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브 왁스만
장정문 옮김
소우주
2024년 3월 24일
모든 아랍 국가가 팔레스타인 대의를 지지하고 이스라엘을 집단으로 보이콧했지만 실제로 모든 아랍국가가 이스라엘과 맞서 싸운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벌인 국가는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소수에 불과했고 레바논, 이라크, 알제리, 모로코, 예멘, 사우디는 소규모 병력만 파견했다. 아랍국가들은 주로 외교적,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그중 가장 많은 원조를 제공한 것은 사우디로, 지난 수년간 수십억 달러를 지원했다. 이런 대규모 원조는 역내 지도자들과 유대를 강화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수니파의 리더로 인정받고 싶은 사우디의 전략적 이익과 열망에도 부합한다.
사우디는 여전히 팔레스타인에 많은 원조를 제공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존재를 완전히 거부했던 사우디는 2002년 “이스라엘이 점령한 모든 영토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수용하고,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으면,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겠다”는 ‘평화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사우디는 이후에도 이스라엘과 화해를 제안하고 다른 아랍국가도 이스라엘과 화해할 것을 종용했을 뿐 아니라 최근 몇 년 동안 은밀하게 이스라엘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이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반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란에 대한 적대감은 사우디-이스라엘 관계를 변화시켰고 새로운 ‘반이란동맹’에 대한 기대감까지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최대 관심사는 팔레스타인이나 아랍국가가 아닌 이란이다.
이스라엘 시민권은 이스라엘인 부모를 둔 사람, 유대인 귀환법에 따라 이스라엘로 이주한 모든 유대인, 그리고 그들의 자녀와 (이스라엘에 이주한) 배우자에게 부여된다. 이에 따라 수십만 명의 (정통파 유대교 기준) 비유대인이 이스라엘에 유입되었는데, 대부분 구소련 출신이었다. 오늘날, 이 지역에는 약 120만 명의 러시아계 이스라엘인이 거주한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이들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이민 공동체이자 구소련 외부 러시아권에서 세 번째로 큰 공동체이다. 이들은 지금도 러시아 신문과 방송을 통해 자신들만의 문화를 유지한다. 이 공동체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는 우파로, 이스라엘에서 상당한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지난 10년 동안 이스라엘 유권자를 우경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948년 건국 당시에는 유럽 출신 유대인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이민자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중동 아프리카 출신이 절반을 넘어섰다. 오늘날 이스라엘 유대인은 크게 유럽계 아쉬케나짐과 중동ㆍ북아프리카계 미즈라힘으로 구분된다. 전통적으로 아쉬케나짐이 이스라엘 상층부를 차지하고 정치 경제를 지배해왔다. 종교와 무관하게 유대인은 이스라엘 인구의 75%를 차지하며 아랍인은 21%를 차지한다. 아랍인의 종교적 배경 역시 다양하지만 무슬림이 75% 이상으로 압도적이다.
이론적으로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은 유대인과 동일한 권리를 갖지만 실제로는 국가로부터 차별과 고통을 받아왔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 요인은 바로 유대인과 아랍인의 사회적, 정치적 분열이다.
오늘날까지 유대인의 정의는 유대인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다. 통상적으로는 유대교 신자이거나 유대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사람을 일컫는다. 유대인은 종교뿐 아니라 혈통으로도 이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종으로만 유대인을 구분 짓지는 않는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660만 명의 유대인이 살고 다른 나라에는 훨씬 더 많은 유대인이 산다. 전 세계 유대인 인구는 1,400~1,500만 명으로 추산되며 그중 80% 이상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집중되어 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로마제국 시대에 시작된 이래 2,600년 이상 이어져 왔다.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일반화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이스라엘에 동질감을 느끼고 지지한다고 할 수 없다. 특히 미국 유대인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유대인보다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훨씬 자유롭다.
유대인에게 홀로코스트가 고통스러운 기억이라면 팔레스타인인에게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추방되어 떠나야 했던 순간을 의미하는 ‘니크바’(아랍어로 재앙이라는 뜻)가 그렇다. 그러나 수천 년 역사를 지닌 유대인의 정체성과 달리 팔레스타인인의 정체성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조직이 결성되고 전쟁으로 오스만 제국이 붕괴한 이후인 1919년 예루살렘에서 최초로 팔레스타인-아랍 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측은 이 회의에서 독립 국가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대(大)시리아(오스만 제국 시대의 시리아, 현재의 시리아ㆍ팔레스타인ㆍ이라크ㆍ요르단ㆍ레바논)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다. 이후 영국 통치 아래 있는 동안 비로소 독자적인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해야 한다는 의식이 형성되었다.
세계 팔레스타인 인구 1,250만 명 중에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경우가 절반 정도로, 서안지구 290만 명, 가자지구 190만 명,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 180만 명 정도이다.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보다 훨씬 많은 자유와 기회를 누리지만 이스라엘의 2등 시민처럼 살아간다. 서안지구는 파타(Fatah/PLO)가 가자지구는 하마스(Hamas)가 장악하고 있는데 가자지구의 삶이 훨씬 열악하다.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 37만 명은 이스라엘에서 일할 수 있고 이스라엘 주민(시민은 아님)으로 복지 혜택도 받는다. (숫자가 잘 안 맞음. 확인 필요) 팔레스타인인의 90% 이상이 무슬림으로 수니파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스라엘, 서안지구, 가자지구의 총면적은 26,320km^2로 남한의 1/4인데 대부분이 사막이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다.
예루살렘 제2 성전 건물 외벽인 통곡의 벽과 그 위에 있는 성전산은 유대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이다. 이곳은 메카와 메디나에 이은 세 번째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는 곳이기도 한데, 무슬림들은 이곳을 ‘하람 알 샤리프(고귀한 영역)’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날개 달린 말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 알라를 만나서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라는 이슬람 계명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시온주의 운동에는 종교단체와 정당이 항상 포함됐지만 이들은 철저하게 세속적이었다. 초기 시온주의 지도자 상당수는 반종교적이었다. 그들은 유대교를 기껏해야 유대인이 한꺼번에 고국으로 귀환하면 사라질,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 그들은 고국에서 세속적인 사회를 만들려고 했으며, 유대인 대규모 이주를 촉진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을 정착지로 선정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유대민족의 민족사이자 그 땅이 유대인의 소유라는 증거로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