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른스럽고 신중하고 차분하기보다는 고집스럽고 경솔하며 철부지에 가까운 사람이다. 이것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런 내 모습을 반성하고 개선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은 주로 애인이나 아주 가까운 친구였다.
예전 애인은 내게 “사과를 좀 해”라고 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모든 일을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는 사실을. 그땐 “내가 왜 사과해야 하는데?”라며 되받아쳤지만 사과를 가르쳐 주던 애인의 따뜻하면서도 단호했던 언어는 오래도록 남았다. 그 이후 여전히 나를 깊은 마음으로 사랑해 주는 상대의 배려 깊은 행동들에 ‘미안해’가 내 자존심을 구기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는 단어라는 걸 알아갔다.
배려와 신뢰와 사랑은 사람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크게 바꾸어 놓는다. 그 사실을 굳게 믿고 있다. 내가 그렇게 변했으므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과 해결하지 않는 것 중 늘 더 쉬운 건 후자다. 지금 내 감정이 꼬이고 얽힌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따지고, 네 말은 맞아도 말투는 틀렸다며 필요도 쓸모도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그게 내 기분을 나쁘게 했고 그래서 나도 말이 좋게 나가지 않은 거라고 멋대로 면죄부를 쥐고 분노를 표출해 내면 되는 일이니까.
특히 가장 쉬운 선택은 갈등의 원인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있었고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으며 매우 당황스럽지만 그 당황스러움 때문에 저지른 실수는 미안하다고, 이렇게 부분적으로 교묘히 사과하면 갈등은 어느새 사그라들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 사실을 잘 이용했다. 더는 관계를 돈독히 지속하고 싶지 않고 상대를 위해 어떤 노력도 하고 싶지 않지만 갈등은 빨리 해결해 버리고 싶을 때 잘 활용하기도 했다. 그런 후에 남는 건 뭔가 께름칙한 감정의 찌꺼기 같은 것이었다.
반대로 사과를 받아야 하는 일에서는 적극적이었다. 네가 잘못한 게 맞지 않느냐고, 왜 똑바로 사과하지 않아서 관계를 이렇게 엉망으로 만드는 거냐고 삿대질하고 사과를 재촉하기 바빴다.
친구와 대판 싸운 어느 날, 불편한 감정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집에 도착해 효정에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쳤다. 그는 이 세상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람이니 내 심정이 어땠는지 잘 알아줄 거고,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내 편에 서서 친구를 잔뜩 욕해 주겠지 생각하며 입을 툭 내밀고 불평불만을 쏟아놓았다. 친구랑 싸우던 상황에서 내 마음이 어땠는지는 본격적으로 징징대기도 전에 효정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나 같아도 너랑 대화하기 싫겠다. 얘기만 듣는 엄마도 이렇게 지치는데, 그 친구는 얼마나 질려버렸겠니?
이건 다른 어떤 누구에게 들었을 것보다 큰 충격과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만큼 빨리 아물었다. 효정이 나를 미워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아주 거대하고 단단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가 아무 답이 없더라도 기다려 줘. 지금 당장은 대화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 수 있잖아. 너도 누군가와 갈등을 겪다가 그런 마음이 들면 동굴로 숨어 버릴 때가 있잖니. 그 친구도 그런 거면 어떡해? 화해하고 싶다는 마음에 대화를 끝없이 강요만 하지 말고, 그냥 기다려 줘. 그것도 화해야.
사실 효정의 말을 듣고는 잔뜩 삐져서 문을 걸어 잠그고 방에서 혼자 찔찔 울다 잠이 들었지만, 다음 날 일어나서는 아무렇지 않게 효정과 함께 아침밥을 먹고, 아무렇지 않게 데려다주겠다고 말하는 효정의 호의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함께 집을 나섰다. 효정이 나의 토라짐을 묵묵히 기다려 주었으니까, 그래서 서로를 충분히 받아들일 만큼 따뜻한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니까.
그를 사랑해도 믿을 순 없겠어서, 그러니까 사랑을 믿지 못하겠어서 오랜 싸움을 지속해 가던 어느 날, 나를 사랑했던 그는 말했었다.
“뒤집힐 말들과 흩날리는 얘기들이 오간 게 하루 이틀이겠냐마는 나는 그래. 이렇게 닳고 닳아서, 아, 이제 남은 게 없겠구나. 아니, 이제 없었으면 좋겠다 하는 순간까지도, 죽지 않고 살아서 처절한 다짐을 하게 만드는 게 당신이니까. 그냥 이젠 당신만 보며 가는 거. 그냥 누군가 날 단칼에 조각내 끝내 줬으면 하는 순간들, 길고 차가운 칼에 엉기는 몸뚱어리를 상상하면서도 그 끝에서는 아, 당신 한 번만 더 보고, 그리고 갔으면 좋겠다 하게 되니까.
굽은 안개 같은 생각의 끝에도, 의심이 현실이 된다고 해도, 싸울지언정 놓지는 않겠다는 게 이상하게 드는 생각이니까. 전에는 당신도 나도 내 사랑을 의심했지만 이제 나는 확신하니까. 당신 맘의 싸움을 멈춰 줄 순 없을지 모르고 당신에게 두근거리는 맘을 생기게 할 순 없어도, 희떠운 말들이 퇴적되어 설 땅이 되도록 만들어 볼 셈이니까 지켜나 봐 줘. 두드려 보기도 하고 말이야.
그냥 나는 기다려. 그리고 끊임없이 널 좋아해. 그게 나도 신기한데 멈추지 않을 셈이야.”
그렇게 하루하루 사랑을 배우고 화해를 배워갔던 날들이 있다. 종종거리는 마음을 다독이는 인내와,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단단하게 쌓아가는 믿음과, 그것을 주고받는 방법을 하나둘씩 알아갔던 날들이 있다. 그래서 지금이 있다. 조금 울고 머뭇거려도 금세 눈물 쓱쓱 닦고 야무지게 옷 여미고 다시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하는 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화해의 힘, 그걸로 내가 살아가는 날들이다. 소중한 오늘, 내일, 그리고 여전히 그리울 어제가 내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