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 일하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애인의 일이 끝날 때까지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과제를 하거나 애인의 얼굴을 구경하고 싶었다. 아무거나 입고 갈 순 없었다. 그렇다고 온종일 집에서 쉬다가 나온 내가 갑자기 너무 꾸민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도 좀 이상할 것 같았다. 꾸안꾸, 적당히 내추럴하게. 그러니까 이게 오늘 나의 미션이었다.
고심 끝에 검정 트레이닝 바지와 빨간색 맨투맨을 골랐다. 겉에 어두운 회색 후드 집업을 하나 더 걸치고 패딩으로 마무리. 머리에는 드라이 샴푸를 뿌려 유분기를 없애 주고 패딩 안쪽에 향수를 조금 뿌렸다. 눈썹과 입술은 옅게 칠했다.
그래, 이 정도면 딱이다. 모든 게 완벽했다. 이미 완연한 겨울이었지만 밖의 공기는 상쾌했다. 그 시간과 여유가 좋았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러 가는 길이었으니까.
상기된 표정으로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서 오세요! 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반겼다. 나 왔어. 뭐야, 손님인 줄 알았네. 오는 데 안 추웠어? 응, 전혀. 일은 안 힘들어? 오늘 손님 많았어? 손님은 많았는데 별로 안 힘들었어. 배는 안 고파? 끝나고 뭐 좀 먹으러 갈까? 다정한 연인의 대화를 몇 마디 나눴다.
이르지 않은 시간이니까 커피 대신 밀크티를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계산대 쪽으로 향하는 찰나, 애인이 말했다.
"푸하, 뭐야. 요즘 누가 여기 꺼 입어?"
내 빨간색 맨투맨을 보고 하는 소리였다. 빌어먹을. 내추럴이고 나발이고 오늘 나의 미션이 완벽히 실패했음을 알리는 대사였다. 내가 얼마나 안 꾸민 듯 신경을 썼는데! 이젠 유행 다 지나서 아무도 안 입는 브랜드 옷을 아직까지도 입고 다니냐는 그의 천진한 말에 갑자기 너무 쪽팔려졌다.
요즘 누가 여기 꺼 입냐고? 누구긴 누구야 나지.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싶었다, 이 자식아! 하고 소리를 꽥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닌데, 요즘에도 많이 입던데? 하며 엉성한 미소를 지었다. 밀크티 대신 샷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그날 이후 다시는 그 옷을 입지 않았다.
물론 이 자식이랑도 진작에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