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幼年)_1

by 다정






세 명의 동생이 있다. 태어나 보니 첫째였고, 어쩌다 보니 계속 동생들이 생겼다. '동생'으로 불리는 삶이 늘 부러웠다. '우리 큰애' 말고 '우리 작은딸'이나 '우리 막내' 같은 걸로 불려 보고 싶었다.


첫째이자 누나이자 언니인 삶은 좀 고달팠다. 얼른 열심히 자란 후에 돈을 많이 벌어서 동생들 대학 등록금과 시집 장가갈 비용을 대 줘야 할 것 같았다. 어린 동생들에게 엄마 대신 밥을 차려 주고, 집에 맛있는 게 있어도 동생들이 먹을 만큼은 남겨 둘 때마다 그런 생각은 확신이 되어 갔다. 나의 부모가 동생들에게 뭔가를 사 줄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여유도 보장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남들 다 입는 노스 패딩이나 나이키 가방 같은 건 사 달라고 하면 안 됐다. 첫째이자 누나이자 언니인 아이에게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슬퍼도 시간은 흐르고 삶은 지속되기 마련이니 즐거운 감정이 찾아오는 때도 물론 있었다. 어린 내가 나보다 더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걸을 때, 작은 내가 나보다 더 작은 아기 동생을 안을 때, 황홀감이나 책임감 같은 것에 휩싸였다. 뜻 모를 정의감과 첫째와 언니와 누나라는 단어에 얹히는 무게감은 나를 당차고 씩씩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며 살았는데 그건 동생이 셋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전부터 나는 줄곧 그렇게 전투적이여 왔다.


네 살부터 여덟 살이 되던 해까지 경기도 구리의 한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다. 우리 가족이 살던 주공아파트 꼭대기 층 여섯 집은 밤을 제외하고 항상 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이좋게 왕래하며 지냈다. 그 시절 모든 집이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그때 601동 15층에 살던 집들이 마침 다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서 유독 친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은 둘째가 옆옆집 성준이네서 놀다가 다퉈서 한 대 맞고 들어왔다. 둘째는 화나고 억울했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한테 일러바쳤다. 동생이 하나뿐이었던 일곱 살 어린 나는 동생의 울먹거림을 보자마자 쏜살같이 성준이네로 달려갔다. 환한 낮이었으니 성준이네 집 문은 당연히 활짝 열려 있었고, 나는 당당히 그 집으로 들어가 성준이에게 꽥 소리를 질렀다.


"네가 내 동생 때렸으니까 너도 맞아!"


옆에 걔 엄마가 있든 말든 성준이 머리를 콱 쥐어박아 애를 왕 울리고는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걔 혼내주고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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