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幼年)_3

by 다정






나는 동생을 지키는 슈퍼맨이기도 하지만 뭐든 혼자서도 잘하는 슈퍼맨이기도 했다. 알림장에 부모님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오라고 내 주는 숙제를 혼자서 다 해 가는 씩씩한 아이였다. 아직 아기인 동생들을 키우느라 힘든 부모님을 도와드려도 부족할 판에 내 숙제를 같이해 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동생을 돌봐야 하는 부모님에게 나를 돌봐 달라고 떼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건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뭐, 괜찮았다. 나는 첫째고 언니이고 누나니까. 이런 건 날 서글프게 하는 일이 아니었다.


종이 슬리퍼를 만들어 오라는 숙제를 받은 애들이 두꺼운 색색의 종이를 여러 번 덧대 만들어 와서는 반나절을 교실에서 신고 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을 때, 혼자서 얇디얇은 색지 한 장으로 만들어 간 내 슬리퍼가 세 걸음을 걷자마자 뜯어져 더 이상을 신을 수 없게 됐을 때도 나는 괜찮았다.


과학의 달을 맞이해 고무 동력기와 글라이더 대회를 열 예정이니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미리 만들어서 연습해 보고 오라고 했을 때, 나는 그냥 표어 쓰겠다고 그게 더 좋다고 하고는 교실에 남아 8자 16자 글자를 맞췄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동안 살면서 가족과 가 본 곳 중 가장 좋았던 여행지를 글로 쓰라는 선생님 말에, 강화도 어딘가에 가던 중 길옆에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이 너무 아름다워 차를 세우고 여섯 식구가 다 함께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너무 좋았다고 쓰고 있는데, 옆 짝꿍이 던진

“넌 가족이랑 여행을 강화도밖에 안 가 봤어?”

라는 말에 그제야 주위 친구들이 쓴 글을 훑어보니 미국에서, 중국에서, 일본에서, 하다못해 제주도나 부산에서의 추억들이 적혀 있던 걸 봤을 때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내가 조금 더 컸을 때, 엄마가 말해 주었다. 언젠가 이사를 앞두고 내 방을 정리하는데, 내가 초등학생 때 혼자서 만들어 간 숙제들과 혼자 써 간 일기장 뭉텅이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다고. 고맙고 대견하다고, 그 시절에 혼자 자라게 해서 미안했다고. 엄마는 애써 덤덤하게 말했지만 나는 애를 써도 덤덤해지지가 않아 집 밖으로 나와 눈물을 훔쳤다.



나의 유년은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서툰 사명감과 어설픈 정의감에 휩싸여 뿌듯하고 당찼고, 나도 좀 돌봐 달라는 한마디를 할 수 없어서 애써 씩씩했다. 나는 안 괜찮았다.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모두 ‘척’으로 점철되어 있던 날들. '척'의 유년(幼年)이었다.


문득 아쉬워졌다. 나의 유년이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이. 그래서 다짐을 하나 한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므로 지금의 시간도 ‘유년(幼年)’으로 부르겠다는 다짐을. 사랑받고 싶은 마음, 나를 돌봐 주고 돌아봐 달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힘껏 표현하겠다는 다짐을.


앞으로의 유년에 나는 누구와 어떤 기억을 쌓으며 어떤 춤을 추고 어떤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게 될까. 내일을 사는 사람에게 유년처럼 생긴 희망이 주어질 줄 믿는다.



- '유년(幼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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