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아 미안해

by 다정



열아홉 살에 처음 돈을 벌어 봤다. 급식비나 수업료를 벌기 위해서는 아니었고 돈을 벌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와서였다. 교회 동생 여름이 엄마가 자기 딸 여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흔쾌히 승낙했다. 아무리 고삼 수험생이라 해도 일주일에 두 시간쯤은 낼 수 있었다. 레슨 요일과 시간은 일요일, 모든 교회 일정이 끝난 후 네 시 반부터 여섯 시로 정했다.


한 달에 네 번 수업하고 8만 원 정도 받았다. 시급으로 따져도 만 원은 족히 넘는 금액이었으니까 능력이 있다면 적은 시간 일해도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하농부터 반주법까지 차근차근 알려 주고 나면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기뻐서 벅차올랐다. 잔뜩 욕심을 냈다. 처음 돈 버는 일이고 처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고 무엇보다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음악을 하는 일이었으니까. 일 년쯤 가르치고 났을 때면 나만큼 잘 치도록 만들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웠다. 여름이는 내 일생일대의 걸작품이 될 것이었다.


물론 여름이는 나의 이런 당찬 포부를 알 리가 없었다. 레슨이 끝나면 숙제를 내 줬는데 잘 해 오지 않았다. 연습을 대충 해 오거나 아예 안 해 오는 때가 많았다. 그러면 나는 속상함을 숨기지 못했다. 일주일 동안 삼십 분도 연습할 시간을 못 내느냐고, 우리의 약속인데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곤조곤 나무랐다.


레슨을 하는 동안에는 박자 하나 음정 하나 손가락 번호 하나 틀리지 못하게 했다. 틀리지 않을 때까지 옆에 붙들고 같이 연습했다. 원래 약속한 한 시간 반 수업이 두 시간 두 시간 반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여름이에 대한 이 뜨거운 마음을 여름이는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여름이도 그만큼의 마음을 가져 줄 거라고 생각했다. 열다섯이었던 여름이는 원래도 좀 무서웠던 언니가 더 무섭게 가르쳐 주니 힘들어했다. 취미를 갖고 싶었을 뿐인데 마치 입시 시험 준비하는 것마냥 스파르타식으로 배워야 하는 피아노가 그렇게 재밌지도 오래 배우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 년쯤 지났을까. 내 신분이 재수생으로 바뀌면서 레슨은 자연스레 마무리 지어졌다. 여름이는 나만큼 잘 치게 되지 않았다.



나의 열정은 인정받기를 바라면서 여름이의 마음은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한 결과였다. 진심과 인정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의 진심을 모른다. 알지도 못하면서 나에 대해 떠들고 판단한다. 그들을 원망할 게 아니다. 내가 나고, 그가 그라서 일어나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참 미안하게도 나도 누군가에게 그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짐한다. 나의 진심을 강요하지 않기로, 그의 진심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기로, 그렇게 하되 그를 그냥 인정하기로. 내 마음이 잘못 전달되지 않도록 행동을 단정하기로.


여름이에게 미안했다고 연락하고 싶어지는 밤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