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특목고에 가겠다며 종합학원을 매일 새벽 두 시까지 다녔다. 동생들이 커 가는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나는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그래야 할 것 같은) 몸이니 그쯤은 감수할 수 있었다.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던 어느 날, 모처럼 집에서 티브이를 보며 쉬고 있는데 셋째가 온몸에 모래를 뒤집어쓴 채 울면서 들어왔다.
놀이터에서 친구랑 모래 던지기를 하면서 놀다가 실수로 옆에 있는 남자애에게 모래를 뿌렸단다.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화가 난 남자애는 사과하면 다냐고 너도 똑같이 당해 보라며 셋째의 얼굴과 몸에 모래를 뿌리고 욕설을 퍼부었단다.
7살짜리 애는 자기에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자기보다 훨씬 큰 초등학생 오빠를 이길 재간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엄마에게 일러바치는 것뿐이었다.
놀이터, 사회생활을 배우는 가장 첫 번째 장소가 아닌가. 놀이터 안에도 서열이 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힘의 논리를 배운다. 힘이 센 사람이 더 재밌는 놀이기구를 더 오래 탈 수 있다. 내가 먼저 와서 그네를 타고 있었어도 나오라고 하면 꼼짝없이 비켜줘야 한다.
늦은 밤 집에 돌아오면 동생들이 그날 놀이터에서 겪은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들려오던 터였다. 둘째가 어디 놀이터에서 어떤 형들한테 놀림을 당했다더라, 막내가 놀이터에서 노는데 어떤 무리가 와서 내쫓았다더라 하는 주로 괴롭힘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안 그래도 열받아 있던 무렵에, 하필 그날 그 시간에, 내가 집에 있었던 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셋째의 말을 들은 나는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남자애들을 하나하나 붙잡아 내 동생에게 모래를 뿌린 놈이 너냐고 물어댔다. 걸리기만 하면 잡아다 죽일 기세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교복 차림의 어떤 누나가 무서웠을 테다. 어떤 조그만 남자애가 쭈뼛쭈뼛 다가와 자기가 그랬다고 이실직고했다. 넌 죽었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내 동생한테 모래 왜 뿌렸어?
네가 뭔데! 내 동생이 사과했는데도 왜 그랬어?
사과는 받았지만 네 분이 안 풀려? 그렇다고 너보다 약한 사람이라고 그딴 식으로 괴롭히면 돼?
내 말이 틀려, 맞아?
온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나보다 약한 그 남자애를 괴롭혔다. 누구보다 힘의 논리를 잘 실천하고 있는 나였다. 대답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우물쭈물하는 남자애 눈에서 결국 눈물이 뚝뚝 떨어질 즈음, 저기 멀리서 한 아줌마가 조금 전 나처럼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하며 다가왔다. 남자애 엄마였다.
―야! 너 뭐야? 너 뭔데 내 아들한테 소리를 질러?
네가 쟤 언니면 다야? 뭘 애한테 이렇게까지 하니?
억울했다. 질 수 없었다. 절대로 이 남자애와 똑같은 처지가 되어서는 안 됐다. 여기서 꿋꿋이 버텨서 동생을 지키고, 이겨야 했다.
―아줌마! 얘가 먼저 잘못한 거거든요? 내 동생이 친구랑 놀다가 얘한테 실수로 모래 뿌려서 미안하다고 사과했거든요? 근데 얘가 내 동생한테 욕하면서 너도 똑같이 당하라고 모래 뿌렸거든요? 아줌마는 실수하고 나서 사과한 사람한테 똑같이 복수해 줘요? 아니면 얘한테 그렇게 살라고 가르쳐 줬어요?
숨도 안 쉬고 따지고 나니 후련하긴 한데 큰일 난 기분이 들었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버릇없이 따박따박 대들다니. 버르장머리 없다고 왕창 혼나겠구나 했다. 근데 그것보다 억울한 마음이 더 컸다. 쟤 언니면 다냐고? 쟤 언니면 다 아닌가? 아줌마가 아줌마 아들 엄마라 아줌마 아들 구하러 온 것처럼 나는 내 동생 언니라 내 동생 구하러 온 건데. 억울함이 서러움이 되니 눈물이 났다.
동생 손 잡고 막 우는 애 앞에서 그 엄마는 얼마나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고 기가 찼을까. 아줌마는 왜 울고 그러냐고 아줌마가 잘못했으니까 미안하다고 하고는 남자애를 데리고 집으로 휙 가 버렸다. 아니, 아줌마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한테 소리 지른 것도 잘못한 거지만 아줌마 아들이 동생한테 욕하고 일부러 모래 뿌린 것도 잘못한 거잖아요? 자기 아들한테는 끝까지 사과 안 시키고 가버렸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늦은 때였다. 왠지 당했다는 생각에 더 서러워져 더 엉엉 울었다. 우는 언니 옆에서 동생도 같이 울었다.
놀이터에서의 눈물 파티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전부 일러바쳤다. 엄마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했다. 진작부터 베란다에서 보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당신까지 나서버리면 상황이 너무 커져버릴 테니 우선 지켜만 보고 있었다고 했다.
비록 울어버리긴 했어도 진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을 위해 혼자 용감하게 싸워낸 뿌듯함과 뒤에 엄마가 있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런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동생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감히 두고 볼 수 없던 나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변했다. 막내가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집으로 돌아와 엉엉 울며 일러바쳤을 때, 고등학생이 된 나는 더 이상 앞뒤 생각하지 않고 달려 나가 저질러버리고 마는 사람이 아니었다. 놀이터 안에서의 힘의 논리보다 더 거대하고 견고한 세상의 어떤 질서들을 많이 배운 때였다. 화가 잔뜩 난 채 문 앞으로 질주하다 멈춰 서서 막내에게 물었다.
“너 때린 사람 나보다 나이 많아?”
막내가 응, 하자 나는 “그 사람 나보다 키 커?”라고 물었고, 막내가 다시 그렇다고 하자 몸을 돌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아무래도 이번에는 엄마가 나가 봐야겠는데.”
그렇게 동생 지키는 슈퍼맨의 역사는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