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도
부키
2013년 9월 10일
애기태, 조태, 망태, 은어받이, 동지받이, 일태, 먹물태, 왜태. 이게 무슨 이름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혹시 금태, 먹태, 백태, 황태까지 더하면 눈치 빠른 이들은 알아차릴 수도 있지 않을까? 짐작한 것처럼 이 모두가 명태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1년 정도 자란 작은 명태인 노가리가 애기태이고, 낚시로 잡은 것은 조태, 그물로 잡은 것은 망태라고 한다. 얼리지 않은 게 생태, 얼린 게 동태, 말린 게 북어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내게 이런 이름은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자칭 물고기 박사인 황선도 선생을 만난 건 벌써 몇 달 되었다. 잠깐 이야기 나눈 게 전부였는데 알고리즘 덕이었던지 어느 날부터 인터넷에 그와 관련된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과학계에서 이미 ‘황구라’로 이미 명성이 자자한 인사였다. 스치듯 만났으니 무슨 일을 하는지 알 턱이 없었지만 ‘황구라’라는 이름이 놀랍지는 않았다. 그 짧은 만남만으로도 거침없는 입담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는 말이다.
스스로 수산자원 전문가라는 그는 어느 날 안주로 올라온 생선회를 놓고 풀어 젖힌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구라’라 좌중을 압도한 후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렇게 마음먹은 것이 책이 되기까지는 그 후로도 십 년이 더 지나서였지만. 그는 밥상에 올라오는 열두 가지 물고기를 제철 물고기로 고르고 전문가답게 그와 관련한 논문이나 연구 내용을 소개하고 거기에 자신이 경험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책에 재미를 더했다. 거기서 그쳤으면 그저 밋밋한 책이 되었을 것인데 저자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웃음 코드를 곳곳에 감춰놓아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낸 이 책을 완성했다.
그랬으니 출간하고 6년이나 지나서 기왕 써놓은 것에 또 그만큼의 분량을 더해 개정증보판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찾는 사람이 없는 책을 다시 내줄 출판사가 있을 리 만무할 테니 말이다. 사실 나는 이 책과 개정증보판으로 새롭게 출간한 <친애하는 인간에게, 물고기 올림>이 다른 책인 줄 알고 두 권을 함께 읽기 시작했다.
이 책 덕분에 그동안 알쏭달쏭했던 궁금증을 상당히 풀었다. 우선 같은 물고기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거나 같은 듯 서로 다른 물고기를 대충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조피볼락이 우럭이고, 비슷하게 생긴 노래미가 게르치라고 했다. 광어가 넙치인 건 알았지만 도다리와 가자미가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지 못했는데 저자는 도다리와 가자미가 지방마다 사람마다 횟집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라서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만 했다. 궁금증을 푼 게 아니라 오히려 궁금증이 더해져 살짝 짜증스러웠다. 덕분에 만나야 할 이유가 생기기는 했지만.
민물장어가 뱀장어이고, 싼 맛에 안주로 즐겨 먹었던 아나고는 붕장어, 포장마차에서 파는 꼼장어는 먹장어라고 했다. 이중 민물장어와 붕장어와 갯장어는 척추가 딱딱한 경골어류이지만 먹장어는 다르다.
저자는 우럭인 조피볼락을 설명하면서 이 물고기가 찬물에 사는 냉수성 어종인데 그래서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하다고 말한다. 언젠가 인도네시아에 출장 갔을 때 그중 비싸다는 한식당에 초대받아 떡 벌어지게 차린 활어회를 대접받았는데, 기대와는 달리 맛도 모르겠고 솜 씹는 것 같아 잔뜩 실망했던 기억이 남았던 터라 저자의 설명이 아주 명쾌하게 들어와 박혔다. 당시에도 바닷물이 뜨거우니 활어회라는 게 그 모양이 아닐까 짐작하기는 했다.
민물장어라면 고창 선운사 근처에서 먹어본 풍천장어가 단연 으뜸이었다. 그때 풍천이 그 근처 어디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저자는 풍천이 지명이 아니라 지형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서해나 남해에서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하구 지역은 물흐름이 바뀌면서 해풍과 육풍이 교대로 부는데 이곳을 풍천이라고 하고, 이곳의 장어를 으뜸으로 친단다.
