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 유예하기

by 다정



허리까지 오던 머리를 스무 살 재수생 시절 겨드랑이까지 싹둑 자르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단발로 잘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긴 머리로 살아 본 적이 거의 없다. 조금 기르면 자르고 조금 기르면 자르고를 반복했다.


단발 뽐뿌는 철마다 돌아와 나를 유혹했다. 막 고민하다가 내 단발머리를 좋아하는 효정이, 엄마는 너 단발머리 또 보고 싶은데~ 하고 마지막 유혹의 멘트를 날리면 그래? 그럼 보여주지 하며 미용실로 향했다. 며칠 뒤면 다시 후회를 시작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이제는 머리 스타일에 전만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짧아진 머리는 또 자라고, 곱슬한 머리는 언젠가 풀리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단발머리보다는 긴 머리 만드는 게 더 어렵다고 느낀다. 단발머리는 행동하면 되지만 긴 머리는 인내해야 가질 수 있으므로. 그래서인지 거울을 보는데 갑자기 확 길어진 머리카락이 어쩐지 어색했다. 단발의 유혹을 수십 번 수백 번 뿌리치고 길고 긴 시간을 기다려야 비로소 갖게 되는 긴 머리가 정신을 차려 보니 갑자기 나한테 있는 것이다.


거울 속의 나와 낯가리는 내 모습이 우스워졌다. 너무 무심하게 살았나 싶다가도 매일 끼고 사는 마스크 덕에 거울 보는 일이 줄어들어 그렇겠지 하는 생각에 왠지 입이 썼다. 갑자기 만난 긴 머리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겠지.


이렇게 가끔씩 마주하는 팬데믹 이후의 일상을 여전히 낯설어하니 큰일이다. 언제쯤 적응의 동물답게 이 메마른 일상들에 익숙해질는지. 우선은 지금의 길어진 머리가 어색하다고 싹둑 잘라버리는 일부터 유예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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