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몇 년 전, 먼저 다니던 교회 담임목사께서 금혼식을 맞아 온 교인이 함께 축하한 일이 있었다. 자라온 환경이며 생각하는 것이 다른 남녀가 혈기 넘치는 젊을 때 만나 오십 년을 해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싶어 진심으로 축하드렸다. 그때만 해도 금혼식은 남의 일이었다.
어제로 마흔네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남의 일로만 여겼던 금혼식이 이제 고작 여섯 해 남았다. 세월이 유수 같다더니 요즘은 정말 그 말을 실감하며 산다. 월요일에 경주에 내려가 금요일에 서울로 올라오는 생활이 벌써 여섯 달째이다. 그러다 보니 한 주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른다. 노년에 서로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아내는 친구들이 전생에 나라를 구했느냐고 한단다. 남편 중에 가장 좋은 남편이 곁에 없는 남편이라는데, 평생 좋은 남편 되지 못한 것을 이렇게라도 갚을 수 있어 다행스럽다. 사실 나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일이고.
바울 선생은 평생 지병을 지니고 살았는데, 그 육체의 가시가 너무 고통스러워 세 번이나 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했지만 하나님은 끝내 외면하셨다. 선생은 말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것이 자신을 자만하지 않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하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돌아보니 아내를 만나 지금껏 살아오면서 딱히 가시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인데, 혹시 하나님께서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가시를 내려주랴 물으실까 겁난다. 설마 하나님께서 그 정도 농담도 이해 못하시기야 하시겠나.
금혼식까지 앞으로 여섯 해. 일단 그때까지 심신의 건강을 잃지 않고 잘 살아서 여러분에게 축하해달라고 강청하리라. 그 후에 회혼식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너무 먼일이고 그것까지 구하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라. 일단 올해는 거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