못 생기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귀는 지방에 따라 아구라고도 하고 물텀벙이라고도 하며, 한자로는 안강어(鮟鱇魚)라고 쓴다. 서해와 같이 조류가 강해 물살이 센 해역에 설치하는 그물이 마치 아귀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안강망(鮟鱇網)이라고 한다는데, 이 설명만으로도 그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쉬 짐작이 간다.
저자의 설명도 유려하지만 지루하다 싶을 만한 곳에 저자 특유의 입담을 풀어놓아 독자 눈길이 떠나지 않도록 붙들어 놓는 것도 이 책의 강점 중 하나이다. 그래서 지루할 새가 없다.
“명태를 얼리지 않고 말리거나 얼렸더라도 빨리 말리면 물이 빠지며 근육 사이가 오그라들어 딱딱한 북어가 된다. 이 북어로 해장국을 끓이려면 방망이로 두들겨 살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 아침부터 해장국을 끓여야 하는 심사가 좋을 리 없으니 남편 대신 북어를 패는 것도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임에 틀림없다. 술 마신 다음 날 북엇국을 끓이며 아내는 남편에 대한 원망을 풀고 남편은 아내의 사랑을 느낄 수 있으니 북엇국은 좋은 전통 가운데 하나가 아닐지.”
재미있는 이야기이긴 해도 요즘 같으면 흉잡히기 딱 좋을 말이다. 술 먹고 온 다음 날 아내에게 북엇국 끓여 달랄 만한 간 큰 이가 몇이나 되겠으며, 북엇국을 끓인다고 한들 두들겨 놓은 북어를 사다가 쓰지 그걸 두들기고 있는 이가 어디 있을까? 짐작하기에는 저자가 해보지 못한 꿈을 글로나마 이루려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줄을 잇지만 곳곳에 자연의 섭리와 삶을 다시 돌이켜 보게 만드는 통찰이 번뜩인다.
“일반적으로 떼를 지어 사는 동물이 그 수가 많은 것을 봐서는 진화의 과정에서 무리를 이루는 것에 이점이 있음이 틀림없다. 어떤 동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퍼져있으면 포식자에게 먹히기가 쉽지만, 떼 지어 모여 있으면 설령 포식자에게 발견되더라도 포식자가 한 번에 잡아먹을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으므로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가 잡아먹힐 확률은 줄어든다. 몇 마리의 희생으로 무리 속의 다른 개체들은 살아남을 수 있고, 포식자가 포식을 만끽하는 사이에 먼 곳으로 도망갈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떼를 짓는 물고기는 진화의 과정에서 잡아먹힐 확률이 줄어들어 생존하였고, 일부 포식자는 먹이 떼를 계속 따라다니며 배고플 때마다 잡아먹도록 진화하였다. 그래서 과거 어군탐지기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물고기를 잘 찾는 물새나 어군을 따라다니는 돌고래 무리를 보고 물고기를 찾았다. 그러나 요즘 떼를 지어 사는 물고기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그물을 둘러쳐 한꺼번에 모두 잡아버리는 인간이다. 물속의 포식자를 상대할 때는 떼 지어 다니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지만 인간이라는 포식자 앞에서는 무리를 이루는 것이 불리하게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인간이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의 축적을 위해서 어획 강도를 높이는 포식자인 셈이다.”
이쯤 되면 이 책에서 언급한 내용을 바탕으로 또 그만큼의 분량을 추가한 개정증보판 <친애하는 인간에게, 물고기 올림>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읽고, 읽다가 생긴 궁금증 몇 개 추려서 저자에게 대작을 청할까 보다.
저자가 이 책의 주제로 골라놓은 제철 물고기 열두 종은 1월 명태, 2월 아귀, 3월 숭어, 4월 실치와 조기, 5월 멸치, 6월 조피볼락과 넙치, 7월 복어, 8월 뱀장어, 9월 갈치와 전어, 10월 고등어, 11월 홍어, 12월 꽁치와 청어이다. 예로부터 음식을 잘 먹는 방법으로 계절식과 향토식을 으뜸으로 꼽던데, 이는 제철에 우리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면 모두 몸에 이롭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목차에도 정보가 들어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