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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Oct 03. 2024

2024.10.02 (수)

<특집! 한창기>

찾아보니 2017년 9월의 일이었다. <뿌리깊은나무>가 첫 직장이었다는 글을 읽고 “그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생각이 반듯하지만 조금은 까탈스러울 텐데, 그분 중 한 분이셨으면 생각이 반듯하지만 까탈스러운 분이셨는가” 묻는 댓글을 다는 것으로 인연을 맺게 된 분이 있다. 한국의 잡지가 <뿌리깊은나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했던 내게는 그곳이 직장이었다는 그분에 대해 호기심이 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에 대해서는 까탈스럽지만 인간관계는 부드럽다는 답글을 단 그분이 다음날 <뿌리깊은나무>를 창간한 한창기 사장을 추모하는 <특집! 한창기>라는 책을 몇 권 갖고 있으니 보내주겠노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서울에 있었다면 호의를 감사하게 받아들였겠지만, 당시 살던 사우디까지 보내는 수고를 끼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사양하고 말았다.


그때 그 책 <특집! 한창기>, 읽고 싶었지만 사양할 수밖에 없었던 책을 7년 하고 사흘이 지난 오늘 받았다.

댓글로 인연을 맺게 된 그분은 루게릭병으로 당시 이미 거동이 불편해진 상태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관심사나 사고방식, 신앙까지도 겹치는 영역이 많았다. 그날로부터 지금껏 그분을 기억하며 기도해오고 있다. 기도를 건너뛴 날은 있어도 기도할 때 그분을 잊은 일은 없었으니 그분의 삶이 내 삶에 이런저런 영향을 미친 것은 오히려 당연했다.


무엇보다 고통에 대해 자주, 그리고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사우디 정부의 부당한 처사로 공사비 절반을 받지 못해 법인 운영이 난관을 겪고 있던 때여서 이래저래 고통에 관한 생각이 증폭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데, 억울하기 짝이 없는 고통조차 그분의 뜻이라는 해석을 당시 내 신앙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분의 상황이 더더욱 남의 일일 수 없었다.


그렇게 5년을 보내고 끝내 빈손으로 쫓기듯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그 사이 그분은 몇 번이나 생사의 고비를 넘었고, 그러는 중에도 음성 마우스로 안구 마우스로 치열하게 글을 올리고 있었다. 누구에게는 여가에 지나지 않는 페북 글쓰기가 그분에게는 존재를 건 투쟁의 흔적이 되어온 것이다. 2021년 3월에는 그 글을 모아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 먹자>라는 책을 냈다. <뿌리깊은나무> 북디자이너의 책답게 책 자체로도 독특하기로 손꼽을만하다.


그분 때문에 고통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기도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력함에 매번 낙심되기도 했다. 어느 날 그분이 써놓은 ‘소소한 기쁨’에 눈길이 멈췄다. 그러고 나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밑도 끝도 없이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 올라오면 나 보라는 것이려니 여기시라”면서.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고 “그것이 위로가 되었다”는 말에 나 역시 위로를 받았다.

사우디에서 마지막 몇 년을 고통 속에서 지내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빛 색깔 공기>라는 책을 다시 꺼내 읽은 일이 있었다. ‘삶과 죽음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익숙해 있는’ 신학자이자 목사인 아버지가 넉 달 시한부 간암 선고받은 이후에 일어났던 일을 현직 신학 교수이자 목사인 아들이 담담하게 기록한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남긴 글이 인생 마지막 목표인 ‘서평 1,000편’의 출발점이 되었다.


얼마 전에 그렇게 출발한 서평을 300편 채우고 나서 글을 올렸더니 그분이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오로지 안구 마우스에 의지해 의사를 소통하는 그분께 종이책은 넘을 수 없는 벽이기 때문이다. 당장 책을 주문하고 종이책을 파일로 만들어주는 곳에 부탁해 전자책을 만들어 보냈다. 꽃다발 삼아 곁에 놓고 보시라고 종이책도 함께 보냈다.


아침에 아내에게서 그분이 책을 보내셨더라는 전화를 받았다. 사진을 받기까지 그것이 그 책이었을 거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2008년에 발간된 책인데 아직 띠지도 그대로였다. 희미하게 남은 얼룩만 빼면 최근에 발간된 책이라 해도 믿겠다. 열어보니 한 페이지가 서른두 줄. 스물두세 줄에 지나지 않는 요즘 책보다 훨씬 빼곡하다. 읽는 데 시간 좀 걸리겠다.


받아서 즐겁지만, 그보다 밀린 숙제로 여겼던 일을 마치고 나서 홀가분해지셨을 그분 때문에 더욱 즐겁다. 소소한 기쁨을 드릴 수 있어서 말이다. 소소한 기쁨, 그거 선물치고는 아주 괜찮은 선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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