인 수백 명으로 이루어진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유대교 개혁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격렬하게 반대했는데, 그것은 시온주의자들이 종교 공동체인 ‘정통 유대민족’을 세속화하여 ‘새로운 유대인’으로 개조해 유대국가를 세우고 팔레스타인을 식민지화하려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저자는 시온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아브라함과 그 자손이 시련과 환란을 겪으며 이집트에 이르는 과정’을 억압받는 민족이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서사로 왜곡했고 지금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팔레스타인 땅을 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경을 왜곡한 것”으로, 시온주의의 본질과도 거리가 있고, 게다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저주는 미래에 대한 경고를 드러내는 문학적 장치인데 그들이 이를 전쟁을 정당화하는 도구이자 매뉴얼로 삼은 것”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시온주의라는 종교적 비전 바탕에는 반유대주의 정서가 깔려 있다고 말한다. 유대인 공동체를 팔레스타인으로 밀어 넣다시피 한 것은 ‘유대인 없는 유럽’을 만들기 위한 핑계였다는 것이다. ‘유대인 없는 유럽’을 생각하게 만든 ‘반유대주의 정서’의 원인은 대체로 유대인의 타협하지 않는 선민의식,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의 굴레, 경제력 독점을 꼽는다.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으니 유대인으로서는 억울한 누명일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이와 같은 유럽의 정서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새로운 정착지를 구하려던 유대인의 필요가 맞아떨어져 이스라엘이 탄생했다는 것이 저자 주장의 근간인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말 나폴레옹은 중동을 점령할 목적으로 유대국가 건설을 약속한다. 1916년 영국과 프랑스는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맺어 팔레스타인을 분할 지배하기로 합의하고 러시아는 이를 묵인한다. 영국은 시온주의 운동을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로 만들고 그 자리에 유대국가를 건설해 유럽의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고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귀환을 통해 성지 예루살렘에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 명분’으로 삼았다. 이듬해인 1917년 영국은 ‘벨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건설하겠고 약속한다.”
유럽 각국은 단지 ‘유대인 없는 유럽’ 뿐만 아니라 자기 필요 때문에 팔레스타인을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 영국은 ‘벨푸어 선언’에 앞서 1915년에 ‘후세인-맥마흔 서한’을 통해 아랍 민족이 오스만에 대항하여 연합국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통일아랍국가 건설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상태였다. 한편, 유대인은 유대인대로 이러한 유럽의 정서에 편승해 유대국가 건설을 착착 추진해 나간다. 그 결과 유대인은 ‘유대국가 건설’은 물론 ‘팔레스타인 알짜배기 땅을 차지하는 실속’도 챙기고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명분’도 얻는다.
“1947년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자 팔레스타인은 미래 국가를 자신들이 건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유대인 공동체는 같은 해 홀로코스트를 명분으로 국제사회를 설득해 UN 분할안을 끌어낸다. UN 분할안은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가 작성한 것인데, 이 위원회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인사들로 구성되었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의사도 확인하지 않았다. 이 분할안은 팔레스타인을 아랍국가ㆍ유대국가ㆍ예루살렘으로 분할하고 이중 예루살렘은 UN이 관할하기로 한 것이다. 이 분할안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인구의 1/3, 면적의 7%를 차지했던 유대인 공동체가 팔레스타인 땅의 56%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그 땅은 곡창지대와 올리브농장의 80%를 차지하는 알짜배기 땅이었다. 그리고 이 분할안은 이 지역의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명분이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렇게 실속을 차린 유대국가, 즉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로마에 의해 쫓겨난 유대인의 후예이며, 그로 인해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인종차별을 받았으며, 그래서 팔레스타인을 차지할 권리가 있고, 자신들이 유대국가를 세우기 이전에 팔레스타인은 황폐한 땅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유대인은 로마제국에 쫓겨난 예수 당시 유대인의 후손이 아니라 “캅카스 지역의 튀르크 국가 출신으로 8세기 이후 유대교로 개종한 하자르(Khazars) 후손이며 나중에 서쪽으로 강제 이주 되었다”고 설명한다. (학계에서는 하자르 후손이 있기는 했지만 주류는 아니었고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가 대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설령 유대인 후손이라고 해도 지금 이스라엘이 모든 유대인을 대표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지적한다. 수많은 정통파 유대인은 지금까지도 시온주의를 격렬하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 외교부 공식 사이트에는 팔레스타인이 시온주의 이전에 비어 있던 황량한 땅이라고 언급하고 있지만, 1878년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는 46만 명이었고 그중 기독교인이 43,000명 유대인이 15,000명으로, 비록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고는 해도 무슬림 중심의 활기찬 아랍사회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에게 피난처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피난처가 기존 주민과 공존을 이루는 것이어야지 왜 기존 주민을 배척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묻는다. 저자는 책 전편을 통하여 매우 강하게 이스라엘의 행동을 비판하고 있지만, 나는 이 지적이 그가 펼친 어떤 논리보다도 이스라엘의 문제를 가장 적확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더 이상 다른 논쟁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 수십만 명을 가자지구로 밀어 넣었다. 현재 가자 인구는 250만 명으로 전체 이스라엘 인구 1천만 명의 25%에 이르는데, 이 지역의 면적은 365㎢로 이스라엘 전체 면적 22,145㎢의 1.6%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유대국가를 이단으로 여겼던 정통 시온주의자들도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에는 자신들의 태도를 바꿨다. 2014년 이스라엘 교육부는 모든 학교에 “성경은 이스라엘 국가의 문화적 기초일 뿐 아니라 땅에 대한 유대인의 권리도 담고 있다”는 서한을 발송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잘못 알려진 과거의 신화뿐 아니라 현재, 그리고 이들이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래의 신화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이어간다. 하지만 현재와 미래의 잘못된 신화는 애초에 잘못된 신화에서 출발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잘못된 신화에서 출발한 폭력에 맞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사용해야 했고, 그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아 이제는 폭력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구분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그러니 현재와 미래의 신화가 잘못된 것이라고 소리 높여 봐야 오히려 문제의 본질만 놓칠 뿐이다.
유대국가인 이스라엘이 촉발한 중동 갈등의 원인을 역사적, 정치적 관점에서 풀어낸 책을 여럿 읽었지만, 그것으로는 기독교인으로서 내가 가져왔던 ‘예루살렘 회복’이라는 딜레마를 풀 수 없었다. 이 책을 통해 그 의문이 유대인, 시온주의, 시온주의자 사이의 미묘해 보이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 줄 깨닫게 되었다. 미묘해 보이지만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차이인 것을.
하나 조심스러운 것은 이스라엘 안에서는 저자의 주장이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1984년부터 하이파 대학교 교수로 재직해왔지만 이스라엘 국회가 그를 비난하고 교육부 장관이 대학에 그의 해고를 촉구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살해 위협을 받을 만큼 그의 주장은 이스라엘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스라엘을 떠난 저자는 2009년부터 영국 액서터 대학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밖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이와 상당한 거리를 보인다. 미국의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노암 촘스키는 그를 ‘현존하는 이스라엘 최고의 양심’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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